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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ine 육은주 Jul 19. 2022

한류, 뭣이 중헌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는 경제나 증시, 북한 리스크 등의 국제정치 분야에만 존재해온 것이 아니었다. 문화 예술 분야에도 존재해왔다. 중국은 그 거대성, 압도적 규모의 스케일로 중국 중심주의를 설파해왔고, 일본은 미시적, 탐미적인 특유의 문화로, 선진화, 산업화 시대 전환기에 빨랐던 덕에 동양문화 대표로 세계에 소개되는 “최초 프리미엄"을 지금껏 누려왔다. 그 사이 한국은 한때 글로벌한 플레이어였던 상업 교역, 해양문화 융성기의 고대 역사 속 기억을 어느덧 아스라히 잊어버리고, 두 거대문화 사이에서의 균형자 또는 조정자, 2인자(Second Tier) 로서의 입장을 가까스로 견지해오던 중이었다. 

그러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우리 스스로조차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우리 대중문화의 부상이라는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아시아 주변국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뿐 아니라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우리 대중문화의 압도적인 끌어당김(attraction)이 시작된 것이다. 한류, Korean wave라는 이름표를 달고서.

한류 Korean Wave는 우선은 우리 주변의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한국 문화 붐 현상으로 최초는 1990년대말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그 역사가 짧지 않다. 그동안 한류에 대한 여러 분석들이 나왔다. 1,2,34차 한류까지 세고 있는 일본은 물론, 한류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냈던 대만언론, 2021년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이 전세계 시청자들을 대동단결하게 만들며, 초대박이 나면서, 미국과 유럽을 비롯 전세계 언론과 문화산업종사자들, 학자들의 이목이 한국에 집중되었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한국문화에 대한 이러한 분석들은 각각 다 일리가 있기도 하고, 일면 다 부족하기도 하다. 그 분석들이 진실은 진실이되 모두 일부분만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그만큼 한 면만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다층적, 다면적 성질을 갖고 있다. 더군다나 정작 우리나라 언론과 학계는 심도 있는 한류 분석을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류 따위 분석하기에는 다른 중요한 일이 너무나 많고, 바쁘다. 디지털 및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기의 경제부터, 북한 핵 문제부터, 지정학적 위치의 무게가 엄중한 외교까지 “빨리 빨리” 쳐나가야 할 중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대중문화 따위 분석하랴, 하기는 우리는 너무나 통이 크고, 통이 큰 만큼이나 문화를 하찮게 여긴다. 

필자는 이 책에서 크게 세가지의 렌즈로 한류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는 문화산업적 의미에서 본 한류, 둘째는 가치적 관점에서 한류가 담고 있는 Korean Value 의 의미, 셋째는 국제정치, 국제 관계적인 의미에서 살펴보는 한류의 의미와 가치, 함의이다. 

최근 한류가 국제적인 현상이 되면서 한류에 대한 각종 외국 언론, 외국전문가들의 분석이 난무하였다. 그 중에는 한국인의 눈으로 보기에 때때로 어처구니없는 것들도 있었지만, 우리도 무심코 놓치고 있던 정곡을 찌르는 예리한 의견들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흥미롭게 관찰하면서 필자는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로 오랫동안 숙제처럼 잡고 있었던 한국적인 가치, 한국적 정체성 탐구에 대해 문화와 국제관계 중심으로 천천히 매듭지을 수 있었다. 

이 작업은 2022년 봄 타계하신 대한민국 대표지성 이어령 선생님께 영감을 받은 바 크다. 이어령 선생과의 인연은 2000년대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가 기자 시절, 몸담고 있던 월간 매체의 기사로 '대한민국 원로에게 듣는다’시리즈를 기획한 적이 있었다. 그 첫번째 원로가 이어령 선생이셨고, 선생은 필자가 당시 갖고 있던 여러가지 의문에 대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더 이상 명쾌할 수 없는 대답을 척척 내주셨다. 

당시 이어령 선생은 ‘늘 위태로워 보이는’ ‘대한민국의 갈 길’을 묻는 필자에게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바는 ‘매력국가가 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때 필자는 선생의 답변으로 당연히 대한민국 부국강병의 어떤 비결, 비기를 예상했는데, 예상치 못한 의외의 대답이었다. 풋내기 기자의 ‘거창한 질문’에 대해 선생이 들려주신 매력 국가론은 2000년대를 막 시작한 그때만해도 ‘설마 그럴 일이’ 였지만, 지금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현실로 체감하고 있는, 무릎을 치게 만드는 혜안이다. 대한민국의 매력에 외국이, 외국인들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끌려온다는 그 개념은 지금 우리 눈앞에서 어마어마한 영향력과 발전의 가능성을 가진 한류의 형태로 현실화되고 있다. 다시 한번 선생의 혜안에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글을 쓰는 도중에 선생의 타계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게으름을 떨치고, 집필과 편집 속도를 내면서, 선생이 필생을 바쳐 탐구하셨던 한국인의 정체성, 한국적인 것의 정체성이라는 탐구 작업에 까마득한 후배로서, 필자의 “어린” 생각을 한 줄 덧댄다는 심정으로 이 책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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