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부르심 #3
J와의 관계에 있어 1화에선 자기 자신, 2화에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로 풀어봤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키워드를 하나 뽑자면 아마 '사랑'일 것이다. 자신을 향한 J의 사랑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태도부터, (J의 사랑으로) 용서받은 자신였기에 부모 역시 용서하고 사랑하려는 행동까지 배울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세 번째 영역으론 어느 부분을 지목하실까? 어쩌면 자신도 가족도 아닌 사회라는 범주 안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이들과의 관계를 다루실 것 같았다. 그리고 예상은 결코 빗나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당신의 사회적 관계에 점수를 매기라 한다면 저자는 낮은 점수를 부르기 바쁠 것이다. 그만큼 친구, 동료, 기타 목적 하에 알게 된 지인들과의 관계를 꽤 노력이란 걸 하며 유지해야 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자신을 사랑할 줄도 몰랐고 부모와는 안정감 있는 사랑을 주고받지 않았다 보니 타인을 향한 마음은 그저 두려움과 불신뿐였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내보이지 않았다. 늘 겉핥기식 관계, 어느 정도의 거리 두기는 물론 스스로 외로움을 안고 가서라도 깊은 관계를 맺으려 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친구들은 하나같이 떠나갔고 동료들과는 일 외에 사적인 대화에선 왕따 비슷한 걸 겪었다. 지인들과는 목적이 있어야 만남이 이어졌고 그렇지 않을 땐 먼저 연락이란 걸 해본 적 없는? 스스로 아웃사이더를 자처했다. 나이가 들며 외롭단 생각이 들 때 있었지만 이미 적응해 버린 탓였을까 무뎌진 마음에 자신 또한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은 이런 사람일 뿐임을 한정해 가면서 변화라고는 있을 수 없다며 살아갔다.
그리고 운명처럼 J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다시 말해 J를 인격적으로 만나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관계에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먼저는 기독교 동아리 내에서 만나게 된 친구 들였다. 신입생이란 설렘과 두려움의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우리는 꽤 친숙함을 빨리 느꼈고 다양한 활동을 해가면서 마음을 많이 나눌 수 있었던 관계가 됐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일 적인 모임 외에 몇몇 분과는 사적인 만남을 이어갔다. 그 결과 일이란 항목에 국한되지 않고 각자의 삶의 목표에 대해서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관계로까지 확장되었다.
지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선 때론 자신이 먼저 마음을 표현하고파 연락도 해보고 집으로 초대도 하는 등 이전과는 달리 마음의 문을 열어가며 맞이하는 태도도 보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싶겠지만 이 또한 당연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J의 사랑을 깨닫고 나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다 보니 숨기고 싶었던 부분들이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심지어 약점이라 생각된
것들은 오히려 내겐 다른 강점이 있음에 긍정적 마인드로 바뀌어갔고 상대를 향해서도 편견 없이 두려움 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 자신의 진실된 마음이 먼저 드러나니 상대 역시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와줬고 거리감이 가까워질수록 서로를 향한 신뢰 또한 생겼다.
또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J의 사랑 덕분에 용서받고 정의로운 사랑으로 새사람 되었다 보니 다른 이들의 흠이나 죄 또한 용서의 시선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그만큼 관계에 있어 큰 장애물이 없어지다 보니 이전엔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과 생각들의 유익마저 있었다. 때론 먼저 다가가야 할 사랑도 필요해 보여 조금 용기
냈을 뿐인데 오히려 생각지 못한 선물마저 얻게 된 관계들이 되었다. 이 관계의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고 지낼 정도의 깊이 있는 사이 또 만남의 복이라 여길 정도로 감사와 기쁨이 넘친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자신과 잘 맞지 않는 자들과 관계 맺고 이어가야 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늘 숙제처럼 느껴질 정도로 단순치 않다 싶음 거리 두기에 바빴다. 관계유지에 필요를 못 느꼈을 땐 그저 홀로 마음 편하자는 목적 하에 상대를 향한 암묵적인 용서만 했었다.(상대는 하지 않는) 상대와 제대로 대화를 해보려 한다거나 아니면 이 문제를 갖고 깊이 씨름해 본다거나 하는 과정조차
고민하지 않았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관계라 여기며 그저 인생에서 빨리 스쳐 지나가길 바람의 관계일뿐였다.
그런데 며칠 전, 앞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불편한 관계가 생겨버렸다. 자신과 직접적인 불편의 상대는 아니었지만 간접적으론 서로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였다. 바로 아이들 간의 문제였기 때문였다. 아이와 친구와의 다툼, 불편함이 섞인 만남을 지속할 때마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긴 어렵다 보니 보이는 것만으로 엄마들은 시험에 빠지게 되었다. 사실 아직 어린아이 들였기에 당연히 미성숙함으로 벌어진 일 같은데 정작 이 일을 통하여 엄마들의 태도엔 변화가 필요해 보였다.
