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3년차에 경험한 열여덟번째 이야기
오랜만에 산채마을 카페에 들렸다. 봄이 오고 있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추위를 몰아내려는 듯, 장작 난로가 따뜻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받아 들고 김대표님과 마주 앉았다. 자연스럽게 난로 바로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손님은 두세명밖에 없어서 조용하였다. 나의 토마토 육묘에 대한 이야기, 김대표님이 재배하려고 준비하는 토마토와 고추, 오이 이야기 등 농부들의 일상적인 소재들을 안부인사 삼아서 나눴다.
그러던 중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던 주제가 나왔다.
“내가 현미씨를 불러서 주의를 줬어요. 동네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많거든요.”
김대표님이 이야기를 꺼냈다. 바로 2024년 ‘농촌에서 살아보기’ 1개월 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던 현미씨의 연애사였다. 그녀는 김대표님이 진행했던 ‘농촌에서 살아보기’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처음으로 산채마을을 찾았다. 누구보다도 과정에 열심이었던 그녀는 산채마을에 정착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교육이 끝난 뒤에도, 노인회장님의 별채를 1년간 임대해서 살고 있었다.
“내가 운영하던 프로그램 때문에 왔던 사람인데, 마을에서 안좋은 소문이 나고 있어서 고민이 많아요. 같이 귀농한다고 했던 남편은 나타나질 않고, 엉뚱하게 마을 송사장하고 사귄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거든요.”
김대표님은 그녀의 소문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듯했다. 사실 송사장은 수 개월전에 이혼을 한 상태였다. 혼자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현미씨와 사귀더라도 크게 문제가 안되었다. 하지만 현미씨는 유부녀였기 때문에, 마을에서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교육을 받고 있던 시기에, 나는 김대표님의 요청으로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교육은 내 농장에서 진행되었다. 7~8명의 교육생들이 찾아와서, 재배하고 있던 토마토, 청양 고추, 그리고 명이나물과 눈개승마 등을 구경하였다. 나는 각 작물들을 재배할 때 고려해야할 점들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농사에 전혀 경험이 없던 교육생들은 농작물보다는 나의 귀농 이야기에 더 관심이 많았다. 농장에 설치해 놓은 저장고, 농막, 소형 창고 하우스, 지하수 등 인프라 시설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교육생들중에서 현미씨가 눈에 띄었다. 대부분 50대, 60대인데 비해서, 40대 초반의 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젊은 여자가 귀농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드물었던 탓이다.
“친환경 농사를 짓는 것이 힘들지 않으세요?”
경기도 위례에서 꽃집을 운영했다는 그녀는 친환경 농법에 관심이 많았다. 귀농을 하게 되면, 친환경으로 꽃을 키워서 판매를 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화학 비료나 농약을 써서 농사 짓는 것보다 힘들죠. 하지만 친환경 농법이 소비자들뿐 아니라 농사짓는 나 자신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귀농하면서 친환경 농사를 하게 된 배경을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교육시간이 1시간으로 제한되어 있었던 탓에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하고, 나중에 다시 내 농장에 들리기로 하고 마무리하였다. 열성적으로 질문을 하던 그녀의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언니가 공근면에서 진행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 들어왔어요. 프로그램이 없는 날이면 제가 사는 집에 와서 지내고 있어요.”
어느 일요일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갔다가 그녀와 그녀의 언니를 만났다. 그들은 천주교 신자였다. 그녀 언니는 착하고 수더분한 인상이었다. 그녀도 역시 귀농을 꿈꾸며, 다른 지역에서 진행되는 교육과정에 참여하고 있었다. 우리는 미사에 참례를 해야 해서, 가볍게 인사를 하고 성당안으로 들어갔다. 교육받던 현미씨를 처음 만난 지 몇 개월이 지난 2025년초 어느 날이었다.
현미씨와 함께 그녀의 언니를 처음 만나고 며칠이 지난 뒤였다. 같이 일하던 백현씨가 마을에 떠도는 현미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현미씨는 송사장하고 사귀고, 그녀의 언니는 송사장의 마을 후배인 기보씨와 만나고 있다고 하네요.”
현미씨뿐 아니라 언니까지 소문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 큰 이야기거리가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송사장과 기보씨는 50대초반, 40대 후반으로 마을에서 제일 젊은 농부들이었다. 기보씨와 현미씨의 언니는 양쪽 다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들의 만남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축하받을 일이었다. 하지만 송사장과 현미씨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 관계였기 때문에, 하나의 패키지처럼 마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두 쌍의 커플이 동시에 연애를 한다는 사실이 스토리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소재였다.
“도시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내용들인데, 농촌이라서 다들 야단이군요.”
다시 몇 개월이 흐른 뒤 ‘농촌에서 살아보기’ 동기들끼리 정선으로 1박 2일 MT를 갔었다. MT를 마치고 둔내로 돌아오는 길에 장미씨가 한 이야기였다. 나도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작은 공동체인 시골이어서 생기는 현상이지요. 이웃 사람들의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잖아요. 나도 평상시에 시골에서 떠도는 소문이 부담스러워서, 말이나 행동에 조심을 많이 하고 있어요.”
도시에서는 다양한 환경에 처해있는 남녀간의 만남이 일상화되어 있다. 송사장과 현미씨 정도의 만남은 남들이 관심도 갖지 않는 이슈였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희귀한 사례이기에, 소문이 갈수록 부풀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1년 가까이 계속해서. 현미씨가 이혼하기로 했고 송사장과 결혼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떠돌면서, 소문은 차츰 잦아들었다. 둔내면의 한 아파트에서 살림을 차렸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이런 저런 뒷담화가 많은 산채마을에 머무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같은 천주교 신자여서 성당에서 그녀와 가끔씩 마주쳤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소문에 대해서는 일체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녀가 부담스러워할 주제이기도 하지만,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는 이슈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현미씨와 송사장은 40대, 50대의 나이이고 이미 한번씩 결혼을 해본 경험이 있기에, 스스로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앞날에 축복을 해주면 좋을 일을, 굳이 뒷담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비난할 이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