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을 읽고.
안녕. 오랜만이네.
자전거를 타다 문득 생각이 나서 이 편지를 써.
요즘 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던 아이. 눈에는 장난이 가득하고 입은 관심을 갈구하며 재잘거렸던 아이. 그런 우리가 내가 되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슬퍼.
낯선 환경에 던져진 너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처음으로 하늘을 날아본 너는 그 순간의 의미를 이해했을까? 어제 한강의 흰을 읽었어. 오늘의 내가 있기 위해사라져 간 우리들은 얼마나 많을까?
그래도 너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 기억나? 우리가 12살쯤이었던 어느 날 거울을 보면서 저주를 퍼부었던 그 밤을? 괴물새끼. 난 널 이해하지 못하겠어. 아니 그 누구도 널 이해하지 못할 거야. 넌 누구도 사랑하지 못할 거야. 누구도 널 사랑하지 않을 거야.
그날 씹듯이 읊조린 말들은 아프면서도 말로 표현할 수없는 안도감을 줬었어. 그날 이후 한 번도 우리를 의심해 본 적 없는데 요즘 왜 이런지 모르겠어. 그날의 너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어.
행복한데. 행복해도 되나 싶어. 사랑하는데. 사랑해도 되나 싶어. 행복이라는 감정이 배신처럼 느껴지는걸 너는 이해해 줄까? 할 수 있다면 정말 가능하다면 그날의 너를 안아주고 싶어. 이제 일하러 가야 해.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다시 편지 쓸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