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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전연 May 15. 2024

플랜 75

75세 이상이면 이제 일본에서 사라져 주십시오

저출산 · 고령화가 시대의 문제로 다가왔다. 가족 해체, 지방 소멸, 학력 배신, 기본 소득의 문제도 뒤따라온다. 일본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이런 사회 문제를 직면했고 나름의 대책을 세워왔다. 문학과 영화에도 그런 사회 현상을 반영한 것들이 많았다. 공포 영화에서 가족이 해체되어 남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 되는 모습은 일본의 그런 삭막한 풍경을 적나라하게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우리는 2002년 월드컵으로 축구에 미쳐 있었고 똘똘 뭉친, 애국의 탈을 쓴 집단주의 때문에 앞으로 서로가 남이 되고 가족도 해체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붉은 티셔츠를 입고 한마음으로 응원했던 우리가 20년 뒤에 비혼과 독신으로 가족 없는 세상에서 고독사를 걱정할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시대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고 싶어서 이 영화를 선택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이었다. <윙카>, 이런 건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감독이 제시하는 해결책이 뭔데?" 이에 대한 답을 찾으러 영화관을 찾은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결책은 없다. 감독은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현상만 드러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생명의 소중함을 한번 강조해본다. 이게 끝이다. 그래서 미치가 병원(국가가 안락사 시켜주는 곳)에서 탈출해 석양을 바라보는 장면이 좀 싱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감독의 전언이 "그래, 국가가 시키는 대로 죽어."라고 할 수 없으니까 뻔하고 안타깝게 들렸다. 근데 내가 감독이었어도 똑같이 결말을 냈을 것 같다. 국민을 경제성과 생산성으로 평가해 이제 쓸모없어진 노인들을 합법적으로 죽이려고 하는 국가에, 그래, 그것이 국가를 위한 일이니까, 하고 순응하는 것은 너무 예스러운 메시지다.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고 나쁜 영화는 아니다. 현실을 보여주고 화두만 던져도 좋은 영화다. 인식의 깊이와 함께 해답도 있으면 10점 만점에 10점이지만 인식의 깊이만으로도 8점은 될 수 있다. 영화가 문제를 제시하면 직접적 해결은 국가와 사회가 하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75세 이상의 고령자가 되면 국가가 편하게 죽여주겠다는, 이 섬뜩한 발상의 이야기는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의 현실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아니, 이제 그들에게는 그런 현실이 익숙하기 때문일까? 건조하고 덤덤하게 드러내는데 한국 관객인 나에게는 신랄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미래가 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린이 보호 표지판 아래를 지나가는 노인(미치). 이 영화에 어린이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청년도 마찬가지다. 콜센터 직원 요코가 볼링장에서 미치를 만났을 때 그곳에서 노는 젊은이들이 있는데 그게 전부다. 영화 속 세상에서 보이는 것이라곤 노인밖에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여기 있는 것이다.


직장에서 갑자기 쓰러진 고령의 동료 때문에 단체로 해고된 노인들. 나이가 많아서 일자리를 주는 곳이 없다. 관공서에서 컴퓨터로 뭘 신청하려고 해도 신기술에 익숙하지 않아 눈치 보며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수도권 집중화와 지방 소멸로 현재 살고 있는 빌라가 철거될 예정이다. 새로 살 집을 알아보는데 노인은 갑자기 죽을 수 있으니까 월세를 한 번에 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75세 이상의 고령자에게 합법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법을 발효한다. 후진국의 외국인 노동자가 선진국에 와서 그들의 고령자 죽음을 처리하며 돈을 번다. 그 돈으로 자기 나라에 있는 가족(마리아의 딸)을 살린다. 이 물려줌의 구조는 죽음의 자연적인 순기능을 보여주지만 죽음 자체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의 유산으로 생명이 도움을 얻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강요되거나 찬양돼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플랜 75'의 담당 직원인 히로무는 20년 만에 삼촌을 만난다. 이건 20년 동안 친척 간에 교류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늙은 삼촌은 75세가 되어 히로무가 담당하는 플랜 75를 신청하러 시청에 온 것이다. 삼촌은 처음에 히로무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그의 입장에서는 형의 자식인데 남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현재 삼촌이 하는 일은 공공기관에서 마련해준, 길에서 쓰레기를 정리하는 것. 히로무는 삼촌의 집에 찾아가 함께 저녁을 먹는다. 삼촌과의 대화를 통해 히로무의 아빠가 옛날에 돌아가셨고 엄마는 재혼했음이 드러난다. 삼촌은 히로무 아빠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형제의 죽음인데 안 간 것이다. 히로무는 늙은 삼촌의 집에 왜 갔을까? 혈육이라곤 오랜만에 재회한 삼촌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혼한 엄마는 따로 가정이 있으니 역시 남이나 다름없다. 외로우면 가까운 누구라도 챙기고 싶은 게 인간 본성이다. 그래서 히로무가 뒤늦게 삼촌의 죽음을 막으려고 하는 모습은 그의 착한 성정이 드러난 것이라기보다 삼촌마저 죽으면 이 세상에 진짜로 혼자가 되니까 그 공포스러운 고독에 대한 처절한 저항인 것처럼 보인다.

