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농사꾼의 하루 퇴고글>농촌의 시계

- 귀농 첫 해에 겪은 열 한번째 이야기

by 유진

“일전에 유기농 퇴비 300포를 주문했는데요, 퇴비 살포작업을 당초 예정대로 3월 10일에 해주실수 있나요?”

둔내면에서 유기농 퇴비를 판매하는 사장님과 통화를 했다. 퇴비를 많이 주문하면, 밭에 퇴비 살포 작업까지 해주었다. 살포 작업을 할 때 노지 밭에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날짜를 물어본 것이다.

“예정은 그렇게 되어 있는데, 농사 일이라는 것이 정해진 날짜에 하기가 힘들어요. 노지 밭의 주소와 살포할 곳을 알려주면, 내가 가능할 때 가서 해놓을께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사장님의 대답이었다.

‘계획대로 3월 10일날 노지 밭에 가서 살포작업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왜 농사 일이라는 것이 정해진 날짜에 하기 힘들지?’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그러려니 생각하고 다시 물어보지 않았다. 오랫동안 회사생활을 해왔던 나에게는 ‘약속은 꼭 지키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 있었다. 비즈니스 관계에서 약속을 어기는 것은 신뢰를 깨뜨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골프를 치는 사교적인 약속도 꼭 지키면서 살아왔다. 몸이 아파서 도저히 칠 수 없거나, 골프장에 나타날 수 없는 경조사가 생기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골프 약속은 취소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다. 수십년동안 이렇게 살아왔던 나에게, 약속이 쉽게 어그러지는 농촌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2023년 3월 6일 퇴비를 판매하는 사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일 둔내 삽교리에 갈 일이 있어서, 간 김에 퇴비 뿌려주는 작업을 할 거예요.”

당초 예정되었던 3월 10일보다 3일이 빠른 날이었다. 빨리 해준다고 하니 감사하였다. 일찍 퇴비를 뿌려 놓으면, 완숙이 되지 않는 퇴비에서 생기는 가스로 인한 부작용을 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퇴비를 뿌려주기로 한 3월 7일이 되었다. 아침 10시에 오기로 했는데, 약속 시간이 지나서도 아무런 기별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동안 밀린 창고용 하우스의 짐 정리 등 잔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점심시간에 올까 하는 생각에서 점심도 거른 채 오후를 맞았다.

“다른 곳에서 작업하는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져서 늦어지고 있어요. 조금 기다려주세요.”

다그치는 것 같아서 참았다가,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사장님에게 전화를 했다. 사장님은 바로 간다는 이야기대신 좀 더 기다리라는 대답만을 하였다. 할 수없이 ‘오늘 안으로는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오후 5시 가까이 되어서야 커다란 소리를 내면서 대형 트럭에 실린 장비가 도착했다. 퇴비뿌리는 기계는 탱크의 바퀴에 사용되는 커다란 무한궤도를 장착하고 있었다. 상부에는 퇴비를 싣고 뿌리는 부분과 사람이 타는 곳만 설치되어 있었고, 지붕이 없었다. 노지뿐 아니라 하우스 안으로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1천평에 가까운 노지와 하우스에 퇴비를 뿌리는 데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퇴비뿌리는 기계를 처음 보는데, 일을 쉽게 끝내네요.”

“횡성군과 평창군에 퇴비뿌리는 기계가 이것 한대밖에 없어요. 그래서 평창군에서 작업하는 날에는 횡성군에 오기 힘들어요.”

음료수를 주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나에게 장비 기사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날 너무 늦게 온 것이 미안했던 모양이다. 희귀한 장비이기도 하거니와 일년에 퇴비 뿌리는 시기가 3~4월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까, 바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비로소 정해진 날짜에 작업하기 힘든 이유를 알게 되었다.


퇴비가 살포된 노지 밭에 로터리 작업을 해야만 했다. 천평이나 되는 넓은 면적이었기에, 기계장비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 그래서 퇴비를 살포하기로 한 3월초에 트랙터를 가지고 있는 대표님에게 부탁을 했다. 그러자 한참 이런 저런 계산을 하던 대표님이 3월말이나 가능하단다. 거의 한달 후에나 해줄 수 있다고 답을 준 것이다.

“감자 밭에 비료뿌리는 장비를 트랙터에 연결해 놓은 상태예요. 이 작업이 끝난 후에 로터리 장비로 바꿔주어야, 로터리 작업이 가능해지거든요. 그래서 빨리 해주기 힘들어요.”

트랙터를 가지고 있다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서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큰 규모의 농사를 짓는 농부가 아닌 이상 트랙터나 기타 장비를 모두 갖추고 있지 않는다. 물론 농업기술센터의 농기계 임대사업소에서 기계 장비를 빌릴 수 있다. 이것도 2주전에는 예약을 해야 하고, 먼저 빌린 사람이 있는 경우는 우선 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설사 각종 장비가 다 갖추어져 있다고 해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작업을 할 수 없다. 비가 오는 날에는 작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땅이 질척거려서 기계 장비를 다루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작업하기에 좋은 환경이 못된다. 날씨도 농촌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였다.


노지 밭과 하우스에 고르게 펼쳐진 퇴비를 보면서, 한 해 농사의 출발이 만족스러웠다. 그러면서 ‘수십년 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만들어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해왔던 습관을 바꿔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협업해야 하는 사람들의 스케줄이나 자연환경의 변화에 의해 좌우되는 농촌의 시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우스에 퇴비 살포기로 작업한 뒤 사진_20250412_161414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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