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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pr 08. 2022

<마흔번째 이야기> 힘의 균형과 아름다움

  구정 연휴를 전후로 휴가를 써서, 1주일 이상을 쉴 수 있었다. 한옥학교에 들어온 이후에 오랜만에 푹 쉬었다. 그래서 그런지 막상 한옥학교에 돌아가야 할 날이 다가오자, 가기 싫은 마음이 삐죽삐죽 솟아났다. 월요일 새벽 4시에 눈이 떠졌지만, 가기 싫은 마음에 느릿느릿 준비를 했다. 그런 내가 안되었다는 듯이 아내는 애틋해하면서도, 밤새 싼 김밥 도시락을 주면서 나를 꼭 안아주었다. 힘내라고...


긴 연휴가 나의 몸과 정신까지 풀어놓았다. 

평창으로 향하는 새벽길이 무겁기만 하다. 

주인 맘을 모르는지, 자동차는 경쾌한 내닫는다. 

김유신이 천관녀에게 데려간 애마의 목을 베었던가!

나도 자동차 기어를 베어버리고 싶었다.


어느 덧 접어든 강원도 길,

고속도로의 울퉁불퉁한 느낌이 나에게까지 울린다. 

가고 싶지 않아서 온 몸의 감각까지 예민해진 것일까?

그때 문득 하늘에서 나의 번민을 아는 지, 나를 보고 반짝 웃는 별 하나가 보인다. 

그리고는 따라오라는 듯이, 나의 앞길을 안내한다. 

자기만 따라오면 밝은 세상이 펼쳐질 거라는 듯이.


  구정 연휴기간에 들어가기 전, 선생님은 사모정의 뼈대가 되는 부재들의 조립을 마무리 하고자 서둘렀었다. 그런데 연휴가 끝나고 돌아온 뒤에도, 남아있던 사모정의 지붕부분의 가공과 조립을 빠른 시간 내에 끝내자고 했다. 3월 24일에 치뤄질 ‘건축목공기능사 시험’과 그 준비일정 때문이었다. 3월이 되기 전에 사모정과 맞배집의 조립작업을 모두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인 것 같다. 


  사모정 지붕 부위의 조립작업은 참 흥미로웠다. 기둥이 사모정의 바깥쪽 네 면을 떠받치고 있지만, 사모정 내부에는 기둥이 없다. 그런데도 지붕이 튼튼하게 세워진다. 어떻게 조립을 하면, 기둥의 도움 없이도 이렇게 지붕을 세울 수 있을까?


  지붕의 중앙 꼭지점에 위치하는 부재가 찰주(刹柱)이다. 찰주는 원뿔형 구조물로서, 추녀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찰주는 작은 나무의 네 면에 삼각형 모양으로 그린 다음에, 그 모양에 맞게 홈대패와 전기대패로 깎아낸다. 그리고 삼각형 모양의 각진 부분을 전기대패로 깎아서, 부드러운 원뿔형 모양으로 만든다. 찰주는 하나만 만들면 되기 때문에, 선생님이 종철이와 호권이에게 찰주를 만들라고 지시하였다. 두 사람은 뚝딱뚝딱 금새 찰주를 만들어 냈다.


  찰주와 함께 지붕의 중심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종장혀와 종도리이다. 종장혀와 종도리는 브런치에 올린 ‘<서른 다섯번째 이야기> 왕지 맞춤과 한옥의 과학’편에서 이미 소개한 바 있어서, 여기서는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왕지 맞춤에 의해 네 개의 종도리, 그리고 네 개의 종장혀를 조립한 다음, 찰주를 그 한 가운데에 위치시킨다. 이때 찰주의 높이와 위치가 정확해야 한다. 찰주의 높이와 위치에 따라서, 추녀와 서까래의 물매(기울기)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붕 부위에 설치한 종도리와 종장혀, 그리고 찰주가 움직이지 않게 하기 위해, 임시 받침대를 설치해서 핀으로 이들을 고정시킨다. 특히 종장혀와 종도리에는 임시 받침대까지 관통하는 긴 핀을 박아 넣고, 임시 받침대는 다시 주심도리에 고정시킨다. 


