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미래를 바꾸는 유, 초등 교육 혁신 아이디어 공모전 은상
교사를 18년 째 하고 있는데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좋은 수업을 하는 것이다. 18년이나 했으면서 수업이 어렵다는 것은 전문성이 없다는 말인건가. 여기서 말하는 좋은 수업에는 엄청난 의미가 포함된다. 좋은 수업은 학생의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고, 학생의 수준에 맞아야 하며, 수업목표에 달성할 수 있도록 학습 활동 설계가 적절해야한다. 그리고 개별 학생의 목표달성이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평가도구 또한 설계하여 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이 것들이 잘 이루어져야 좋은 수업이다. 하루에 평균 4-5차시의 수업(전담 1시간 제외)을 진행하는데 모든 수업을 제대로 설계해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등학교는 전담을 제외한 모든 과목을 가르쳐야 하고 학년은 매년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맡은 과목의 노하우가 계속 쌓이면서 해당 교과에 전문교사가 되어가는 중고등학교 교사와는 다른 상황이다. 매년 새로운 학급, 새로운 학년, 새로운 수업이 진행되기때문에 모든 수업을 열심히 준비해서 제대로 하는 것은 어렵다.
항상 이런 고민과 걱정을 갖고 있었던 상황에서 2017년에 있었던 미래를 바꾸는 유, 초등 교육 혁신 아이디어 공모전에 나의 고민을 제안서로 만들어서 제출하였다. 연간 수백 시간의 새로운 수업을 준비하는 초등교사에게 자신의 전문분야를 만들어 꾸준히 정교화하고 한 해에도 같은 수업을 수차례 반복하여 피드백을 통한 수업 개선이 가능하여 수업의 전문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과정 개선안이었다. 그리고 해당 수업의 키워드는 '프로젝트학습' 이었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한 과목의 단원, 차시 순서대로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프로젝트학습은 문제해결을 위한 주제를 설정하고 그 주제를 중심으로 연결된 여러 교과의 성취기준을 연결하여 여러 차시 이상의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지금은 프로젝트학습이 학교현장에서 일상화되어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렇게 일반화되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학습을 각자 교사마다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려서 설계하고 같은 학급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영어 전담교사가 같은 학년의 모든 학생을 가르치는 것처럼 해당 프로젝트에 관심있는 학생들을 모아서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예전에 있었던 동아리활동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방식의 장점은 수업 선택권이 학생에게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안타깝지만 모든 수업에서 학생의 선택권이 없다. 학생의 발달과정에 맞춰서 교육과정이 구성되어 운영되기 때문에 필요없는 수업은 없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참여하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모든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프로젝트학습을 학생들에게 선택할 수 있게 해주면 그래도 그나마 참여하고 싶은 수업을 선택할 수 있다. 가령 4개의 반이 있는 학년에 4명의 교사가 4개의 프로젝트수업을 개설하고 학생들을 모집하면 학생들은 4개 중에 원하는 수업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교사의 입장에서도 장점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수업을 개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사마다 지식 배경, 관심사, 취미, 특기 등이 모두 다르다. 자신이 좋아하는 내용을 수업에 접목시켜 프로젝트학습을 설계하면 교사 또한 수업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기 때문에 학생과 마찬가지로 수업 선택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학기당 한 번씩 두 번을 진행한다면 1학기와 2학기 동일한 수업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교사 입장에서 수업 준비의 부담감은 줄고 반복적으로 수업을 하면서 수업의 문제점, 보완점을 발견하면 개선하여 다음 수업에 반영하면서 점점 더 완벽한 프로젝트학습이 완성된다.
프로젝트학습은 설계할 때 부터 학생과 교사의 수요를 모두 반영할 수 있도록 절차를 만들어 진행하면 교사, 학생 모두 하고 싶은 수업을 하게 되는 이상적인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것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존 교과 내용 중에 교과간 내용이 중복되거나 정식 수업이 아니더라도 가정, 학교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는 것들을 감축하여 프로젝트학습 시수를 확보하면 운영할 수 있다.
이런 내용으로 제안서를 작성하였는데 8년이 지난 지금 봐도 이런 방식의 수업 운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안서를 작성하고 제출했을 때만 하더라도 정말 기발하고 필요한 아이디어라서 대상을 받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은상을 받게 되었다. 그 위에 금상, 대상이 있었던 것 같다. 제안서 제목은 '4차 산업혁명 인재 육성을 위한 선택형 프로젝트 학습'이라고 지었는데 지금 보니 조금 오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교사 입장에서 이번 공모전에서는 내 평상시의 수업에 대한 고민이 많이 반영되었고 관련된 자료도 많이 찾아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다른 공모전과는 다르게 시상식 현장에서 시상 결과가 발표되는 것이라서 내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 심장이 매우 쫄깃했었다(대상이 나오면 어떡하지, 소감은 뭐라고 하지...ㅎㅎ). 비록 은상밖에는 수상하지 못하였지만 8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육과정의 운영방식이 동일한 점은 매우 유감스럽다. 교사 한 명이 수 많은 교과를 가르쳐야하는 부담은 결국 교육의 질과 연결되고 학생에게도 부족한 수업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교사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그 것은 현행 교육과정 시스템이 뒷받침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중고등학교처럼 담당교과가 지정되지는 않더라도 위에 소개한 방식처럼 이루어진다면 지금보다는 학생과 교사 모두 바라는 수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제안서였는데 글을 쓰면서 발견하게 되었다. 혹시라도 교육과정 정책 제안의 기회가 있다면 까먹지 말고 이 제안서를 제출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