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3년차에 경험한 스물 한번째 이야기
“환자분은 더 이상 소생치료를 할 것이 없기 때문에, 2차 병원으로 옮기셔야 해요.”
아버님이 심장마비로 쓰러진 지 2주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아버님이 입원해있던 전북대병원 중환자실의 담당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중환자실에 병상이 부족한 실정이니까, 빨리 옮겨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막상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하니까, 속상하기도 하고 망설여졌다. 소생치료를 못 받는다는 것은 곧 사망선고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가고 싶었던 2차 병원에는 당장 빈 병상이 없어서 입원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틀만 더 있다가 가면 안될까요? 옮기고 싶은 요양병원이 그때나 자리가 난다고 해서요.”
나는 간호사에게 며칠만 더 중환자실에 있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다. 뉴스를 통하여 가끔 요양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잘 모르는 요양병원에 아버님을 모시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잘 아는 의사가 있는 곳으로 옮기고 싶은 욕심이었다.
“안되요. 중환자실은 학교측에서 직접 병상관리를 하고 있어서, 적합하지 않은 환자를 계속 놓아두면 교수님이 시말서를 써야 해요.”
간호사의 대답은 단호하였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병원 규정상 3차 종합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할 것이 없으면, 2차 병원으로 옮기도록 되어 있다. 더군다나 중환자실은 수시로 환자가 들이닥치는 곳이라서, 더더욱 규정을 지켜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통보를 받은 보호자 입장에서는 막막하기만 했다. 환자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는 듯한 간호사의 강경한 태도에 화도 났다.
아버님이 갑자기 쓰러지신 후, 전북대병원에 입원했지만 깨어나지를 못했다. 의사들은 한결같이 회생 가능성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준비를 해야만 했다. 제일 먼저 아버님이 돌아가실 경우 묻히실 곳을 정해야 했다. 아버님이 쓰러지시기 전에, 이미 화장을 해서 봉안당에 모시는 것으로 논의를 했었다. 그래서 어머님을 모시고 전주시와 그 근처에 있는 추모공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실내에 있는 봉안당은 이미 자리가 없어요. 실외에는 빈자리가 있으니까, 그쪽을 이용하여도 돼요. 하지만 15년동안만 이용 가능해요.”
제일 먼저 찾아간 전주시립 추모공원에서 담당자가 해준 이야기였다. 우리는 실외에 있는 봉안당에 가보았는데, 유골함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직접 비바람을 맞지 않게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붕이나 벽체가 없어서, 외부 온도 변화에 따른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습기로 인해 곰팡이가 생기기 쉬운 환경이었다. 더군다나 15년뒤에는 다른 곳으로 다시 옮겨야만 했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봉안당은 절대 이용하면 안돼. 아는 분이 전주의 한 민간 추모공원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곳이 부도나는 바람에 유골함을 찾지도 못하고 있거든.”
우리의 사정을 잘 아는 외삼촌이 해준 말이었다. 하지만 시립 추모공원에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없이 민간의 봉안당을 여러 곳 둘러보았다. 시립 봉안당에 비해서 시설도 좋고 빈 자리가 많았다. 영구히 모실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외삼촌의 조언이 생각나서 분양율이 얼마나 되는 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많이 분양된 곳이 30~40%정도 되었고, 그렇지 않은 곳은 20% 정도에 불과해 보였다. 비교적 최근에 확장공사를 한 곳은 분양율이 현저히 떨어졌다.
향후에 어머님도 같이 모실 생각이어서, 2인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알아보았다. 민간 봉안당의 분양가는 보통 1,500만원내외였는데, 특실로 꾸며 놓은 곳은 3천만원이 넘어가기도 하였다. 분양받은 지 10년정도 지나서 더 이상 이용하지 않고자 할 경우, 보호자가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분양금의 10%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1,500만원짜리 2인실을 팔면, 순 매출은 매년 150만원이 약간 넘는다는 이야기이다. 이것도 100% 유동화시킬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언제 반환해야할 지 모르기 때문에, 일정정도의 유보금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봉안당의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아무리 작다고 해도, 분양율 20~30%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순 매출 규모가 너무 작았다. 회사 입장에서는 일시불로 받은 분양대금을 운용해서 최대한의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구조였다. 그러다가 투자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추모공원은 부도가 나게 되는 것이다. 보호자가 믿고 유골함을 맡기기에는 불안정한 비즈니스 구조였다. 자본규모가 영세한 추모공원일 경우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아버님을 모실 수 있는 요양병원은 전주에 딱 한 곳 밖에 없었다. 그곳에도 중환자실이 있었다. 30명 내외의 노인들이 이미 입원해 있었다. 그 사이를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한결같이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었다. 대소변을 가리는 기본적인 행위도 못하는 분들이 많았다. 아버님은 이미 병실 한 켠에 뉘여 있었다. 의식이 있는 다른 분들에 비해서 손이 훨씬 많이 갈 것이다.
처음 우리를 대하는 간호사들의 태도는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요양병원의 특성상 환자가 완치될 수 있도록 치료하기보다는 현상 유지를 하는 곳이어서 그런가? 환자의 상태가 좋아질 수 있는 지에 대한 질문이나 고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존의 3차 병원에서 환자에게 처방했던 약 종류나 영양제 종류를 파악하고는 그대로 진행하면 그만인 듯했다. 인간으로서 환자가 아닌 또 한 명의 돈을 벌어주는 비즈니스 대상으로 취급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느끼기에 충분한 태도였다. 중환자실에는 보호자가 있을 만한 공간도 부족했지만, 간호사들이 보살펴 주기 때문에 굳이 보호자가 있을 필요가 없단다. 아버님만 병실에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병원에서 돈 벌이의 수단이 아닌 인간으로서 충분히 대우받을 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추모공원 등 노인들을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비즈니스의 근본은 고객의 가치와 needs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고객의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었을 때 그들의 지갑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비즈니스의 근본을 충족시킬 수 있는 체계도 잡혀 있지 않은 듯했다. 노인 market이 빠르게 확장되는 속도에 비해서, 노인 business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