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차 귀농인의 하루>일년을 마무리하는 농촌 동호회들

- 귀농 3년차에 경험한 열아홉번째 이야기

by 유진

“우리가 먼저 리허설합시다. 빨리 하고 쉬는 것이 낫지.”

색소폰반 팀장님이 리허설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회원들에게 이야기했다. 30여분 후에나 순서가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다른 팀들이 리허설 준비가 미쳐 안되어 있는 사이에, 우리가 치고 들어간 것이다. 동호회원 9명은 부리나케 색소폰과 함께, 반주기와 TV 모니터 2대를 들고 무대위로 올라갔다. 우리들은 반주기와 연결된 TV 모니터에서 나오는 악보 화면을 보면서 연주할 계획이었다. 반주기와 TV 모니터가 제자리를 잡은 뒤, 전원과 스피커에 연결하였다. 그런데 그때 자그마한 사고가 발생했다. 회원중 한 명이 TV 모니터의 위치를 조정하다가, 그만 모니터가 앞으로 엎어져서 깨져버린 것이다. 못쓰게 되어버린 모니터를 한쪽으로 치우고, 반주기와 1개의 TV 모니터만으로 리허설을 시작했다.


은퇴하고 귀촌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탓도 있지만, 농촌에는 노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은퇴한 노인들이라고 하지만 건강한 분들이다. 더군다나 귀촌한 사람들은 도시에서 즐기던 스포츠나 취미 생활을 농촌에서도 계속하기를 희망한다. 자연스럽게 많은 모임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둔내면에는 색소폰, 민요, 영어회화, 통기타, 댄스 스포츠, 요가, 난타, 우쿠렐레, 드럼 등 20여개의 동호회가 있고, 각 동호회에는 20여명이상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어림잡아 4백명 이상의 회원들이 속해 있는 것이다. 횡성군이나 둔내면에서도 주민 복지를 위해서 이들 동호회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다. 장소뿐 아니라 강사비, 드럼이나 장고, TV 모니터 등 각종 장비들도 구입해주었다. 내년에는 동호회 활동을 위한 건물이 준공되면서, 더 쾌적한 공간에서 모임을 할 수 있게 된단다. 농촌의 건전한 사랑방 모임이라고나 할까?

대부분의 동호회들은 일년에 두차례 공연을 한다. 8월초 둔내면에서 유명한 토마토 축제가 열리는데, 이때 구경온 수천명의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한다. 그리고 12월이면 일년을 마무리하는 주민자치 프로그램 발표회가 있다. 동호회원들은 일년내내 두번의 공연을 위한 준비를 한다. 그래서 토마토 축제의 공연이 끝나면 일년의 절반이 지나간 것이고, 마지막 발표회가 끝나면 일년이 지나간 것을 느끼게 된다. 두번의 공연이 동호회원들에게는 즐겁기도 하지만, 비중있는 이벤트이다 보니까 머리속에 진한 추억으로 남는다. 특히 나이든 회원들이 많다 보니까, 세월의 흐름을 더욱 진하게 느끼는 것 같다. 이 모든 활동들이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2025년 12월 3일 둔내 복합체육센터 체육관에는 수십개의 의자와 책상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책상 위에는 마실 물, 과자, 과일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날은 20개 전후의 둔내면 동호회원들이 일년동안 갈고 닦은 것들을 발표하게 되어 있었다.

동호회원들과 둔내면 관계자들, 방청객들을 포함해서 4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오전 10시부터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체육관의 가장자리에는 서예반, 생활도예반, 핸드 페인팅 등의 동호회원들이 전시준비를 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색소폰 동호회원중에서 제일 먼저 도착한 나는 전시 준비중인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아마추어들의 작품들 사이로 수준급 작품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서예반에는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분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체육관 옆쪽에 있던 연습실에서 드럼소리, 장고소리 등이 흘러나오는 것을 봐서, 공연에 앞서서 회원들이 열심히 마지막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후 1시부터 발표회가 시작되기 때문에, 오전에는 리허설만 하고 끝이 났다. 점심식사 대용으로 전이나 닭강정 등 간단한 요깃 거리가 제공되었다. 동호회원들은 발표 준비를 하고 잡담도 나누면서, 이 사람 저 사람과 인사하기 바빴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시골 장날 같았다. 큰 사랑방이 만들어진 것이다.


오후 1시 국민의례, 개회사, 축사 등이 진행되면서 발표회가 시작되었다. 총 15개 동호회가 공연을 하는데, 내가 속한 색소폰반은 끝에서 두번째 순서였다. 다른 동호회에서 공연하면 열심히 박수를 쳐주었다. 우쿠렐레나 댄스 스포츠 등 여성회원들로만 이루어진 동호회도 있었는데, 그들이 앉아있는 자리는 유독 시끄러웠다. 사실 전체 동호회원의 70~80%가 여성이었다. 남성이 많은 동호회는 색소폰이 유일한 것 같았다.

드럼 연주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발표회가 시작되었다. 저마다 동호회의 특성에 맞는 옷들을 입고 있었다. 여자 회원들로만 구성되어 있던 가요장구 동호회는 큰 리본이 달린 하얀 브라우스에 예쁜 분홍색 겉옷을 단정하게 입고 나왔다. 장구와 심벌즈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통기타 동호회는 청바지에 검정색 상의롤 입고 나왔다. 서툴지만 열심히 연습한 티가 났다.

가요장구 동호회 발표 사진_20251203.jpg
통기타 동호회 발표 사진_20251203.jpg

공연 중간중간 다음 순서의 동호회가 무대 정비를 하는 시간에, 아나운서가 경품 뽑기를 통해서 선물 나누어 주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쌀을 비롯해서 상당히 많은 선물세트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사전에 나누어준 팔찌에는 참가자들의 번호가 씌여져 있었다. 이 번호가 당첨되면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 번호가 불리어질 때마다, 환호성이 울려 퍼지곤 했다.

다른 동호회의 공연이 하나 둘 끝나가면서, 어느 덧 우리 차례가 다가왔다. 색소폰 동호회는 하얀 바지에 분홍색 상의, 그리고 회색 계통의 모자를 썼다. 작년 발표회때 입었던 의상이었다. 색소폰 회원들은 각자의 색소폰을 들고 무대에 올라갔다. 우리가 연습했던 ‘귀연’, ‘한 많은 대동강’, ‘내나이가 어때서’ 3곡을 순차적으로 연주했다. 모두들 여러 차례 공연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인지, 무사히 마무리하였다. 특히 마지막 곡인 ‘내 나이가 어때서’를 연주할 때는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서 춤을 추기도 했다. 축제 분위기였다.

색소폰 동호회 발표 사진_20251203.jpg


[선생님과 동호회원 여러분들 덕분에 많이 배우고, 추억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건강하게 지내시고, 내년에 뵙겠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어요! 한 겨울에 건강들 챙기세요~]

발표회를 마지막으로 올 한 해 색소폰 동호회 활동도 막을 내렸다. 공연할 때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카톡방으로 공유하면서, 서로 올해의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내년 3월 동호회의 새로운 활동이 시작될 때까지 잠시 헤어져 있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섭섭해하는 마음 한 켠에는 한 해가 또 갔다는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작별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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