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차 귀농인의 하루>장례식장에서 즐거우면 안되는가?

- 귀농 3년차에 경험한 스물 두번째 이야기

by 유진

“장례식장에서는 건배를 안하는거야.”

한 고등학교 친구가 눈을 크게 뜨면서, 나를 보고 한 말이었다. 고등학교때부터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들이 멀리 서울에서, 일산에서, 그리고 전라남도 구례에서 찾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술잔을 들어올려서 건배를 하려고 했다. 친구의 말에 순간 멈칫하면서, 장례식장의 분위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장례식장에서는 항상 슬프고 엄숙하기만 해야 하니? 돌아가신 아버님은 상주들이나 조문객들이 자신의 행복했던 삶을 기억해주면서도, 이들끼리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더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몇주전에 심장마비로 쓰러지신 아버님은 한번도 의식이 돌아오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내가 장남이었던 탓에 장례식의 모든 절차를 주도해야 했다. 장례식장에는 우리 삼남매뿐 아니라 아버님의 손자 손녀들이 일곱명이나 있었다. 특히 손자 손녀들은 가까운 분의 장례식을 처음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행동거지를 해야 하는 지, 나를 포함한 부모들의 모습을 보고 읽어내려 할 것이다.

또한 장례식을 치르는 며칠동안 우리 삼남매를 포함해서 일곱명의 손자 손녀들이 자연스럽게 같이 있게 되었다. 이렇게 모두가 함께 있는 것은 일년중 명절이나 부모님의 생신 등 몇 차례에 불과하였다. 손자 손녀들이 모두 장성해서 각자 자신의 일을 해야 하는 사회 초년생들이었기에, 같은 날 모이기가 쉽지 않았다. 아버님은 돌아가시면서 자손들에게 이러한 기회를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이 한국 장례식의 슬픈 문화와 형식에만 얽매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돌아가신 아버님을 추모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했다.


나는 주재원으로 미국에서 6~7년동안 산 적이 있다. 그때 미국 사람들의 장례식 문화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고인의 삶을 기억하고 남겨진 이들을 위로하는 것이, 장례식 절차의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했다. 장례식 기간에 웃음이 터져 나오더라도, 그것은 고인과의 즐거웠던 추억을 회상하며 나오는 치유의 웃음에 가까운 것이었다. 우스꽝스러운 일화를 이야기할 때는 파티처럼 웃기도 하지만, 곧바로 고인을 잃은 상실감에 눈물을 흘리는 등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분위기란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상주가 장례식 기간중에 웃는 것을 삼가는 것이 예법이다. 항상 엄숙하고 슬픈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한다. 하례객들도 웃는 것은 물론 시끄럽게 떠드는 것조차 예절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다. 요즘은 이전과 점차 달라지고 있지만.


나는 아버님의 영정사진 앞에서 가급적 엄숙한 모습으로 조문객들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식사하거나 술 한잔하는 식탁에서는 지나치지 않는 범위에서 웃기도 하고 농담도 주고받았다. 그들이 아버님의 영면하심을 위로하고 좋은 곳으로 가시도록 기원하되, 아버님이나 상주들과 가지고 있는 추억을 이야기할 때는 웃기도 했다. 그렇게 돌아가신 분이나 남겨진 자손들에게 추억과 위로를 해주는 것이다.


병원에서 의식없이 누워 계시는 동안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남겨진 어머님과 자식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씀을 듣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아버님의 성격상 분명히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을 간직하고 계셨을 것이다. 그러면서 ‘어머님과 우리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기를 바라셨을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님은 몇 년전 허리 척추 수술이후 걸음걸이가 불편해지면서부터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고혈압, 고지혈증은 물론 심장 스텐트 삽입 수술도 받으셨다. 자신의 몸 상태가 점차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질 어머님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리고 우리 형제들에게도 서로 우애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시니까, 평상시에 자주 말씀하시던 것들이 생각났다.

아버님을 익산 천호성지의 봉안당에 모시고 집으로 돌아온 날, 저녁 식사 후에 모든 가족들과 간단하게 술 한잔을 했다. 다음 날이면 손자 손녀들이 모두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고생한 그들을 위로해주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 아버님도 그분의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즐겁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시고 싶어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들도 아버님을 즐겁고 행복한 모습으로 보내 드렸다는 인식을 가지는 장례식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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