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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방 Dec 28. 2020

BTS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리좀적 혁명으로서의 BTS

예전 강변가요제를 유튜브로 보면 날 것 그대로의 젊음을 가진 가수들을 볼 수 있다. 화장도 그렇고, 노래도 그렇고 노래 부르는 창법도 젊음 그 자체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기획사에서 훈련을 마친 나이에 비해 세련된 가수들이 방송국을 점령한 지 오래이다. 많은 걸그룹들이 있지만 대형 기획사의 소속이 아닌 가수들이 살아남기란 정말 어려운 세상이 됐다는 것이 연예계를 잘 모르는 아마추어들도 아는 상식이 되었다. 그런 21세기에 작곡자가 만든 작은 기획사 출신의 가수들이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음악시장을 흔드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현실임에도 잘 믿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현상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인터넷 대통령이라고 불렸던 것처럼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서 영악하게 적응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어쩌면 인터넷을 통한 변화의 흐름을 잘 간파하고 그 흐름에 올라탈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쾌거가 아닌가 하는 놀라움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2018년 4월 출판된 이지영 교수의 BTS 주제의 서적에 대하여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서론 격인 도입부인 '나는 왜 이 글을 쓰는가' 챕터에서 저자는 철학 중에서도 영화 철학을 연구하는 저자가 왜 BTS에 관한 책을 쓰려고 하는지에 대한 소회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BTS와 영화 철학은 무관하지만 BTS는 오늘날 사회 구조, 미디어, 예술형식 등에서 일어나는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변화는 기존의 위계질서와 권력관계를 침식하면서 사회 전체를 뒤바꾸는 혁명의 함의까지 발견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016년의 촛불 혁명이 국내의 변화를 초래했다면 BTS로 인하여 초래되는 변화는 전 지구적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BTS의 성공요인을 분석한 언론은 그 비결로 좋은 음악, 파워풀한 칼군무, 수준 높은 뮤직비디오, 트렌디한 패션감각과 외보,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아 젊은 층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가사. SNS를 통한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꼽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음악적 탁월성과 진정성 그리고 이에 반응한 전 세계에서 성원하는 아미들의 존재를 꼽을 수 있습니다. ARMY, 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청춘의 사랑스러운 대변자)들의 헌신적인 지지와 애정이 있었기에 방탄의 빌보드 수상과 AMA 무대 공연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BTS만이 전 세계 아미들의 열광적이고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이유를 질문하는 저자는 그 중요한 요인이 방탄과 아미가 추구하는 방향 간의 조응 내지 공명이라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이윤 증대를 위한 자본의 세계화와 자동화 기술은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이어지고, 이는 극심한 경쟁, 승자 독식, 소외, 양극화를 초래하면서 힘없는 다수에게 패배 의식과 불안 외로움, 절망 등을 안겨주고 있는데 이 흐름에서 가장 피해를 입은 계층이 바로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방탄이 음악을 통하여 전하는 메시지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울타리를 넘어 전 세계 청년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방탄과 아미가 만나서 이루어내는 사회문화적 변화와 미학적 변화를 총칭하여 '방탄 현상'이라고 부르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회문화적 변화는 방탄의 메시지에 촉발된 팬들의 반응이 기존 위계질서에 균열을 내기 시작하였고 들뢰즈가 언급한 리좀(Rhizome구근)적 혁명으로서의 함의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조직은 중심과 주변으로 나누어져 줄기와 가지가 구분되는데 리좀(구근) 조직은 상하 위계가 있는 것이 아닌 수평적인 조직이라는 것입니다. 미학적 변화의 측면에서는 방탄과 아미의 관계는 일방향이 아닌 상호작용을 통하여 네트워크를 이루며 의미를 확장하고 변형하는데 저자는 이를 '네트워크-이미지 network-image'로 부르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비틀스의 음악이 1960년대 소련의 철의 장막 안으로 흘러 들어가 일으킨 변화가 훗날 소련의 붕괴로 이어졌다는 전직 스파이 레슬리 우드헤드가 2013년 발표한 <비틀스는 어떻게 크렘린을 뒤흔들었는가: 떠들썩한 혁명의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예시하면서 방탄 현상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많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방탄이 난공불락이라고 여겨지던 미국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메시지의 힘이었다고 합니다. 심화되는 경쟁, 일자리 부족, 정의롭지 않은 부의 분배, 그로 인한 삶의 불안과 우울에 대하여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통하여 보편적인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을 인용하면서 사회는 순종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반항하는 사람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는데 방탄의 메시지는 질 들뢰즈가 말하는 "기존에 파인 홈을 가로지르면서 매끈한 공간으로 만들려는 실천"인 혁명적 생성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서양신화에 나오는 크로노스가 우라노스를 거세하고 제우스는 크로노스를 추방하는 기존 질서와 규범의 해체는 서구에서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반복되는 주제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제는 한국의 서사에서는 희귀한 서사인데 21세기에 들어서자 2013년 장준환 감독의 영화 <화이>, 2017년 tvN의 드라마 <변혁의 사랑>, jtbc의 드라마 <언터처블>에서 나타나듯이 방탄의 메시지는 부정의하고 불공정한 사회의 억압적 질서에 대한 저항과 부정, 즉 사회적 부친 살해라는 메시지의 힘이 공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방탄의 성공요인의 하나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온라인 플랫폼의 상호작용을 살펴보면 방탄과 아미의 관계는 수직적인 위계를 대표하는 미디어 권력과 자본이 스스로 자신의 위계를 붕괴시키는 모순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방탄의 성공이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스타는 더 이상 팬 위에 군림하는 수직적 위계의 맨 위쪽에 있지 않으며 방탄과 아미의 관계는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협력하고 함께 살아가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수평적 판타지가 방탄과 팬덤 사이의 수평적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방탄은 거대 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았고 미디어 권력의 수혜를 입지 않았으며, 소속사가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로 '흙수저 아이돌'이라고 불렸습니다. 하지만 방탄이 물꼬를 튼 사회비판적 저항의 메시지는 팬들의 사랑과 지지를 기반으로 기존의 강력하고 거대한 위계구조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자는 '방탄현상'이 비중심화된 리좀적 체계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즉 수목적 체계는 상하관계가 분명한 구조임에 반하여 리좀적 체계는 거대 자본이나 이와 연계된 미디어 권력 같은 단일한 권력적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미와 방탄은 어느 하나가 중심이 아니라 서로 친구이자 조력자로서 수평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리좀은 식물학의 개념인데 들뢰즈는 이 개념을 수목적 체계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들뢰즈는 "리좀의 어떤 지점이건 다른 어떤 지점과도 연결 접속될 수 있고 또 연결 접속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하나의 점, 하나의 질서를 고정시키는 나무나 뿌리와는 전혀 다르다"라고 <천 개의 고원>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리좀 조직을 통하여 방탄은 한국의 십 대 소녀 팬뿐 아니라 미국의 20대 여성 팬, 30대의 무슬림 팬, 미국 내 흑인 남성 팬과도 연결 접속되는 것입니다. 


