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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pr 17. 2022

<마흔 한번째 이야기> 구들의 구수한 추억들

  나는 어렸을 때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전라도 벽촌에서 자랐다. 추운 겨울이면 부엌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때서, 방을 덥히곤 했었다. 나는 따뜻한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서, 불을 쬐는 것을 좋아했다. 옆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어머니와 할머니가 분주하게 오갔지만, 나는 따뜻한 아궁이 불에 정신을 맡기고 멍하니 앉아 있곤 했었다. 

  저녁식사를 위해서 안방에 가족들이 둘러앉으면, 엉덩이가 뜨끈뜨끈해서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특히 아랫목은 따뜻한 것을 넘어서 뜨거웠다. 잠을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옆에서 주무시던 할아버지께서 한마디 하시곤 했다. 

  “너는 왜 자면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냐? 새벽에 깨보니까, 저기 추운 윗목에서 자고 있던데?”

  나도 내가 왜 한 곳에서 자지 못하는 지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랫목이 너무 뜨거워서, 시원한 윗목으로 도망간 것 같다. 아랫목이 얼마나 뜨거운 지, 방바닥이 시커멓게 변해있었다.


  평창의 추위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구들 놓는 법을 실내 실습장에서 배우기로 했다. 외부 실습장에서 땅을 파고 구들을 놓아야 하는데, 얼어붙은 땅을 파내기도 어렵거니와 추워서 실습을 진행하기도 어려웠다. 선생님이 지게차로 야외에 있던 벽돌과 구들장을 몽땅 날라 왔다. 그리고는 먼저 구들의 모습을 설명해주었다. 

  “한옥 구들은 구들장, 개자리, 연기가 통하는 연도, 그리고 굴뚝으로 구성돼요. 구들장 밑으로 만든 고래에 불길과 연기가 잘 통해서, 구들 전체에 골고루 열을 전달하게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죠.”

  그러자 옆에서 설명을 듣고 있던 용현이가 웃으면서 질문을 던졌다. 

  “개자리가 뭐예요? 왜 개자리라고 불러요?”

  “개자리는 굴뚝 밑을 깊게 파서, 연기가 역류하는 것을 막고 그을음이나 재를 가라앉히는 역할을 하지.”

  선생님이 개자리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자, 옆에서 듣던 일연이가 끼어들었다. 

  “옛날에는 개자리가 따뜻해서 개들이 그곳에서 잠을 자곤 했대. 그러다가 구들에 불을 지피면 죽는 개들이 많았다고 해서, 개자리라고 이름 붙였대.”

  웃픈 이야기였다. 구들이 지금과 같이 온전한 형태로 자리잡기 전에는, 개자리가 개방된 형태여서 개들의 출입이 자유로웠던 모양이다. 사실 구들을 이용해서 온돌방을 만든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임금님이 생활하던 궁궐에 온돌방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16세기말 선조때부터 온돌방으로 발전하였다. 백성들이 사는 한옥집에 구들이 놓여진 것은 한참 뒤였을 것이다. 


  그렇게 개략적으로 구들의 구성요소와 기능에 대해 설명을 들은 뒤, 실습실 바닥에 벽돌과 구들장을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로 주변에서 설명을 듣고 있던 동료들의 움직임은 둔했다. 추위 때문에 난로 곁을 떠나기 싫은 모습이었다. 그러자 부지런한 일연이가 앞장섰다. 

  “유상아, 들이대!” 

  그러자 옆에 서있던 유상이가 ‘으아~~’ 하고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작업용 장갑을 끼고 벽돌을 쌓기 시작했다. 술 한잔 걸치고 기분 좋을 때, 유상이가 내는 소리였다. 유상이는 일연과 같이 자주 술을 마시던 동료였다. 그래서 그런지 둘이 죽이 잘 맞았다. ‘들이대!’라는 말도 이 당시 수업 참여에 소극적이었던 동료들을,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자주 써먹던 구호였다.

  어느 때 인가부터 수업을 할 때면 항상 일연이가 앞장섰다. 일연은 부지런한 성격 탓에, 학교에 등교하면서부터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침에 제일 먼저 등교해서, 목탄난로에 불을 지폈다. 눈이 오면, 한옥학교 들어오는 입구부터 염화 칼슘을 뿌려 놓았다. 수업시간은 물론 쉬는 시간에도 계속 작업을 진행하곤 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는 선생님이 가르치는 실습을 제일 먼저 진행하였다. 그 옆에는 대부분 종철이가 같이 보조를 맞추곤 했다.  


  그렇게 우리의 벽돌 쌓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구들장을 중심으로 고래 둑*을 여러 갈래로 쌓아 나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2~3명씩 한 그룹이 되어서 고래 둑을 만들어갔다. 각 그룹들은 경쟁적으로 여러 개의 고래 둑을 쌓으면서, 고래자리를 만들었다. 또한 구들장을 놓을 자리에 시근담**도 쌓았다.

