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내심 #1
1화부터 3화까지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란 주제 아래 3가지 이야기로 꾸며봤었다. 이번 화부터는
'하나님의 보내심'이란 주제로, 즉 변화되고 있는 자신이 이전과는 좀 다른 방향의 삶을 살게 된 내용이 주가 되어 꾸며질 것이다. 바로 J로부터 받은 사랑, 받을 자격 없던 자에게 주어진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저자는 이제 더 이상 이전과 동일한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선 이 같은 과정을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함의 '성화의 길'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일어난 성화의 과정 중 몇 가지를 이야기해볼까 한다.
첫 번째, 분별력이 생겼다.
인간은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마주하게 되는데
대부분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면서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르겠지만 저자의 입장에선 결과적으로 모든 게 유익하진 않았었다. 특히 관계적인 부분에 있어 자신의 유익만을 취하려 했을 때 함께 얻을 수 있는 유익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였다. 또 어느 땐 생각지 못한 상대의 반응으로(자신에게 원인이 있었겠지) 서로 간의 부정적 감정과 거리감만 생겼을 뿐 원치 않았던 상황까지 벌어진 적도 있었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 속엔 J가 말한 사랑이 담겨있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랑의 표현방식이 달랐다. J의 사랑은 거저 주는 사랑였고 되려 손해 보는 사랑였는데, 자신이 보인 사랑은 계산적인 데다 혼자만의 유익을 챙기기 급급한 사랑였기 때문였다. 받은 사랑에 비해 드러내는 사랑의 다름을 인식하고 조금씩 성찰의 시간이 갖게 됐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J의 사랑을 닮아가려 하고 있었다. J의 사랑을 닮아가면 닮아갈수록 새로운 시선이 열리기 시작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 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디모데후서 2: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디모데후서 2:21)
J의 말씀이 새로운 삶의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제는 받은 사랑을 닮아 네가 줄 사랑에 대해서도 좀 더 분별하고 부끄러움이 없는 선택을 하길 바라셨다. 또
쓰임 받을 것에 있어선 자신이 먼저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어야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분별력이 뒷받침된 선택을 하면 할수록 삶에 있어 자신의 생각과 태도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태도가 습관이 되어 잦은 행동으로까지 이어졌을 땐 주변 반응도 달라져 있었다. 예로 자신의 유익보다
상대의 유익을 먼저 생각해 볼 마음이 생겼다는 것과 그것을 우선순위에 두기도 했다는 것였다.
누군가는 '어리석고 쓸데없는 판단 아니냐,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 말할지 모른다. 지금 같은 경쟁사회에서 자신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게 이성적 판단이지 않겠느냐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끝에 과연 무엇이 남게 될까 생각해 봤다. 이전 자신의 유익만을 택했을 땐 바라던 결과는 보였지만 주변은 공허할뿐였다. 반대로 모두의 유익이 담긴 선택을 했을 땐 함께라 누릴 수 있는 유익과 사람이 남아 있었다. 바로 자신 곁을 사랑과 신뢰로 이어 준
관계가 말이다.
두 번째로는 용서를 넘어 화해를 배웠다.
우리가 사는 현시대는 실상 이전부터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였다. 혼자선 감당 안 될, 서로가 힘을 합쳐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모습을 요즘 들어선 보기 힘들다 생각되는데, 바로 분열을 일삼고 상대를 나무라기 바쁜 사람들을 볼 때면 그러한 것 같다.
저자 역시 상대가 조금만 불편해도 등을 돌렸다. 관계의 개선을 바라기보다는 포기하는 쪽이 빨랐다. 팀 안에서 분열이 일어나려 할 땐 마치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무관심이 답이라 생각했고 상대를 헐뜯는 것조차 "그런 사람은 그래도 돼"라는 식의 맞장구도 친 적이 많았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 6:2)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디모데후서 2:24-26)
근데 생각해 보니, 사실은 값없이 받은 사랑들뿐였는데
자신은 값을 따지는 사랑만 하고 있었다. 부끄럽고
민망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J의 사랑을 닮아
계산하는 사랑을 멈추기로 했다.
