- 귀농 3년차에 경험한 열일곱번째 이야기
금년 농사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 10월 중순이었다. 나는 주작물인 고추와 토마토중에서 고추 정리작업부터 시작했다. 시장 가격이 높지 않아서 인건비도 건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1~2주전부터 뿌리를 뽑아 놓고 빨갛게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뿌리채 뽑힌 고추나무는 영양생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빨리 빨간 고추로 변한다. 하지만 비오는 날이 이어지고 탄저병이 계속 확산되어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고추나무에서 병들지 않은 건강한 빨간 고추만 따냈다. 그리고는 고추나무를 농사를 짓지 않은 밭의 한 구석에 쌓았다. 자연스럽게 썩어 없어질 것이다. 3천 그루가 넘는 나무를 정리하고, 멀칭 비닐과 점적 테이프를 벗겨내는데 2~3일이 걸렸다.
다음 차례는 토마토였다. 여전히 왕성하게 토마토 열매를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면서 더 이상 빨갛게 익지 않았다. 20도 전후의 온도가 유지되어야, 라이코펜 성분이 생성되면서 빨갛게 익게 된다. 먼저 익지 않은 열매들을 따내서, 창고 하우스의 한쪽에 이불로 덮어 놓았다. 빨갛게 익으면 즙을 짜볼 요량이었다. 토마토 나무들도 모두 고추나무 바로 위에 쌓았다. 2천 그루가 넘는 토마토 나무를 옮기고, 멀칭 비닐과 점적 테이프를 벗겨 내는 일을 이틀간 해야만 했다.
마지막 작업으로 우분을 15톤트럭으로 3대분을 가져다가, 노지와 하우스에 살포하였다. 그리고 포크레인을 불러서 40센티 미터 내외로 깊이 갈이를 하였다. 3년이상 같은 작물을 심고 있어서, 내년에 연작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많았기 때문이다. 로터리작업까지 하면서 올 한 해 농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와우, 이제부터 내년 4월까지 푹 쉬면 되겠네! 겨울동안 색소폰도 열심히 하고 글도 많이 쓰고, 여행도 가야겠네.”
일년동안 같이 고생한 백현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그동안 농사짓느라 쌓였던 피로를 풀 수 있는 농한기가 다가온 것을 기뻐했다. 하지만 몇 주일이 지나도 여전히 바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2주일동안 색소폰으로 10여곡을 연습해야 했다. 미니 연주회를 포함해서 3개의 연주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둔내 색소폰 동호회의 팀장님 부탁으로, 둔내 민요반 공연에 찬조 출연을 해야 했다. 색소폰 사관학교의 가을 연주회 여행도 가기로 했다. 이곳에 참석하기 위해 미리 3곡 정도 연습을 했다. 마지막으로 회사 다니면서 같이 음악활동을 했던 밴드단원들이 내가 있는 횡성으로 놀러 오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같이 악기 연주도 하고 노래도 하면서 옛날을 추억삼아 즐기기로 했던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한가로운 농한기의 생활이 아니었다. 아니 농번기때보다 더 정신이 없었다. 아직 일천한 나의 색소폰 실력으로 10여곡을 단기간내에 연습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 약속된 자리여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열심히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초 예정되어 있지 않던 ‘성장농 교육’이 생겼다. 나의 멘토역할을 하던 박선생님이 참석을 요청해온 것이다. 그전에도 박선생님 교육을 여러 차례 들었기 때문에, 또 다시 들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면 최소 5명의 교육생이 필요하단다. 농정원에서 갑작스럽게 교육 진행을 요청하는 바람에, 학생을 모집할 만한 시간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나에게 2~3명의 교육생을 모집해줄 것을 요청했다. 결국 나랑 같이 농사짓던 백현씨를 비롯해서 ‘농촌에서 살아보기’ 후배 교육생중에 둔내면에 정착한 다른 한 사람도 같이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 교육에 100시간이 할당되는 바람에, 거의 한달동안 일주일에 2~3일씩 수업이 진행되었다. 다른 연주회 일정과 같은 11월달에 교육이 진행되는 바람에, 정신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농한기에 들어섰음에도 바쁜 나를 되돌아보았다. 횡성군에 정착한 뒤, 나의 사회 활동이 점차 넓어지면서 맡게 된 역할들을 살펴보았다. 사실 나는 ‘half-day farmer’의 길을 걸으면서, 꼭 하고 싶은 1~2가지만 하는 한가로운 생활을 원했다. 그래서 둔내 색소폰 동호회와 색소폰 사관학교 입학을 통한 색소폰 학습 활동, 수년동안 해왔던 전문 작가와 함께 하는 글쓰기 공부에만 참여하고 있었다.
성경공부를 비롯해서 둔내면의 음악 밴드 가입 등 추가로 활동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있었다. 농사 일이외에 속해 있던 3군데에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꽤 많았다. 둔내 색소폰 공연을 위한 연습, 색소폰 사관학교의 숙제(매주 동영상 3~4개를 제작/제출), 브런치에 매주 1개씩 글을 올리고 있고, 글쓰기 수업을 위해 한 달에 2개의 글을 제출해야 했다. 매일 반나절 이상을 투입해야 하는 농사와 병행하기에는 약간 버거운 상황이었다. 내가 쉬는 시간에 했던 취미중의 하나인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시간을 줄여야만 했다.
“저는 팀장 역할을 맡기 싫습니다. 다른 사람이 해주면 좋겠네요.”
농한기인데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스케줄에 시달리던 나는, ‘성장농 교육 프로그램’에서 팀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상황에서, 이런 저런 잔 심부름이나 paper work을 해야할 가능성이 많은 팀장을 맡고 싶지 않았다. 잠시 어색해진 교육시간의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제2의 삶을 살아가면서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관계 맺기를 하고 싶다. 방만하지 않고 내가 배우거나 하고 싶은 소수 몇 개의 모임에만 관여하고 싶다. 관계를 지나치게 확대하고 싶어하는 나의 활동성을 경계하면서, 기존에 맺어진 관계 정리도 꾸준히 해나가기로 했다. 2025년을 끝맺어가면서 나의 확대된 관계 맺기를 정리해볼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