*) 구들장 밑에 있는 열기와 연기가 흘러 나가게 하는 통로를 만들기 위해 쌓은 둑

**) 온돌을 설치할 때 구들장이 얹히는 턱으로, 벽돌, 돌 등을 진흙으로 쌓아 만든 담

  아궁이에 불을 때면 그 열기와 연기가 빠져나갈 구멍은 직후방과 옆면, 두 군데에 만들어 진다. 이때 직후방의 구멍은 작게, 옆면으로 빠져나가는 곳은 크게 해서 벽돌을 쌓아나갔다. 직후방으로는 열기가 강하기 때문에, 굳이 구멍을 크게 해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형님, 빨리 좀 하소! 우리는 벌써 다 쌓았는데.”

  종철이가 몇몇 젊은 동료들과 고래 둑 한 줄을 다 쌓은 다음, 옆에서 벽돌을 쌓아가던 일연이에게 농담을 건넸다. 

  “야, 잘 쌓아야 방이 뜨뜻해지지. 너같이 빨리 쌓다가는, 연기가 방으로 새어나가서 큰 사고가 날 수 있어.”

  일연이가 빨리만 쌓으려고 하는 종철이에게 한 마디 했다. 동료들끼리 친해지면서, 실습을 진행할 때 이런 저런 농담을 많이 주고 받았다. 이런 농담은 서로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역할을 하곤 했다.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벽돌을 쌓아 나가다 보니까, 어느덧 구들장을 올려 놓아야 할 차례가 되었다. 아궁이 위에 올려놓는 구들장은 두꺼운 것을 사용한다. 그리고 구들은 보통 현무암을 사용한다. 현무암은 용암이 분출되면서 만들어진 돌이어서, 열에 무척 강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구들을 놓을 때는, 먼저 아궁이와 굴뚝자리, 연도, 그리고 방바닥의 높이 등을 미리 확인하여야 한다. 그리고 고래바닥 만들기 – 개자리 만들기 – 아궁이 만들기 – 고래둑 쌓기 – 불목 만들기 – 부넘기 만들기 – 바람막이 만들기 – 연도 만들기 – 구들 놓기 – 거미줄치기 – 부토 올리기 – 초벌미장하기 – 말리기 – 재벌 미장하기 – 말리기 – 마감미장하기 – 장판 바르기 순서로 작업이 이뤄진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 구들작업은 매우 힘들다고 한다.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하고, 단순하게 벽돌만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흙으로 벽돌 틈을 메우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네평 정도 크기의 구들을 놓으려면, 인부 네 명이 이틀 정도 일을 해야 한다고 한다. 


  개자리를 쌓고 마지막으로 굴뚝으로 나오는 연통을 붙여놓았다. 구들에서 중요한 것은 아궁이에서 만들어지는 열이 손실 없이 방 전체로 퍼져 나갈 수 있도록, 고래로 연결되는 구멍들이 잘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자칫 연기가 방안으로 스며들어오게 되면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연기가 굴뚝으로 잘 빠져나가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고래 둑을 쌓기 전에 땅을 단단히 다져서 고래 둑이 놀지 않게 해주어야 하고, 고래 둑을 쌓은 다음에 거미줄치기***와 미장을 잘 해야 한다. 

***) 구들장과 구들장사이의 틈을 사춤돌로 채우고 진흙으로 메워서, 연기가 새지 않도록 바르는 것임


  그렇게 구들 쌓는 작업이 얼추 마무리 되었을 때, 호권이가 목탄난로에서 잘 익은 호박 고구마를 꺼냈다. 집에서 호박고구마를 여러 개 들고 와서, 목탄난로에 넣어 놓았던 것이다. 호일로 싸서 집어 넣으면, 얼마 안 있어서 뜨거운 몸으로 변한다. 너무 뜨거워서 작업용 장갑을 끼고 껍질을 벗겨 먹어야만 했다. 어느 순간 우리들은 목탄 난로 주변에 빙 둘러서서, 호박고구마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호박 고구마 자체도 맛있지만, 연기가 모락 모락 피어 오르는 고구마를 후후 불어가면서 한입씩 먹는 고구마의 맛은 너무 달았다. 


  우리의 구들 만들기는 살짝 맛만 보는 것이어서 금방 끝났다. 우리는 쌓기만 했을 뿐 땅을 파거나 황토로 바르는 작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직접 땅을 파고 황토를 바르는 등 실제 실습을 못해본 것이 못내 아쉬웠다. 다른 곳에서는 경험해보기 어려운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들을 만들면서 재미있게 주고 받았던 농담과 목탄난로에 익혀먹은 고구마 맛은 잊기 어려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불 장난하면 잘 때 오줌 싸니까, 얼른 방으로 들어가라.”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하면서, 나를 방으로 쫓아냈던 기억도 난다. 아마도 좁은 부엌에 내가 앉아 있어서 걸리적 거렸을 것이다. 한옥학교의 구들쌓기 수업에 얽힌 기억들이, 나의 어렸을 때 따스하게 다가오는 추억들 위에 쌓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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