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3년차에 경험한 스무번째 이야기
‘JOMO(Joy Of Missing Out)’, 어느 날 산책길에 애청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FOMO(Fear Of Missing Out)라는 용어가 더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FOMO는 ‘뭔가를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이 즐기는 경험이나 정보 등을 놓칠까봐 불안해하는 심리 상태를 뜻한다.
FOMO의 반대 개념으로 JOMO를 이해한다면,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을 알려고 하거나 가지려고 하지 않을 때의 즐거움을 의미할 것이다. 어쩌면 불필요한 욕심을 가지지 않는 minimal life와 통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에게 JOMO는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FOMO의 반대 개념으로만 국한한다면, 나 자신이 생각의 주체가 되었을 때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객체들을 잊어버리는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문득 나 자신을 주체가 아닌 생각의 객체로 놓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나 자신이 남들이나 사회로부터 잊혀지는 즐거움이라고 재정의할 수도 있지 않을까? FOMO의 반대개념으로서인 JOMO와는 상당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류**씨를 아시나요? 길에 쓰러져 계셔서, 119 구급차를 불렀어요.”
모르는 사람이 아버님 전화기로 전화를 걸어왔다. 길가에 쓰러져 계신 아버님을 발견하고 구급차를 불러주신 것 같았다. 보호자를 찾기 위해서, 아버님 핸드폰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간신히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했다. 그리고는 부리나케 짐을 챙겨서 아버님이 계신 전주로 향하였다.
아버님은 80대 중반으로 연로하시기도 하지만, 고혈압 약을 드시고 있고 심장 혈관에 스텐트시술도 하셨다. 추운 날씨에는 외출을 삼가 해야 하는데, 어디를 다녀오시다가 쓰러지신 것 같았다. 전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심장 시술을 받은 바 있던 전북대병원 응급실에 입원해 계셨다. 그리고는 곧바로 심장센터 중환자실로 옮겨서 2주가 넘게 치료를 받았다.
중환자실이라서 그런지, 일주일에 3일, 그것도 하루에 30분만 면회가 허용되었다. 아버님은 줄곧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 아버님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을 텐데, 갑자기 이렇게 되어서 많이 섭섭해하실까?’
‘병에 걸려서 오랫동안 고통을 받다가 돌아가시는 것보다, 이렇게 고통없이 돌아가시는 것을 더 원하셨을까?’
2주가 지나도록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아버님을 보면서, 내가 원하는 아버님과의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 아버님이 원하는 이별의 모습을 갖춰드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이 생각의 주체가 되어서, 그분을 위한 ‘헤어짐’을 고민해 보았다. 반대로 아버님을 다른 사람의 객체 관점에 위치해 놓고도 생각해보았다.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시면 아버님을 기억하고 있는 가족들이나 친구들의 머리 속에서 아버님에 대한 기억이 점차 옅어질 수밖에 없다.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대로. 아버님은 이것을 기꺼이 받아들이실까? 잊혀지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보다 힘겨워하지 않으실까?
되돌아보면 지난 30여년간 회사에 다니면서 FOMO 증후군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같다. 남들이 승진할 때 나도 승진해야할 것 같았고, 남들이 재산을 모을 때 나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남들이 재미있게 취미생활을 하면 나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뭔가를 하나씩 더 쌓아야 하고, 더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채찍질해가면서 앞을 향해서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은퇴를 하고 나서도 한동안 FOMO 증후군에 시달려야 했다. 뭔가를 해야할 것 같은데, 무엇을 해야 할 지를 모르는 시간이 한참동안 있었다. 어느 날 그런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는 무엇을 어디서부터 버려야 하는 건지, 어떤 것들을 잊어버려야 하는 건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어쩌면 이것이 JOMO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수십년동안 뭔가를 얻기 위해서만 노력했던 나에게, JOMO를 느끼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가 뭔가를 하거나 가지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기도 어려웠는데, 내가 잊혀지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훨씬 더 힘들었다. 은퇴를 하니까 회사의 공적 업무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제일 먼저 끊어졌다. 그리고 그다지 친하지 않고 알고만 지냈던 사람들도 차츰 사라져갔다. 이 과정에서 즐거움은커녕 뭔가가 나에게서 떠나간다는 생각에서 허전한 마음이 더 컸다. 외로움만 쌓여갔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차츰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고, 대신 당위적인 상황으로 간주하였다. 그렇게 하나 둘씩 나의 지난 삶을 정리하면서, 새롭게 제2의 삶을 준비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고장에서 새로운 친구들이나 이웃들과의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다른 사람을 사귀는 것이 가장 상처를 잘 치유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똑 같은 이치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JOMO는 아니지만, FOMO를 치유한 결과가 되었다.
아버님이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JOMO라는 단어가 나의 뇌리에 더 깊이 박혔다. 아버님과 영원한 이별을 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이것을 즐거움이라는 감정으로 대할 수는 없었다. 아버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