누군가는 그런 관계에 너무 힘 빼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냥 끊어버리라고, 당신과 맞지 않는 사람과는 더 이상 엮일 필요 없다면서 말이다. 그랬다. 사실 자신 또한 이러한 관계를 맺었었는데 계속 얼굴을 봐야만 하는 사이기도 했기에 다른 대안은 없을까 고민했던 것 같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고 어떤 상황이 최선일까 싶었다. 쉽사리 정의도 정리도 되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 갑자기 자격지심과 상대에 대한 주눅이 들어있었다. 아이 역시 자신의 사회성을 닮아 친구 관계에 있어 결함이 있던 건 아녔을까, 그래서 상대에게 몰랐던 상처를 남겨 줄 수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그 결과 엄마란 사람이 아이를 주눅 들게 하고 있었다. 즉 엄마에게서 불현듯 피어난 부정적 감정 즉 자격지심과 두려움이 아이 또한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려 하진 않았나? 깨달음 끝에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도로 나아갔다.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저가 가로되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열왕기하 4장 2절)
J는 내게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있는 것을 보라'라고 말씀하셨다. 이미 내 아이에게 주어진 것이 참 많음을 다시금 깨닫고 감사함이 밀려왔다. 그러면서 아이 또한 있는 그대로 사랑으로 바라봄이 가능해졌다.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힌 자신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관계도 회복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의 친구와 친구 엄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쩔 땐 화가 나기도 했고 그저 그러려니 하고 받아줄까도 했다. 또 완벽한 사람 없다 하니 이해해볼까 싶기도 했고 아이들은 아직 미성숙한 존재다 보니 당연한 모습일 수 있겠다 싶어 시간을 핑계 삼아 내려놓으려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두 마음이 충돌했고(시험에 걸리다가도 용서하려는 마음) 이 같은 상황이 서로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이들과의 관계에 있어 분명 놓치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그리고 깨닫게 하셨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향한 회개의 마음과 정의를 담은 사랑의 표현이 빠져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7장 3절)
십자가에서 자신을 향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J의 사랑 속에는 실상 죄에 대한 용서의 마음만 있는 게 아녔다. 죄에 대해선 진노하셨고 그에 마땅한 보응을 할 거란 말씀처럼 쉽게 간과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럼에도 용서를 택하셨다. 그리고 동시에 정의를 담아 사랑을 표현하는 것까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상황을 토대로 자연스럽게 용서에도 두 종류가 있음을
깨달았다. 바로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을 홀로(상대는 자신을 용서하지 않음) 용서하는 것과 용서를 넘어 상대에게까지 사랑의 표현을 전할 수 있는 마음의 용서로 말이다. 그렇다. 자신은 전자의 용서만을 했었기에 후자의 용서의 유익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였다. 그렇게 후자를 택해 때에 맞춰 용서와 사랑의 마음을 표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어젯밤 기회가 생겨 아이의 입을 빌려 전했다. 때마침 아이가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서 대신 전해줬을뿐였는데 아이의 단 몇 마디 말속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다 들어있었다.
(유치원에서 벌어진 상황 갖고)
"OO아, 많이 속상했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라고 말이다. 어색한 사이였기에 조금은 불편한 감정을 서로가 느끼고 있던 상황였기에 이 같은 메시지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했는데 답장 역시 동일하게 전해왔다. 아이의 친구 역시 미안함과 사랑함을 담아 보내왔다. 그러면서 엄마들은 또 한 번 반복된 상황에
웃어넘겼고 그저 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스스로 자신의 문제에 있어 책임감 있는 아이로 자라가 길 함께 기도하자고 겸손의 마음 담아 권했더니 그분 역시 동의했다. 그렇게 엄마들의 대화 역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관계를 맺어간다. 특히 자신에게 맞는 사람과만 관계를 잘 이어가려 한다. 맞지 않는다 생각되는 사람과는 너무나 쉽게 그 관계를
끊어버리려 한다.
하지만 J의 사랑은 조금 다르다는 걸 이번 이야길 통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J는 모른 척하지도 무시하지도 않았다. 포기하지도 않고 그 관계의 최선을 향해 기도케 하셨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었는데, 자신이 흠 있는 사람으로서 용서받았으니 상대에게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보이셨던 것였다.
즉 J의 사랑을 통해 신(하나님)으로부터 수직적 사랑이 회복되었다면 타인들과도 역시 수평적 사랑이 가능함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J는 자신에게 이처럼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랑을 배우게 한 것였다. 네게 불편함을 주는 사람들조차도 널 포함한 그들 역시 더 이상 그 감정과 생각에 매몰되지 않도록 빠져나올 수 있게 자신이 먼저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라는 말 씀였다.
이번 일을 통해 어쩌면 관계에 대해서 더 깊은 J의 사랑법을 배우게 하신 것 같아 감사한 시간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자신의 삶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수많은 관계 속에 이를 적용하며 지속적인 수평적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길 바라본다.
당신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당신에게도 어렵다 생각되는 관계가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어떠한 선택을 내렸고 과연 그 선택이 미래에도 유용하게 작용할 수 있는 선택일까 고민하게 된다면 저자가 말한 J의 사랑법을 생각해 보길 바란다.
특히 후자에 속한 사랑법을 추천하고 싶다. 쉽지 않을 것이다. 이뤄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아니면 도중에 또 다른 방향의 디딤돌 역할만 하고 지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하게 말하고 싶은 건 당신 자신의 대한 이해와(자신 또한 흠 있으면서 용서받은 자)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에(상대 또한 용서받을 수 있는 자) 약간의 변화만 있어도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을 믿는다. 또 관계에 있어 결국은 회복을 바라는 상황이라면 용기 내어 상대를 용서해 보길, 용서를 넘어 정의 또한 깃든 책임감 있는 사랑으로 표현할 수 있길 응원해 본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장 28절)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