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자연과 삶의 위대함

by 박미라

추석이 길어 쉼도 길어졌다.

마음이 가는 대로, 친구가 있는 제주로 향했다.


공항에 내려 렌터카를 찾고, 친구가 좋아하는 꽃게를 싣고 도로 위에 올랐다.

바람에 실린 짠 내음과 햇살이 섞여 들며, 제주의 공기가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제야, 진짜로 숨을 쉬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 집에 도착해 육지에서 가져온 재료로 정성껏 한 상을 차렸다. 함께 먹으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오랜만에 편안하게 마음을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 창밖으로 스며드는 제주 바람까지 정겹게 느껴졌다.


제주에 올 때마다 늘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우도 여행. 이번엔 드디어 그 바람을 이루게 되었다. 바다를 건너는 짧은 배길조차 설렘으로 가득했고,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와 하얀 해변이 마치 기다려준 듯 반겨주었다.

매번 거센 바람과 파도에 막혀 바닷길이 열리지 않았던 우도. 그래서인지 이번에 닿은 우도의 풍경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마침내 건넌 그 길 위로, 햇살이 반짝이며 오랫동안 기다린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다음 날은 하늘이 잔잔히 흐려지더니, 보슬보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행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빗소리를 들으며 여유를 느끼기에 딱 좋은 하루였다. 창밖으로 번지는 빗방울 사이로, 제주만의 고요한 풍경이 한층 더 깊어 보였다.


그때 친구의 남편이 일손이 부족하다며 대파 작업을 도와달라고 했다. 우리는 밭으로 향했다. 흙냄새와 비냄새가 뒤섞인 들판에서 대파를 다듬고 묶다 보니, 낯선 일도 금세 즐거운 체험이 되었다. 비 오는 제주에서의 또 하나의 추억이 그렇게 쌓여갔다.


해보지 않던 일이라 처음엔 재미있었지만, 두세 시간이 지나자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허리를 굽히고 서너 번만 더 묶자 마음속으로 세어보며 버텼다. 그래도 함께 웃고 일하던 그 시간은 묘하게 뿌듯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렇게 잠깐 일했을 뿐인데도 금세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픈데 친구네는 이런 일을 매일같이 해내고 있었다. 그 생각이 드니 새삼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비 속에서도 묵묵히 밭을 지키는 그들의 삶이 얼마나 단단한지, 그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일은 많지만 일손이 부족한 시골의 현실 속에서, 다시 한번 그들의 노고가 깊이 느껴졌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농사일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친구네의 모습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잠깐 도운 것만으로 그들의 삶을 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짧은 시간 동안 마주한 그 땀과 노동의 무게가 마음 깊이 남았다. 매일같이 자연과 맞서며 살아가는 그들의 하루가 얼마나 값지고 단단한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이 얼마나 고되고도 귀한 일인지, 그날 밭에서 몸으로 배운 듯했다.


이번 여행에서 자연이 준 선물을 고스란히 누리면서, 친구네가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가는지를 직접 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니, 자연 앞에서 그리고 일상의 소중함 속에서 살아가는 내 모습이 한편으로는 미안하게 느껴졌다. 풍요로운 자연과 그 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 앞에서, 감사와 겸손이 함께 마음에 스며드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