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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전연 May 15. 2024

파묘

오니가 영화의 허리를 끊었다

스포일러를 듣고 봤다. 파묘 행위의 결과가 사무라이 괴물이라고 했다. 나는 그걸 듣고 영화관에 가서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컬트 장르에서 공포의 대상을 물체화해서 보여준 감독의 어리석음을 구경하고 싶었고, 그 물체가 된 존재를 영화 내에서 어떻게 보여줬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뭐? 결국 땅속에서 사무라이 괴물이 나온다고? 어떤 모습이고, 그걸 어떻게 해치울지 너무 기대되잖아.

그래서 재미에 대한 기대는 없이 봤는데, 꽤 볼 만했다.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흥미로웠다. 영화 값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렇다고 10점 만점에 10점이라는 얘긴 아니다. 소재가 독특하고 장르 자체가 내가 좋아하는 공포 · 오컬트라서 재미있던 거지 완벽하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평론가들의 평을 봤는데 이동진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그는 "허리가 끊겨 양분된 후 힘 못 쓰는 이야기, 편의적 보이스 오버로 시각적 상상력을 대체한 맥없는 클라이맥스."라고 말했다. 나도 동의하는 바다. 이 영화는 공포의 대상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전반부에 쌓아온 오컬트 정서를 한 방에 무너뜨리고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다고 할 수 있는 크리처물로 전락한다. 그때부터 무서움은 싹 사라지고 크리처를 상대하는 주인공들의 액션이 시작된다. 공포의 근원인 무지가 중반 이후 확실한 앎으로 바뀌기 때문에 무서움을 느끼러 온 관객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감독의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니다. 주제 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오니가 된 사무라이를 관에서 꺼내 사방팔방 돌아다니게 한 결정이 틀렸다고 할 순 없다. 감독이 더 부지런했다면 오니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도 영화 끝까지 오컬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각본을 썼을 텐데, 조금 게으른 결과, 오니를 마지막까지 숨기는 법을 찾지 못하고 주제 의식과 오컬트 공식 사이에서 타협을 하고 말았다. 그 점이 안타깝다고 말하는 것이다. 일본이 나쁘다고 얘기해야 하고 우리 땅속에 묻힌 그것을 없애야 하니까 오컬트, 너는 중반까지만 하고 빠지라는 선택을 한 건데,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오니를 절대 보여주지 말았어야 했다. 첩장의 존재를 마지막에 가서야 깨닫고 그 내막에 기순애가 있음을 넌지시 알린 채 끝났어야 했다. 사실 오니보다 기순애가 훨씬 무섭다. 오니는 힘만 세 보이지 오컬트적 공포감은 거의 없는데 (말도 많이 해서 나중 가면 그저 등장인물 중 하나에 불과해진다.) 기순애는 사진 속 희미한 모습과 짤막한 과거 시점에만 등장해 그 미스터리함이 어마어마하다. 내가 감독이었으면 오니보다 기순애에 초점을 맞춰 주인공들이 첩장을 통해 그의 존재를 얼핏 깨닫고 일본이 그런 무시무시한 짓을 우리 땅에 했음을 간단히 알린 채 영화를 마쳤을 것이다. 그럼 관객은 기순애가 궁금해서 미칠 것이고, 시체에 저주를 걸어 관을 세로로 박아 넣은 일제의 만행에 섬뜩함을 느낄 테지. 이 새로운 <파묘>는 오컬트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일본의 험한 기운이 아직도 숙청하지 못한 친일파와 함께 우리 땅에 존재함을, 그 주제 의식을 확실히 전달한다. 아니, 어쩌면 본래의 <파묘>보다 절실하게 전달한다.


일반 대중은 장재현 감독의 이 영화를 괜찮게 생각하겠지만 오컬트 마니아는 안 좋게 생각할 듯.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은 게 아니라 오니가 영화의 허리를 끊은 것이다.


첫 신에서 승무원이 화림(김고은)에게 일본어로 말을 걸자 그녀가 자신은 한국 사람이라고 밝히는데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영화 주제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고 생각해 웃음이 나왔다.


김고은의 연기에 대해 이견이 많다. 내 생각은, 그녀가 무당 역할은 잘했는데 연기는 못했다는 것이다. 고영근(유해진)의 장의사 사무실에서 네 사람이 만나 대화하는 장면을 보라. 김고은만 국어책 읽고 있다. 나머지 세 사람(최민식, 유해진, 이도현)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굳이 평가가 필요 없을 정도.


안 하는 것만 못한 점프 스케어. 놀라는 것과 무서운 것은 다르다. 나는 공포 영화에서 점프 스케어를 사용하는 감독은 재능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공포는 무지에서 비롯하는 두려움과 호기심이지, 육체의 반사 신경을 억지로 자극하는 것이 아니다.

사운드 효과도 마찬가지. 공포 영화는 시각과 청각을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 진짜 무서운 것이라면 핸드폰으로 찍어도 충분히 무섭다. <블레어 위치>와 <주온> 비디오판을 보라. 딱히 꾸미지 않아도 각본이 탄탄하면 공포 명작에 남는 것이다. <파묘>는 결정적인 장면에 봐, 이거 무서운 거야, 하듯이 사운드를 빵빵 터뜨린다.


마지막에 김상덕(최민식)의 딸이 결혼하는 장면이 나온다. 남편이 독일인이다. 김상덕은 파묘 의뢰인에게 자기 딸이 독일에서 공부했다고 그전에 말한다. 왜 독일일까? 간단하다. 독일도 일본과 같은 전범국이기 때문이다. 근데 독일은 사과하고 배상했기 때문에 지금은 우리와 '결혼' 할 수 있다.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스스로 반성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는 다른 국가와 화합이 가능한 것이다. 한국 여자와 독일 남자가 결혼했다는 것은 한국과 독일이 세계 일원으로서 그만큼 친해질 수 있다는 걸 뜻한다. 반대로 일본은 안 된다. 국권 침탈, 강제 징용, 위안부와 독도 문제 등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과 결혼할 수 없다. 아직 우리 땅에 화장하지 못한 친일파와 뽑아내지 못한 오니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듯 영화에 세 국가(미국, 일본, 독일)가 나오는데 좀 생각해보면 감독의 정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나의 한 줄 평.

그걸 왜 보여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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