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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존재 자체가 싫어질 때

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


골목길 언덕 위 앉아있는 사람 등에 아무 이유 없이 물을 끼얹을 정도로 철이 없던 아이는 어느 날 하늘을 날게 되었다. 조그마한 창문 너머 몽글한 구름 사이로 푸르게 펼쳐져 있는 공터를 보며 아이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생경한 낯섦을 느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침이 많아 ‘침수’라는 별명을 가졌던 아이는 입에 고인 침만큼이나 말이 많았다. 쉴 새 없이 세상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해 재잘거렸다. 차를 타면 창 밖으로 보이는 달이 자신을 따라오는 것에 신기해하며 존재의 특별함을 느꼈다.


아이는 곧 자라나 소년이 되었다. 소년은 말이 없었다.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았다. 모든 질문에는 그저 몸짓으로만 대답했다. 하루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날도 종종 있었다. 이러다 자신의 목소리를 까먹겠다고소년은 생각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 어차피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소년은 잠만 잤다. 잠이 깨 있는 순간이 두려웠다. 둘, 또는 셋, 또는 넷이서 조를 지어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순간이 두려웠다. 마지막으로 남겨진 소년을 다른 아이들은 한숨 어린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소년은 곧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교라면 다를 거라 생각했다. 대학교라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동아리에서, 같은 학과에서도 친구를 사귀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신입생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친구는 어떻게 사귀는 것인지, 사람과 대화를 어떻게 나누어야하는지 인터넷에 검색해 공부하듯이 준비했다. 절박했다. 대학교에서마저도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면 자신의 인생에서 친구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인연들을 만들어갔다. 같이 모여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었다. 그때는 그렇게 하면 친구가 되는 줄 알았다.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친구를 만드는 기술도 시간속에서 축적된 경험과 기술이 있어야 함을 그때의 나는몰랐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오늘의 내가 만들어졌다. 지독한 염세주의와 비관주의의 늪에 허덕이는 나는 사실 모든 관계를 부정한다. 내 가족도, 내 친구들도, 언제라도 끊어질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을 내 머릿속 한켠에 깊숙이 박아두고 계속해서 되뇐다.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폴님은 워낙 착하고 나이스하시니깐요. 독서모임 모임원 중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오늘의 나는 겸손하다는 말도, 다정하다는 말도, 나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말도 듣는다. 그러한 말들이 같은 무게의 부담과 죄책감으로 내 의식 속에 얹힌다. 나는 착하지도, 겸손하지도, 다정하지도 않다. 그저 그 모든 것의 반대편에 서있기에 거울을 보며 처절히 연기해 나간다. 네가 어떤 사람이든 좋아. 너의 진짜 모습이 어떻든 우리는 너를 사랑하고 아껴라고 말해주는 친구들이 생겼지만 나는 안다.

누구에게도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없을 거라는것을. 그것은 할 수 없음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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