성경에 근거한 J의 사랑법은 그동안 자신의 방법과는 완전히 달랐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는 것이 아닌 상대의 짐마저 들어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였다. '내 일 아니니까' '내 관할이 아닌데' '내가 할 필요 없어'라는 생각보다는 상대의 짐마저 함께 또는 대신 질 줄도 아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였다. 이것이 J가 말한 사랑법이자 용서와 화해까지 이뤄질 수 있는
표현법였던 것이다.
또 상대를 대하는 태도마저 자신의 것을 자랑치 말고
그저 온유함으로 대할 것을 강조한다. 설령 자신의
생각이 전달되지 못해도(자신의 뜻대로 이뤄지지 못해도) 때를 따라 돕는 도우심이(은혜가) 있을 것을 기억하라 하신다.(생각해 보면 상황은 늘 풀려가고 있었다) 심지어 언젠가 상대마저 자신의 마음을 돌리게 될 순간이 있을 것을 약속하셨다. 그 약속은 진실로
이뤄지기도 했다.
분명 쉽지 않은 선택이고 드러내기 어려운 행동일 수 있다. 하지만 뒤따라 올 유익이 분명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불편한 관계 앞에서 피어난 부정적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을 경험할 것이다. 때론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방해할 만큼의 올무도 될 수 있기에
이 얼마나 대단한 유익이 될지는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무기가 될 수도 있는 이 선택을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한 지인과 불편한 감정이 오고 갔었다. 마음속으론 이미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론 그렇지 않았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불편했던 감정이 불쑥불쑥 올라왔기 때문였다.
더 이상 이 감정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 이제는 혼자만의 유익(내적 용서만 이뤄진 상태)을 넘어 상대를 포함한 모두의 유익으로 초점을 바꿔봤다. 바로 용서를 넘어 '화해'를 택한 것이다.
그렇게 내적인 용서를 넘어 외적인 용서의 표현을
하기로 맘먹었고, 때를 기다렸다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단순한 지적이 아닌 더 원만한 관계를 위함의 정의롭고도 불편한 말을 꺼냈다. 대화의 물꼬가 터지자 그동안 감춰뒀던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정중히 사과도 오고 갔다. 시간이 좀
지나 약간의 불편한 분위기로 겉돌긴 했지만 결론적으론 각자의 잘못을 인정, 서로 간의 용서를 구함과 동시에 적절한 화해의 모습으로 마무릴 짓게 되었다.
그저 말씀 따라 J의 사랑을 표현했을 뿐인데 인간관계를 마주하는 자신의 모든 것이 달라진 상황였다. 그리고 사람을 대할 때마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불편함 속에선 용서와 화해만이 올바른 답으로 가는 통로가 될 수 있음에 확신했다.
마지막 세 번째론, 거룩한 연대를 소망하다.
앞서 언급했듯 저자의 인간관계는 미성숙한 모습들뿐였다. 그런데 변화는 조금씩 일어났고 이전보단 조금 성숙해진 태도로 상대를 대하고 있음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젠 여기서(자신의 현 수준) 더 나아가 상대도 함께 성숙함이 이뤄지길 소망하게 되었다. 바로 거룩한 연대를 꿈꾸게 한 것이다. 지금부턴 세 가지 유형의 상대를 두고 (J의 사랑법으로) 어떠한 거룩한 연대가 이뤄졌는지를 에피소드와 함께 풀어보겠다.
먼저는 부부관계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사랑해서 결혼까지 선택한 사람였지만 모든 면에 만족하며 함께 살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J의 사랑법? 바로 계산하지 않고 자신의 소중한 것마저 내어줄 줄 아는 사랑을 말하는 것일 텐데 부부간에도 이 사랑이 적용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의문은 의심만 될 뿐 자신의 부부생활 before, after 만 봐도 알 수 있기에 여기서 자신 있게 말해보겠다.
남편과 저자는 자라온 환경이 달랐고 만들어진 인격체의 성향과 취향 모든 면에서 많은 것들이 달랐다. 그래서 부딪힘도 많았다. 하지만 달랐기에 더욱 계산적 논리는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다름에 대해 인정했을 뿐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빈 곳만을 채우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손해 본단 생각보다 내가 좀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니 더 적극적인 섬김의 자세로 나아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 역시 같은 사랑으로 화답했고 부부간엔 보다 건강한 사랑의 연대가 이뤄짐이 보였다. 각자의 역할에 있어 의무적인 자세를
취한다거나 억지로 노력해야 이뤄질 수 있다고 보기보단, 말 그대로 내어줄 줄 아는 사랑으로 남편을 대한다면 조금 손해 보더라도 사랑이 먼저인 태도를 취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부부관계가 그려질 것이다.
