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오래 보아야 보인다.
우리 집은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는 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삼남 ‘박이슬’이다. 이슬이는 크림색과 갈색이 섞인 장모치와와인데, 담요 속에만 들어가도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소중하다. 보통 치와와를 키운다고 하면 악명 높은 성질머리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날 안타깝게 쳐다보곤 한다. 하지만 난 이 반응을 볼 때면 입꼬리가 올라간다. 왜냐? 우리 이슬이는 삼대가 덕을 쌓아도 키울 수 없는 아주 사회적이고 교양 있는 치와와이기 때문이다. 날 불쌍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콧구멍 평수를 한껏 넓히고 이슬이의 자랑을 늘어놓으면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사람들의 반응이 격할수록 (치와와를 키우는 사람일수록 격하다.) 돈으로도 구할 수 없는 보물을 가진 듯한 기분이 든다.
이슬이에게는 일반적인 강아지와 다른 특징 몇 가지 있는데 나는 그 모습을 쭉 지켜보면서 ‘고양이 같은 강아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나는 고양이를 키워본 적 없고 지인들이 키우는 고양이들은 도도하기보다는 사람을 좋아하는 살가운 고양이였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고양이의 특징과 실제 고양이와는 많이 다를 수도 있다. 다만, 내가 미디어로 접한 획일화된 고양이 이미지를 대입해 봤을 때 이슬이는 꽤나 그런 면모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냥 고양이 같은 강아지라고 말하려고 한다.
이슬이를 고양이 같다고 느낀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은근한 애정표현이다. 이슬이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치대지 않는다. 무릇 강아지라 함은 격한 뽀뽀로 주인의 얼굴을 침범벅으로 만들고 돌아서면 주인과 붙어있고 싶어 하는 동물이 아니던가? 하지만 우리 이슬이는 가까이 앉되 손길이 닿지 않을 딱 그 정도 거리에서만 맴돈다. (가끔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한 거리를 유지한다.)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집으로 귀가했을 때 자고 방금 일어났음에도 열과 성을 다하여 반갑게 인사해 주는 강아지의 모습이다. 이 모습에 반해 “처음에는 강아지를 싫어했던 우리 아빠가 지금은 강아지를 제일 사랑한답니다.” 하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집으로 돌아오면 반겨주는 강아지 덕분에 하루의 피곤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경험을 해본 적 있다. 그러나 이슬이는 누군가 도어록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일단 멀찍이 서서 자기가 아는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가진다.
집으로 들어온 이가 가족이라면 이슬이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가까이 다가와준다. 그 모습이 기꺼워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 주면 만족했다는 듯 하품을 하면서 기지개를 쭉 켠다. 다른 강아지라면 집을 비웠던 시간만큼 더 놀아달라며 얼른 장난감을 물어올 텐데, 이슬이는 볼 일이 끝났다는 듯 미련 없이 본인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분주히 움직이는 집 안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본다. 잠을 잘 때도 이슬이는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머리맡에 누워 잠을 잔다. 이렇듯 이슬이는 사람의 손길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데, 손길을 즐기지 않는다고 해서 주인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슬이만의 애정표현 방식은 오직 이슬이와 함께 살아본 우리 가족들만 알고 있다. 예컨대 내가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면 이슬이는 조용히 다가와 내 허벅다리에 턱을 괴고 앉거나 무릎 위로 올라와 잠시 쉬다 내려가곤 한다. 어떤 날에는 자고 일어난 배게 옆에 사료 몇 알이 놓여있곤 하는데 이는 이슬이가 새벽에 밥을 먹고 내 몫으로 가져다 놓은 것이다. 이렇듯 이슬이는 아주 사소하지만 꾸준히 게 우리에게 관심을 표현해 준다. 남들이 보면 황당할 수 있을 만큼 희미한 움직임이란 걸 안다. 그래서 자세히 보아야 보이고 오래 보아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