주된 인물은, 그러니까 주인공은 미치인데 다른 인물도 주인공 같은 비중이 있다. 이 영화는 고령화 사회를 살아가는 네 인물의 이야기다. 여자 노인 미치, 시청 직원 히로무, 콜센터 직원 요코, 외국인 노동자 마리아. 이들의 사연은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가 마지막에 안락사 병원에서 겹치고 다시 멀어진다.

안락사 침대에 누웠다 옆자리의 노인(히로무의 삼촌)이 죽는 걸 본 미치는 죽음의 공포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병원을 탈출하듯이 빠져나간다.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멈춘 곳에서 석양이 따스하게 빛난다. 일출(태어남)의 빛이 아닌데도 석양(죽음, 노년)은 같은 태양이기에 여전히 빛나는 것이다. 저문다고 해서 약하고 볼품없는 게 아니다. 노년의 생명(빛)도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걸 영화는 말한다.

히로무는 안락사 침대에서 살아 있는 미치를 보고 옆자리의 삼촌을 죽음에서 깨우려고 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마리아는 우연히 그들과 마주치고 히로무의 삼촌을 밖으로 이송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저출산 · 고령화로 일자리 부족을 해결하려면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게 필연인데 영화는 따뜻한 시선으로 상생의 가능성을 나타낸다. 히로무는 삼촌을 땅에 묻어주고 싶어서 장례업체에 전화를 걸지만 예약이 차 있어 난항을 겪는다. 운이 좋게 한 자리 비어 있으니 빨리 오라는 말에 히로무는 차의 속도를 내지만 뒤따라오는 경찰에 의해 과속 단속을 받는다. 법과 행정으로 노인의 죽음을 처리했던 그가 역으로 법과 행정(경찰)에 의해 저지되는 이 장면은 합법적 죽음을 자행한 국가에 대한 감독의 복수이자 비판으로 보인다.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는 법과 행정은 언젠가 스스로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망자의 유품을 정리하다 지갑 속 지폐를 발견한 마리아. 같이 일하는 노인 직원은 그걸 모른 체해준다. '유품을 가져가는 것은 훔치는 것이 아니라 망자를 기억하는 것이다.'  마리아의 손목에 감긴 시계는 그녀가 지갑의 지폐 또한 가져갈 것을, 그래서 망자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그걸 기억할 것을 암시한다. 마지막에 그녀가 석양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장면은 고국의 딸이 수술을 받고 치유됐음을 나타낸다. 영화 초중반에 그녀가 선배 직원의 일본 아이를 자전거 뒤에 태우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자전거는 부모가 자식을 태워 안전하게 끌어준다는 의미의 상징물이다. 어쨌든 이로써 아이(탄생)의 생명과 노인(죽음, 석양)의 생명이 모두 소중하다는 결론이 완성된다. 그 둘은 서로 연결돼 있다. 마리아는 노인의 생명이 남긴 유산(그녀가 안락사 병원에서 일하며 번 돈, 유품으로 얻은 돈)으로 자기 딸을 살렸다. 그렇게 노인과 아이는 어느 한쪽만 중요한 게 아니라 서로 함께 돌봐야 생명의 줄이 이어지는 것이다.


촬영을 잘했다. 자연광과 인공 조명을 잘 활용한 듯하다. 건조한 미장센이 고령화 사회의 고독을 리얼하게 나타낸다. 가끔 음악을 과하게 사용한 장면이 있는데 그게 아쉬웠다. 음악을 줄일수록 빛이 나는 영화류인데 말이다. 미치와 요코가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도 감독의 실수라 하고 싶다. 연출 의도는 알겠으나 과한 메시지 부각은 영화를 촌스럽게 만들 수 있다.

첫 신에서 한 청년이 요양 시설에서 노인들을 학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2016년 일본에서 발생한 사가미하라시 살인 사건(지적장애인 시설에서 벌어진 묻지마 증오 범죄)이 계기가 되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 범죄 장면을 처음에 아웃포커스로 보여준 이유는 다음 세 가지 때문이라고 본다. 첫째, 실제 그 사건의 피해자와 관련자에게 2차 피해가 가지 않게 배려한 것. 이건 인터뷰에서 감독이 직접 한 말이다. 초점 맞추어 자세하게 보여주면 당연히 그 사건의 관련자들은, 영화 속 사건은 실제 사건과 다르지만 모티브가 된 것이기에 불쾌할 수밖에 없다. 둘째, 아웃포커스는 노인의 존재를 상징한다. 사회에서 희미해진 존재라는 뜻이다. 세상과 사물에 대한 희미함은 노인의 시력 상태이기도 하다. 그들의 비극적 사건이 아웃포커스로 처리된 건 우리의 무관심을 꼬집는 것이기도 하다. 인상적이게도 오프닝에서 제목이 뜰 때 'PLAN 75'의 PLAN은 또렷하지만 75는 흐릿하다. 셋째, 이런 범죄는 단순히 영화 속 이 사건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초점 맞추어 자세하게 보여주면 그건 영화 속 사건만 말하는 게 된다. 그러나 감독은 그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흐릿하게 보여줘야 이와 비슷한 범죄를 포괄할 수 있는 상직적 연출이 된다. 앞으로 일본에서 약자를 향한 이런 증오 범죄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미치와 요코가 볼링장에 갔을 때 요코가 미치에게 공을 굴려볼 것을 권한다. 미치는 처음에 잘 못하지만 두 번째에 스트라이크를 친다. 노인도 배우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긍정적 가능성을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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