또 한 가지, 남과 비교하는 생각서 벗어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기로 했다. 상대의 완벽함을 바라기보다 자신 역시 상대에게서 완벽한 사람이 아님을 인정하려 했다.
원하는 걸 끊임없이 욕심내기보다는 주어진 것에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을 갖으려 했고 이것은 습관이 되어야겠다 생각하면서 훈련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J의 사랑법으로) 변화되어 가는 자신을 바라보던 남편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남편의 사랑에도 J의 사랑이 보이기 시작했다. 뒤늦게 누린 사랑의 소통은 부부관계에 성숙함을 가져다주었고 거룩한 연대를 이뤄가게 되었다.
두 번째론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말할 수 있다.
부모에게 자식이란 존재는 참으로 귀하다. 귀함이 더할수록 가진 것들을 때마다 공급해 주면 참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부모로서
가장 좋은 것을 주고자 한다면 가장 귀한 유산이라 말할 수 있는 것, 바로 (저자에게 있어선)'믿음'일 것이다.
부모라면 불가능하겠지만 J의 사랑을 통해서라면 한없이 책임져주실 하나님의 돌보심 말이다. 오직 하나님께 대한 믿음만이 아이에겐 크나큰 자산이 될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있어 아직은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을 이 믿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었다. 결국은 부모가 먼저 본이 되어 아이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아이에게 정말 물려주고 싶은 게 믿음이라면, 부모가 먼저 믿음의 본을 보이면 되는
거였다.
한 마디로 J의 사랑을 일상생활 속에서도 표현했다. 함께 있는 시간 속에서 아낌없이 사랑을 주려 했다. 계산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사랑을 배우게 했다. 말과 행함에 있어선 정직함이 깃들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선 배려가 넘칠 수 있도록 보여줬다. 그런데 이 과정은 결국 부모도 살리고 아이도 살리는 모두의 유익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장 귀한 유산을 허락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J의 사랑만으로 이뤄졌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세 번째, 사회라는 울타리에서 만난 모든 이들과의 관계, 그중에서도 직장상사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솔직히 저자는 이 부분에 언급할 말이 없을 정도로 부끄럽다. 그 말인즉슨 상사를 마땅히 공경할 자로 여기지 않았었고 겸손한 태도가 부족했기 때문였다. 말 그대로 J의 사랑법이 전혀 보이지 않던 영역이었다.
자신보다 어른인데도 어른답지 못한 모습에 혀를 차기 바빴다. 자신만이 정의롭다 여겼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자신 역시 완벽한 사람이 아녔음을 그래서 오만과 편견에만 쌓여 결국 스스로 상대와의 관계를 어그러뜨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특히 J의 사랑은 자신의 이런 죄를 더 깊이 깨닫게 하셨다. 바로 때마다 세우신 직장상사를 향한 하늘의 주관적 세우심이 있었단 것에 복종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적 시선으로만(눈에 보이는) 판단했고 그 뒷면의 하늘의 계획하심엔 무관심했다. 참으로 이기적였고 교만했으며 무례한 사람이 바로 자신였다. 정의를 외쳤지만 그저 지혜롭지 못한 소리침에 불과했다.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가르치고 권하라. (디모데전서 6:1-2)
그날 이후, 자신의 쓰임이 닿을 곳에 기회를 준
상사임을 잊지 않고 늘 공경의 마음과 겸손함을 가졌다. 설령 다름의 마찰로 갈등과 분열이 일어날지언정 다르기 때문에 더 맞춰가야 할 연대임을 상기시켰다. 한 마디로 혼자보다는 함께 이뤄 성취하는 가치를 더 추구했다. 이것이 J가 말한 사랑이자 이 표현법만이 다름을 넘어 하나게 되어줄 통로가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최근 자신의 상황도 그러했기 때문였다.
