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길을 걸어 가야 할 사람
신랑과 함께 서울 강남 세브란스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싸늘한 겨울 공기 속으로 병원 특유의 차분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서둘러 걸음을 옮기면서도 마음 한켠엔 묵직한 걱정과 안도가 뒤섞여 조용히 일렁였다.
가는 도중, 끝없이 늘어선 건물들 사이를 지나며
나도 모르게 목을 빼고 위로 올려다보았다.
유난히 빽빽한 도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차들 사이에서
엉금엉금 기어가는 듯한 차량 행렬을 바라보니
내가 사는 광양이 벌써부터 그리워졌다.
도심의 숨막힘 속에서, 조용한 일상의 공기가 떠올랐다.
겨우 제시간에 도착한 병원은 나에게 너무 낯설기만 했다.
키오스크가 자리 잡고, 무엇이든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시스템 앞에서 순간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내가 안절부절하면 신랑이 더 힘들어질 것 같아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따라 해 보았다.
접수부터 가져온 CD 등록까지 하나하나 직접 해내다 보니
어느새 진료실 앞까지 와 있었다.
어수선했던 마음도 조금은 가라앉고,
이제 정말 검사와 마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검사를 마치고 면담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점점 불안해지고, 좋지 않은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려는 순간
마침내 신랑 이름이 호명됐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 치밀어오르던 걱정이
잠시 멈춰 서는 듯했다.
의사선생님은 들어오자마자 신랑을 나무라듯 말했다.
왜 이제서야 왔냐고,
목 뒤 신경이 거의 죽어 있어 마비가 오는 건 시간문제라고.
수술을 해도 좋아지는 건 아니고, 다만 마비를 조금 늦출 뿐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반드시 수술은 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덧붙였다.
신랑을 바라보며 “그동안 많이 아프지 않았냐, 왜 참고 있었냐”고 묻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신랑은 조용히, 삶이 바쁘고 고된 일을 하다 보니
그저 근육통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 순간, 의사선생님도, 나도
말을 잇지 못한 채 그저 신랑을 바라볼 뿐이었다.
수술 날짜를 겨우 잡고, 둘이서 돌아오는 길.
나는 말없이 신랑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병원으로 향하던 그 아침,
수많은 걱정이 머릿속을 꽉 채웠을 때와는 달랐다.
선생님의 좋지 않은 설명을 들었음에도
막상 마음속에 자리한 건 좌절이 아니라
‘그래도 이 정도에서 알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늦지 않게, 버티고 버텨온 신랑의 몸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그래도 손을 쓸 수 있는 시점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조용히, 깊은 안도처럼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