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발걸음

회식의 끝에서

by 박미라

예전에 회식은 상명하복의 문화가 회식 자리에도 반영되어, ‘눈치 회식’이라는 말도 생겼다고 들었다

그러나 요즘 회식은

소통과 친목 속

평소 일상에서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며 동료 간 유대감 형성과 상하관계의 벽을 낮추는 기회로 활용하기도 하고 조직 결속력 강화와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 이해하고 응원하는 자리이며 팀워크 강화 및 사기 진작과 성과 공유 및 격려 및 성과를 함께 축하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난 이런 요즘 회식이 아닌 7,80년에나 있을 법한 회식을 한다.


오늘은 가족운동회가 열려 열심히 발로 뛰고 몸을 움직여 피곤한 상태인데 모두 모여 아쉬운 점, 좋았던 점을 이야기하며 갖는 회식.

그러나 내가 속한 이곳의 회식은 말만 들어도 부담스럽고 곤욕스러운 자리이다.


요즘 세상에도 이런 회식이 있을까 싶다.

나는 여전히 70~80년대에나 있을 법한 회식 자리에 앉아 있다.

술잔이 돌고, 웃음소리가 오가지만 그 속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따라 웃고, 상사의 말 한마디에 공기가 얼어붙는다. 누군가는 아부에 능하고, 누군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마치 상명하복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예전 모습을 한 작은 군대 같다.


내가 속한 이곳은 상사가 들어오면 모두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누군가는 두 팔을 들어 서로 맞잡아 가마를 만들고, 그 위에 상사를 태워 자리까지 모셔간다.

대표로 누군가가 ‘당신 없인 못 살아’라는 트로트에 맞게 이름을 붙여 개사한 노래를 선창 하면 일제히 일어나 두 손을 모아 상사에게 향하고 모두 합창하듯 부른다.


상사가 의자에 앉는 순간, 환호와 박수가 뒤섞인 소란이 터진다. 서로가 먼저 술잔에 술을 따라주려 하고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어색하게 잔을 든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이 자리만은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곳엔 위계와 의례만이 남아 있고, 진심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


이 자리는 즐겁기보다 견디는 자리다. 물론 즐기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견디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진심 대신 체면이, 웃음 대신 의무가 자리한다. 마음은 이미 집으로 달려가고 있지만, 살아내야 하기에 자리에서 일어날 용기는 쉽사리 나지 않는다.

그저 ‘모두 수고 많았다’는 말 한마디에 모두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든다.


회식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찬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웃느라 굳었던 표정이 풀리자, 남은 건 묘한 허무함뿐이다.

자존감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미안함이 대신 채운다.

후배들에게 미안하고, 나 자신에게도 미안하다.

그렇게 오늘도 발걸음은 유난히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