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쁜 마누라다.

미안함과 현실사이

by 박미라

신랑이 목디스크란다.

언제부터였을까, 어깨 살이 빠져 앙상해지고 손끝 감각이 둔해졌다는 말을 자꾸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프면 병원 가면 되지, 왜 안 가고 버텨?” 하며 말은 건넸지만, 정작 적극적으로 등을 떠밀지는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다른 생각이 더 빠르게 자라고 있었다. ‘수술비 많이 나오겠지? 병원 간다고 하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

남편의 아픔보다 먼저 현실적인 계산이 고개를 들었다는 사실이 미안하면서도, 그 걱정의 씨앗이 이미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음을 이제야 인정하게 된다.


그제저녁, 결국 남편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말했다. “내일은 병원을 가야겠어.”

나는 걱정을 잠시 접어두고 얼른 그러라고 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말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터였다. 아픈 사람은 남편이지만, 정작 내가 먼저 꺼내야 할 말을 남편이 먼저 해주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침이 되자 상황은 또 달라졌다. 남편은 이것저것 이유를 들며 미루기 시작했다.

“오늘은 일이 바빠서…”

“좀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오늘 아니더라도 검사만 받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어제보다 더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걱정되고, 또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가면 될 텐데 왜 자꾸 시간을 끌까’ 싶은 답답함이 스쳤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건 늘 같은 질문이었다. ‘혹시 진짜 수술이라도 하게 되면… 비용은? 그리고 그 뒤는?’


그래도 등 떠밀어 보냈다.

엠알아이를 두세 번 찍고 난 뒤, 결국 의사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목디스크라고,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남편은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그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오래전부터 징후는 있었지만, 막상 ‘수술’이라는 단어가 현실이 되어 들려오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남편의 아픔이 선명하게 다가와야 하는 순간인데, 이상하게도 그와 동시에 수술비, 회복 기간, 앞으로의 생활 같은 현실적인 장면들이 먼저 쏟아져 들어왔다.

참, 마음이란 것도 제멋대로다.


수술대에 오른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나는 누구보다 먼저 그의 통증을 떠올려야 옳았다. 그런데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수술비 계산표였다. 마음보다 계산기가 더 빨리 돌아가는 내가, 잠깐은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이러다 ‘나쁜 마누라’라는 딱지가 붙는 건 아닐까 싶으면서도, 누군가는 이 집의 현실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도 고개를 들었다. 걱정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이, 오늘따라 유난히 무겁게 느껴진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마 ‘나쁜 마누라’ 일지 모른다. 남편이 아픈 건 속으로 걱정하면서도, 입 밖으로는 “수술비 얼마나 나오려나…” 하는 말이 먼저 튀어나오는 사람. 병실 문 앞에서 한숨을 내쉬며 눈물 한 방울보다 계산이 먼저 흐르는 사람.

하지만 그 순간마다 나는 나를 다그치며 생각한다. 그래도 내가 이 사람 옆을 지키는 건 변함없지 않나.

나쁜 마음으로 한 걱정이 아니라, 버텨야 하는 삶의 무게가 먼저 밀려온 것뿐이라고.

그렇게 나쁜 마누라 같은 마음을 품고서도, 결국 오늘도 남편의 회복을 가장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그게 바로 나다.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제야 뒤늦게 마음이 따라왔다. 아, 이 사람이 정말 많이 아팠구나. 그제야 걱정이 늦게라도 제자리를 찾는 듯했다


돌아오는 길 나는 창밖을 보며 마음속에서 소리 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남편은 몸이 아팠고, 나는 마음이 서툴렀다.

그는 가족을 위해 통증을 삼켰고, 나는 가족을 위해 계산을 먼저 떠올렸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팠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