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첫 해에 겪은 열번째 이야기
“저는 집에서 수돗물은 물론 생수도 안 마셔요. 생수에는 건강에 좋지 않은 성분들이 섞여 있기 때문이죠. 그 대신 여러가지 약초를 달인 물만 마셔요.”
강사는 자신이 WPL(Work Place Learning) 담당 교수들의 회장이라고 소개하였다. WPL 회장이 되기까지 과정을 설명하면서, 수십분동안 자기 자랑을 하였다. '약초달인 물'은 그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더니 자신이 가져온 물병에 담긴 약초물을 마시면서, 생수를 파는 기업들을 비판하였다. 주제에서 벗어난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까 피곤함이 몰려왔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2시간 가까이 시골길을 달려온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교육장은 경기도의 외진 동네에 있어서, 시골길을 한참 지나와야 했다. 같이 수업을 듣던 20여명의 교육생들도 한결같이 강사의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제가 대기업에서 생수를 개발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는데요. 생수에는 여러가지 미네랄 성분이 들어있어서, 몸에 좋다는 것이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어요.”
수업을 듣던 학생중의 한 명이 분자생물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서 생수를 개발한 경력이 있었다. 그는 생수의 성분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강사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였다. 아무 생각없이 평상시 가지고 있던 생수에 대한 선입관을 이야기하던 강사는 당황하였다. 두 사람간의 논쟁이 얼마간 진행되더니, 강사가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지자고 하였다. 주제를 벗어나 달려가던 그의 이야기가 겨우 마무리되었다.
귀농을 할 때, 정부의 저리 융자 지원을 받으면 정착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일반 귀농인의 경우 최대 3억원을, 40세 이하의 청년 농부는 최대 5억원을 1~2%의 저리로 15년동안 빌릴 수 있다. 정부 보조금을 신청하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최근 5년이상 도시지역에서 거주한 후, 주민등록이 귀농지역으로 옮겨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농림수산부에서 제공하는 온오프라인 교육을 최소 100시간이상 받아야 한다. 오프라인 60시간, 온라인 40시간(온라인 교육은 실제 받은 교육시간의 50%로 인정해준다.)이 최소 요구수준이다.
이런 제도로 인해서 농업이나 어업, 임업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많은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이중에는 농촌이나 어촌에서 정착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교육과정이 많다. 굳이 정부에서 강제적으로 교육을 받도록 하지 않아도, 권하고 싶은 좋은 과정들이다.
문제는 교육을 시키는 강사들의 teaching 능력이다. 오프라인 교육 과정 중에서는 강사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이 수업 초반에 반드시 들어간다. 자신이 어떤 농사를 짓고 있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는 지 소개하는 사례가 많다. 그런데 때로는 자기 자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심한 경우에는 대부분의 수업시간을 이것으로 때우는 강사도 있다.
귀농이나 귀촌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직접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우수한 사람들을 선발해서 강사로 활용하고 있다. WPL 교수, 마이스터, 정부에서 인정하는 강사 등등…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고 있는 농림어업 분야의 교육사업이, 이들 교육자들의 중요한 소득원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 정부에서는 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을 사전에 점검하고, 강사를 대상으로 한 teaching 교육도 시행한다. 강사들의 원래 직업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이상, 가르치는 분야에서 전문가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지키지 않는 강사들이 가끔 눈에 띈다. 자기 자랑을 지나치게 늘어놓거나, 작물에 대한 교육내용이 아니라 자신의 농사 철학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는 자기 자랑 등에 대한 지엽적인 이야기는 가급적 짧게 하라는 지적을 받았다는 것까지도 밝히는 사람이 있었다.
횡성군 안흥면에서 유기농 관련한 교육을 3박 4일동안 들은 적이 있다. 8명의 학생들 중에서는 유기농 토마토 농장을 만들려고 하거나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러다 보니까 이런 저런 질문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수업시간이 매우 진지했다.
교육 첫날 저녁에는 선생님이 삼겹살을 사들고 와서, 서로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다. 그러자 둘째날에는 학생들이 삼겹살을 준비해서, 선생님 부부를 초대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친목뿐만 아니라 강의 중에 못 나눴던 각자의 토마토 농장 운영이나 향후 농사 계획에 대한 것들도 얘기하는 시간이었다. 진지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된 교육과정이었다. 과정이 끝난 뒤에도 교육생들끼리 카톡방에서 대화가 이어지고, 정기적인 만남도 가지기로 하였다.
대부분의 교육생들이 처음으로 시골생활을 하기 때문에, 교육이 끝난 뒤에 서로 필요로 하는 정보를 교환하는 유익한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같은 지역에서 정착할 경우, 유대관계가 더 돈독해지기도 한다. 새롭게 정착하는 지자체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교육으로 맺어진 인연이 소중해지는 것이다. 귀농 귀촌 교육은 이러한 부차적인 효과도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
온라인 교육은 집을 고르는 법이나 각종 작물의 재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내용들이 주류이다. 정부의 귀농귀촌 사이트에는 수십개의 컨텐츠들이 담겨있어서, 필요한 내용을 골라서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온라인의 특성상 정보 전달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것도 강사가 교육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단방향 소통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온-오프라인의 대부분 교육과정들은 귀농이나 귀촌 준비과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고 있다. 정작 정착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어려움들에 대해서는, 배울 수 있는 내용이 많이 부족하다. 귀농 귀촌과정에서 현실적으로 경험할 가능성이 높은 이슈나 문제점들은 오프라인 교육에서 채워져야 한다. 각자가 처한 환경이나 정착하려고 하는 지역의 특성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각자가 원하는 계획을 짤 수 있는 개별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 프로그램이 좀 더 도움이 되도록 한단계 upgrade를 하려면, 귀농 귀촌 준비과정뿐 아니라 정착지에서 soft-landing할 수 있는 내용들이 보강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강사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 제고도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