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농사꾼의 하루 퇴고글>구굴기로 이랑만들기

- 귀농 첫 해에 겪은 열 일곱번째 이야기

by 유진

나와 신반장이 번갈아 가면서 구굴기(溝掘機)로 노지 밭의 이랑을 만들고 있었다. 아침에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가벼운 마음이었다. 신반장의 아내인 송이씨도 같이 와서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찍기도 했다.

“오늘은 구굴기로 밭에 두둑 만드는 작업을 할 거예요. 이것이 구굴기인데 흙을 파내 옆으로 흩뿌려서 두둑 만드는 일을 하는 거지요.”

신반장이 유튜브 영상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날의 작업 일정에 대해 소개하는 멘트를 했다. 그리고 멋진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구글기 운전하는 신반장_20230417_121259.jpg

작업을 시작한 지 두 시간쯤 지났을까. 처음 시작했을 때의 가벼운 마음이 사라지고 몸이 점차 힘들어졌다. 4월 중순인데도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렸다. 흘러내리는 땀이 내 안경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작업중에는 흙이 묻은 장갑을 끼고 있어서 땀을 닦기 어려웠다. 땀 때문에 더 이상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일했다. 결국은 잠시 쉬면서 깨끗한 면 수건으로 안경을 닦고 나서야 흐릿했던 시야가 밝게 트였다.


그 며칠 전 나의 멘토인 박선생님에게 이랑 만드는 법에 대해 물어보았다.

“일반적으로 농부들이 고랑을 좁게 만들다 보니까 일하기 너무 불편하더라구요. 고랑과 이랑을 넓게 만들고 싶은데 어떤 기계를 사용해야 하나요?”

“그럴 땐 구굴기를 사용하면 됩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빌릴 수 있어요.”

박선생님은 구굴기로 두둑을 만들면 쉽게 작업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나는 박선생님이 농장에서 만들어 놓은 것과 같이 밭의 이랑폭은 120센티, 고랑폭은 60센티로 넓게 만들고 싶었다.

대부분의 농부들은 이랑을 만들 때 작업하기 쉬운 트랙터를 사용한다. 트랙터는 5~6개의 이랑을 한꺼번에 만들 수 있다. 그런데 트랙터로는 70~80센티 넓이의 이랑과 40센티내외의 고랑만을 만들 수 있다. 트랙터의 부속 기계에는 이랑과 고랑을 만들 수 있는 넓이가 좁게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친환경 농사를 짓고 싶었기에 트랙터로 만드는 이랑과 고랑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고랑폭이 너무 좁으면 작업하는 사람들이 불편하다는 것을 전년도에 경험했다. 앉아서 작업하기에 너무 좁다 보니까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갔다.

더군다나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려면 병충해가 덜 생기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랑과 고랑을 좁게 만들면 밀식(密植)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통풍이 잘 안되기 때문에 병충해 발생이나 전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랑과 이랑 사이를 많이 떨어뜨리는 것이 유리하다. 결국 힘들지만 내가 원하는 크기의 이랑과 고랑을 만들 수 있는 구굴기를 농업기술센터에서 빌렸다. 농사 첫해이니만큼 해보고 싶은 것을 시도해보고자 했다.


임대한 밭이 원래 논이었기 때문에 땅에 습기가 많았다. 두둑의 높이를 가능한한 높게 만들어줘야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구굴기로 같은 곳을 두번 왕복하면서 이랑 높이를 30센티정도까지 높게 만들었다.

우리가 초보인데다가 밭이 많이 질어서 구글기를 똑바로 운전하기 어려웠다. 땅이 질척거리는 곳을 지날 때면 구굴기 엔진이 꺼져 버리기 일쑤였다. 진흙 밭에 빠져나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신반장과 같이 힘껏 밀어 주어야만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구굴기 다루는 기술이 부족한 우리들은 다른 농부보다도 훨씬 힘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1천 평의 밭에 이랑을 만드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나중에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랑을 보니까 반듯한 직선이 아닌 삐뚤빼뚤한 곡선모양이 되어 있었다. 나와 신반장은 너무 지쳐서 이랑을 반듯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다음 날 관리기로 비닐 멀칭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쉬고 싶었다. 그래서 삐뚤빼뚤한 그대로 두기로 했다.

전날 구굴기 작업을 해서일까? 다음 날 비닐 멀칭기가 달린 관리기(菅理機)로 작업을 할 때는 한결 수월하게 기계를 다룰 수 있었다. 작업 중간에 신반장이 송이씨에게 관리기 작동법을 가르쳐 주는 장면을 유튜브에 담기도 했다. 관리기가 구굴기보다 가벼워서 조정하기 쉬웠을 뿐 아니라 구굴기와 작동법이 동일해서 금방 익숙해질 수 있었다. 한결 여유있게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후 4시도 되기전에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전날 만들어 놓은 이랑이 반듯하지 않은 탓에 비닐 멀칭을 해 놓은 이랑도 똑바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 사용해보는 구굴기와 관리기로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 뿌듯했다. 작물 정식을 위한 모든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아래밭 멀칭 작업_멀칭한 뒤 밭의 모습_20230420_1681986595889.jpg


나중에 안 일이지만 두줄 심기를 하기 위해 이랑을 넓게 만드는 농부는 거의 없었다. 이랑을 70~80센티정도로 좁게 만들면 트랙터나 휴립기(畦立機)를 이용해서 한번만 작업하면 된다. 특히 휴립기는 고랑을 반원형 모양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비닐을 멀칭 하기에도 좋다.

관리기로 비닐 멀칭을 할 때도 이랑이 좁으면 작업하기 수월하다. 관리기가 지나가면서 비닐 양쪽 끝에 흙을 충분히 덮어줄 수가 있어서 비닐이 잘 고정된다. 그런데 나와 같이 넓은 이랑에 비닐을 덮으려면 관리기가 충분한 양의 흙을 덮어주지를 못했다. 결국 이곳 저곳에 삽으로 흙을 추가로 덮어 주어야만 했다.

귀농한 지 3년이 지난 지금의 나도 다른 농부들과 같이 두둑의 넓이를 70~80센티정도로 좁게 한다. 다만 고랑은 40센티와 60센티, 두가지 폭으로 만든다. 한 줄을 40센티 넓이로 하면 다음 줄은 60센티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두 줄의 이랑이 서로 붙어 있는 모습이 되어서, 120센티 넓이의 이랑과 비슷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귀농 첫해에 고생하면서 했던 경험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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