방탄 현상의 미학적 측면에서는 먼저 영화와 뮤직비디오의 차이점을 언급하고자 합니다. 영화에는 디제시스 diegesis라는 개념이 있는데 특정한 시공간적 배경에서 인물 중심의 사건들이 인과적이 연쇄로 구성된 서사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허구적 세계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디제시스가 존재하므로 관객들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공감을 일으키고 특정한 세계관과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게 되는데 반하여 뮤직비디오는 음악, 퍼포먼스, 가수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몽타주가 이루어지고 음악의 비트와 리듬에 따라 편집점이 결정되면서 시공간적 배경은 사실성도 일관성도 없다는 차이점이 영화 사이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동일한 가수가 등장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동일성도 연속성도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디지털 상에서 존재하는 방탄 영상은 크게 2로 나누어 첫째 뮤직비디오와 둘째 온라인 설치 영상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후자는 쇼트 필름 short film, 하이라이드 릴 highlight reel, 트레일러 trailer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영상을 말합니다. 방탄의 영상들은 공간 대신 시간 간격을 두고 온라인에 설치되고, 그 영상 단편들의 관계망을 통하여 관객이 의미를 생성하게 된다는 점에서 마치 설치미술과 유사한 측면이 존재합니다. 온라인 설치 영상은 유사한 이미지의 변형과 반복, 이미지의 상징성, 상호 참조적 성격 등과 더불어 방탄 영상의 열린 구조를 가능하게 해주는 특징들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상호 참조적인 열린 구조는 뮤직비디오와 온라인 설치 영상, 한 앨범 전체를 연결하고 나아가 한 앨범을 이전 혹은 이후 앨범들과 연결시키며 이 구조속에서 관객의 참여를 초청하지만 영상들의 상호참조성이 현실화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관객의 현실적 참여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관객은 단순한 수용자를 넘어 그 자체로 방탄 예술 세계의 구성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술 생산자와 수용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질적 영상들의 배치로 이루어진 영상 예술 작품을 네트워크 -이미지라고 정의합니다. 방탄 현상은 기존의 개념으로는 담을 수 없는 수준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들뢰즈가 말하는 새로운 영토를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복제 기술이 등장하면서 예술의 가치가 '의식 가치'에서 '전시가치'로 바뀌었듯이, 모바일 네트워크 기술이 전면화하면서 21세기 예술의 가치는 '전시가치'에서 '공유가치'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유가치를 수행하고 있는 예술형식이 '네트워크-이미지'인 것입니다. 네트워크-이미지란 서로 연결 접속되면서 끊임없이 의미를 생산하는 이질적 동영상들의 열린 '배치'를 의미하며 여기서 배치란 사용자들이 모바일 네트워크 플랫폼에서 공유를 실행함으로써 끊임없이 변형되고 생성되는 다양체로서의 배치를 가리키며 이러한 네트워크-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방탄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네트워크 -이미지에서는 전례 없이 많은 사람들이 참여와 공유를 통해 작품 생산과 현실화의 일원이 되며 여기에는 기존 예술 제도권의 특권적 권위가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예술의 민주화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돈의 제약이나 공간의 제약이 없어야 하는데, 네트워크-이미지에 참여하는 관객은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티켓을 살 필요도 없이 언제 어디서든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예술형식의 출현은 단순한 예술형식의 변화가 아닌 거대한 세계사적 변혁의 표현이라는 근원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존 체제나 질서는 결코 무너지지 않고 영원히 지속될 거대한 벽처럼 보입니다. 벽의 거대함 앞에서 사람들은 무기력과 순응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강고한 현실이 스쳐가는 역사의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희망의 원천인 것입니다. 이 인식은 현실의 권위와 힘을 무력화시키는 출발점입니다. 현실의 권위와 힘이 무력화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삶, 다른 세상을 꿈꾼다면 이 희망은 새로운 현실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지도자를 뽑는 방식을 현 권력자의 첫 부인의 첫아들로 결정하는 것에 익숙한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구성원들의 투표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식은 상상력의 범위 밖에 존재하였을 것입니다. BTS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경로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증명하였습니다. 이러한 성공은 단순히 새로운 아이돌의 등장이 아니라 새로운 구조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걸어가면 길이 된다는 진부한 격언이 BTS를 통하여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을지 그 마지막 결과물이 궁금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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