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첫 해에 겪은 열 두번째 이야기
농촌 밖에서 보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모두 그냥 농부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농부들은 주변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을 대농(大農)과 소농(小農)으로 나눈다. (정부에서 통계를 잡을 때는 3천평을 기준으로 분류한다.) 어떤 농부가 얼마 만한 크기의 논밭에 농사를 짓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묵시적으로 나눈다. 보통 비닐하우스는 1천평 미만, 노지밭은 2~3천평 미만을 소농으로 보고, 그 이상이면 대농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나는 농사 첫해인 2023년에 비닐하우스 1백평, 노지밭 5백평을 임대해서 농사지었으니까, 소농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2023년 3월 내 노지 밭의 로터리 작업을 하기 위해서, 트랙터를 가지고 있는 대표님에게 부탁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임대한 100평짜리 비닐하우스가 작은데도 불구하고, 직접 몸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듣고 있던 대표님이 웃으면서, 농사일을 할 때 ‘대농’과 ‘소농’의 차이를 설명해줬다.
“대농이 오히려 농사짓기 쉽고, 소농이 더 힘들어요.”
대표님의 이 말이 내 머리에 꽂혔다.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기에, 대표님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대농은 대부분 기계로 일을 하는 반면, 소농은 몸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죠. 그리고 대농은 외국인 노동자나 외부 일손을 활용할 수 있는데, 소농은 비싼 품삯을 감당하기 힘들어요.”
농사를 처음 짓는 나에게 값비싼 장비가 있을 리 없었다. 더군다나 임대한 밭 규모가 작다 보니까, 농기계를 구입하기도 어려웠다. 할 수 없이 필요할 때마다 농기계가 있는 이웃 농부들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농기계를 필요로 하는 시기에는, 그들도 농기계를 많이 활용해야 하는 때이다.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거니와, 외부에서 갓 들어온 사람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는 농부는 그다지 많지 않다.
더군다나 소농은 농기계를 구입하기에도 어려움이 많다. 이와 관련해서 귀농관련 교육시간에 강사가 해준 말이 있다.
“농협에서 대출받아서 비싼 농기계를 사곤 하는데, 결국 농사지어서 이 대출금하고 이자갚는데 다 쓰는 꼴이 되죠. 가능하면 비싼 농기계를 사지 마세요.”
대부분의 농가에서 가지고 있는 트랙터의 가격은 수천만원대에 이른다. 대농은 농기계를 활용해서 수확을 충분히 늘릴 수 있기 때문에, 단기간내에 구입비를 매출로 충당할 수 있다. 하지만 소농은 수년동안 기계 구입비와 대출금 이자를 갚아 나가야 한다. 결국 소농은 농사지어서 농기계 장비회사의 매출만 늘려주는 꼴이 된다.
대농뿐 아니라 나와 같은 소농들도 정식시기나 수확시기 등 바쁠 때는, 외국인 노동자 등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특정 농부의 농장에 한해동안 소속되어 있으면서, 매달 월급을 받는다. 하지만 소농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하루 종일 일을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주기 어렵다. 논밭의 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월급을 받는 외국인 노동자를 충분히 활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인력 파견업을 하는 자그마한 회사에 속해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있다. 이 회사들은 20여명 전후의 외국인을 고용한 후, 농부들의 요청이 들어오면 일당을 받고 이들을 투입한다. 소농들은 바쁠 때 이들 파견회사에게 2~3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파견회사들은 보다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일거리를 줄 수 있는 대농을 선호한다. 그래야 매출도 오르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한 농장에서 일하게 하면서 쉽게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소농들은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은 실정이다.
2022년 9월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송사장집에 놀러갔다. 소주 한잔 하자고 송사장이 초대한 것이다. 창고로 이용하는 비닐하우스 안에 놓여있던 테이블에 부대찌개와 소주, 막걸리 등이 준비되었다. 나와 송사장, 그리고 송사장 집에서 숙식을 하며 일을 도와주는 젊은 태국인 부부가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이들 태국인 부부는 20대의 젊은이들이었다. 수년째 송사장 집에 기거하면서 작업을 함께하고 있단다.
태국인 부부는 소주를 잘 마셨다. 즐거운 분위기속에서 몇 순배 술잔을 나누었다. 그때 내가 태국인 부부를 보면서 송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겨울 농한기에는 둔내에 일이 없을 텐데, 이 부부는 어디에서 일을 하나요?”
“겨울에는 남부지방이나 도시 공장에서 일을 해요.”
이 태국인 부부는 겨울에는 일감이 있는 다른 곳에 갔다가, 봄이 되면 송사장 집으로 온다고 했다. 만평이 넘는 밭에 농사를 짓고 있던 송사장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이들 외국인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 송사장에게 부탁해도 되나요?
나도 이들을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물었다.
“이 친구들 일당을 주시면 가능하죠.”
송사장은 긍정적으로 대답해주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송사장에게 외국인들의 도움을 부탁하기 어려웠다. 내가 이들을 필요로 할 때, 송사장도 일손이 부족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소농보다 대농은 매출액이 큰 반면, 단위 면적당 관리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간다. 농작물 수확량이 많기 때문에, 유통망을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고 비싼 가격을 받을 가능성도 높다. 대농이 외국인 노동자의 관리를 포함해서 소농보다 많은 것들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하지만, 상대적으로 매출이나 수익이 크기 때문에 이것들을 감내하는 것이다. 그 결과 농촌에서는 소농과 대농간의 소득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어서, 농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농촌은 대농과 소농간 소득격차 이슈가 부각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근본적으로 노령인구가 많기 때문에, 일손 부족이 보다 심각한 이슈가 된 지 오래 된 때문이다. 소득격차보다는 농산물 자급률을 높여야만 하는 것이 항상 정책의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소농의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운 여건인 것이다.
대표님에게 트랙터를 빌려 달라고 부탁하던 자리에 마침 대표님의 아내분도 같이 있었다.
“농사 일이 재미있나요?”
그녀가 웃으면서 나에게 물어봤다. 그녀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과정에서 산나물, 곰취 등 각종 야채류의 재배 방법에 대한 교육을 담당했었기에, 교육생이었던 나의 귀농과정에 관심이 많았다.
“글쎄요. 반반인 것 같아요.”
나는 웃으면서 애매한 대답을 했다. 왜 농사를 짓느냐는 목표의 차이가 결국 재미있는지 여부를 결정할 것 같았다. 매출과 수익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대농을 꿈꾸느냐, 아니면 농촌생활을 즐겁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는 선택을 해야한다. 전자는 직업 농부로서 하루 종일 농사 일에 투자할 수밖에 없어서, 은퇴하기 전에 했던 회사생활과 별다를 바가 없는 생활이 된다. 반면 후자는 여유있게 농사 일을 하면서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된다. 다만 육체노동을 많이 해야 하는 반면에 수입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몸을 많이 써야만 하는 작은 규모보다는 기계 활용이 가능한 최소 규모(1천평 이상)의 농사를 짓는 것이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