  종장혀와 종도리, 그리고 찰주의 위치는 주심도리를 이용해서 찾는다. 주심도리는 사모정의 네 면에 설치되므로, 네 개의 꼭지점을 가지고 있다. 종도리 또한 주심도리와 같이 네 개의 꼭지점을 갖는다. 이때 각 모서리에서 주심도리와 종도리의 각 꼭지점간 거리가 동일하면, 종도리가 주심도리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찰주, 종장혀, 종도리의 위치가 잡히면, 다음에는 추녀를 걸어야 한다. 추녀는 사모정의 모서리부분에서 주심도리와 종도리 위를 지나 찰주에 닿도록 위치시킨다. 추녀가 무거워서, 여러 명이 같이 합심해야 추녀를 제 위치에 놓을 수 있다. 


  추녀를 제 위치에 놓은 상태에서, 추녀가 주심도리, 종도리와 만나는 부분을 표시해준다. 주심도리와 종도리 위에 추녀가 놓여진 자리를 끌로 표시해준 후, 추녀를 내린 다음에 펜으로 명확하게 그려준다. 주심도리, 종도리 위에 추녀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가공해주기 위해서이다.


 펜으로 그려진 밑그림을 따라서 전기 톱으로 추녀가 올라갈 자리를 따낸다. 


  그리고 난 후 추녀를 다시 제 위치에 올린 다음, 종장혀, 종도리까지 함께 고정시키기 위해서, 긴 연결핀을 박아 넣는다. 또한 찰주와 추녀도 핀으로 고정시킨다. 이렇게 해서 첫번째 추녀의 조립이 완성이 되었다. 세 개의 추녀도 역시 같은 순서로 조립하게 된다. 



  네 개의 추녀 조립이 모두 끝나고 나서, 종도리, 종장혀를 올려놓았던 임시 받침대를 철거하였다. 밑에서 받쳐주는 받침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찰주, 종도리, 종장혀는 제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추녀가 지붕의 중심점인 찰주와 종도리, 종장혀를 받쳐주고 있고, 반대로 찰주와 종도리, 종장혀가 추녀를 잡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부재간에 서로 받쳐주고 잡아주는 힘의 균형이 존재하는 것이다.


  추녀를 조립한 다음에는 앙곡과 안허리곡을 만들 수 있도록 갈모산방과 평고대를 설치한 후, 서까래를 얹는 과정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브런치에 올린 ‘<서른 다섯번째 이야기> 왕지 맞춤과 한옥의 과학’편 참조) 갈모산방은 주심도리의 중심점에서 모서리 쪽으로 가면서 점차 두꺼워지게 만들어서, 갈모산방 위에 얹히는 서까래가 앙곡과 안허리곡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재이다. 


  그리고 평고대를 걸고, 서까래를 조립한다. 서까래는 추녀 바로 옆 부분부터 걸어나가되, 추녀와 만나는 부분이 밀착되게 하기 위해서 비스듬히 깎아주고 다듬어준다. 


  이렇게 완성된 사모정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비록 기둥이 없는 일부분이지만, 우리들의 힘으로 사모정을 완성했다는 기쁨이 컸다. 더군다나 힘의 균형이 갖는 과학적인 원리까지도. 사모정의 완성을 기념해서 우리는 사모정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찰칵!


  우리가 사모정을 완성하는 동안 바깥 세상은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올 겨울에 눈이 많이 안 와서, 멀리 있는 높은 산 정상에 있는 눈만을 구경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도 멋진 풍경이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 보니까 기온이 영하 15도이하로 떨어지면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덕분에 학교가는 길의 풍경이 바뀌었다. 눈 예보에 맞춰서 염화칼슘을 미리 뿌려놓은 탓에 마을 도로 위의 눈은 다 녹았지만, 다른 곳은 온통 하얀 색깔로 바뀌었다. 


 평상시 숨을 헐떡이게 했던 언덕배기 조차도 하얀 눈이 주는 아름다움에 힘든 줄도 몰랐다. 


  언덕배기에 올라서 바라보는 하얗게 뒤덮힌 논밭 풍경에서, 순박한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유독 이 마을에는 하얀 개가 많은데, 눈이 오는 날이면 집집마다 하얀 개들이 짖어 댔다. 눈이 오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다. 먼 산의 아름다운 풍경과 마을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풍경이었다. 사모정과 자연 풍광은 서로 다른 색깔의 아름다움을 내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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