현재 대체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 직장 어린이집에서 원장님과 불편한 상황이 벌어졌다. 사실 정규직 직장도 아닌 프리랜서로 일하는 곳이다 보니 오랜 인연으론 남지 않아도 될 얕은 관계라 여겼다. 언제든 떠나면 그만일 곳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부담 없이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어느 날 원장님의 뜬금없는 부탁을 받고서 마음에 불편한(부정적)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근무하는 데 있어 함께 정했던 조건이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지 못한 조건을 요구하셨고 당장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였다. 조금은 황당했고 어쩔 줄 모를 상황였기에 그저 죄송하다는 대답과 함께 원래 정했던 조건대로 일할 수밖에 없음을 정중히 부탁드렸다. 몇 시간이 지나 원장님은 다시 저자를
부르셨고 원래의 조건대로 일 해 줄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대화 후 왠지 모를 서먹한 관계로 퇴근을 해야 했다.
며칠이 지나 또다시 근무를 하러 가야 했을 때 이전과 같은 마음으론 출근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재정비했다. 바로 J의 사랑법으로 서로의 다름과 입장의 차이를 인정하고는 마땅히 공경할 태도와 겸손의 자세로 나아갈 것을 다짐했다.
예전의 직장생활였다면 자신의 입장은 잘못한 게
없으니 그저 당당하고 자만심 가득 채워 일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젠 혼자만의 유익을 위해 행동하지 않고 멀리 내다보아 직장상사와의 연대를 이루려 다른 선택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웃으며 출근했고 보다 더 겸손한 자세로 매 순간 일했더니 원장님의 호출이 있었다. 2월 출근표가 나왔는데 이 날짜에 근무가 가능한지를 물으셨다.
어쩌면 지난번 일로 자신의 스타일과 맞지 않은 교사라 여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조건적인 순종적 자세가 아녔기에 저자를 향한 편견이 생기셨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무력하게 만들 새로운 제안일 줄이야. 심지어 지난번 일은 자신의 판단미스와 교사들 간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벌어졌다면서 신경 쓰지 말란 이야기까지 하셨다.
어쩌면 직원의 바뀐 태도가 아녔으면 그럼에도 공경의 마음과 겸손의 자세가 이뤄지지 않았었다면 과연 이 같은 연대가 이뤄질 수 있었을까 싶었다. 결국 J의 사랑법은 직장상사와도 건강한 연대 즉 신뢰가
쌓이는 연대로 이뤄질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렇듯 세 가지의 서로 다른 거룩한 연대는 자신의 삶에 참 많은 것들을 가져다주었다. 부부관계에 있어선 남편을 얻었고 남편의 사랑을 받는 아내가 되었다. 자녀와의 관계에 있어선 부모가 먼저 본이 되고자 했을 뿐인데, 아이와 함께 보다 성숙한 그릇이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혼자만의 성취감보단 함께 해서 이룰 수 있는 성취감이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저 마땅한 공경의 태도와 겸손의 자세를 취했을 뿐인데 거룩한 연대라는
화합의 장마저 이룰 수 있음이 가능하단 것을 알았다.
한마디로 J의 사랑은 사람을 얻는 사랑이었다. 자신이 성화의 길로 가게 되면서 받은 사랑 나눠줌과(자신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 동시에 사람을 얻게 하는 사랑였던 것이다.
오늘 역시 분별력을 갖고 수많은 선택을 했다. 매 순간 다툼을 멀리했고 용서와 화해의 장으로 나아갔다.
마땅히 사랑해야 할 이들과는 거룩한 연대를 이뤄가길 소망하며 함께 성숙의 과정을 택했다. 그렇다. 계속해서 받은 사랑에만 머물지 말고 나누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랑, 성화의 길로 나아가라 하신다.
당신은 이전보다 성숙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가? 이전과는 좀 다른 선택들로 변화된 삶을 마주하길 바라는가?
혹여 잘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가 있는가? 그 관계가 회복을 넘어 성숙하면서도 거룩한 연대로 이뤄지길 바라는가?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가능성을 바라는 선택을 하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오직 J의 사랑법에 관심을 둬보길 추천한다. J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당신의 선택이 과연 어떠한 변화로 당신의 삶을 이끌어 가실지 기대해 보길 바란다. 분명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놓게 될 것이다. 이제는 당신의 삶이 변화를 맞이하게 될 차례이다.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