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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방 Dec 27. 2020

조선왕조 개국공신들의 빛과 그림자

한 인물을 평가하면서 객관성을 유지하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동일한 인물도 시대가 달라지면서 평가가 달라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생각됩니다. 조선의 건국공신 52명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1392년에는 개국공신으로 명예를 얻었지만 역사의 격랑 속에서 그 평가를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더구나 1차 왕자의 난(1398년), 2차 왕자의 난(1400년)을 거치면서 어제의 공신이 오늘의 역적이 되는 일도 많았습니다. 52명의 공신 중에서 사후에 작성되는 졸기에 긍정적인 평가를 남긴 인물은 14명으로 약 1/5에 불과합니다. 그런 의미로 조선 건국공신들의 행보를 살펴보는 것도 조선 개국초의 시대상황을 설명하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의 배향공신을 세우는 일도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합니다. 1926년 순종이 승하하고 1928년 3년상을 마치면서 순종의 배향공신 선정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19명의 종친 세력들이 모여 9명을 선정하였고, 일제의 강력한 추천으로 이완용이 추가되었고 투표가 실시되었습니다. 김병시 6표, 이경직 4표, 송근수 2표, 서정순 2표, 이완용 1표였다고 합니다. 논란 끝에 송근수, 서정순, 이완용이 결정되었지만, 해방이 되면서 이완용의 위패는 쫓겨나고 김병시, 이경직이 추가되어 4명이 배향공신으로 남아있습니다. 공신의 명단은 명단을 만든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재훈 동아대 교수는 개국공신들이 어떠한 인연으로 이성계와 연결되었고 그들이 사후에 어떤 평가를 받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논문을 작성한 바 있습니다. 공신들의 사후 작성되는 졸기(卒記)를 분석한 것입니다. 


첫째, 공신 52명을 이성계와의 인연을 중심으로 분류하여 첫째, 친인척 8명, 둘째, 가신 및 행동대원 18명, 셋째 불우한 문인 11명, 넷째, 현직 공무원 12명, 다섯째 외국인과 외교 관련 3명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들 중 친인척을 보면 5위인 이제는 사위였고, 6위인 이화는 배다른 동생이고 8위 이지란은 의형제고 43위 심효생은 사돈이자 이방원의 과거 합격 최고령 동기였습니다. 이제와 심효생은 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과 함께 죽임을 당했으며, 개국공신 명단에 이성계의 한 씨 부인 아들들이 제외된 것은 신덕왕후 강씨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로 보입니다. 


둘째, 정몽주 암살과 관련된 인물들이  주로 가신과 행동대원 소속인물들이 많이 포함되었습니다. 처음 주동자는 태종 이방원과 정종 이방과, 사위 이제, 동생 이화 4명이었는데, 그 실행을 먼저 이지란에게 부탁했으나 거절당하자 21위 조영규가 맡게 되었습니다. 하수인은 38위 조영무, 40위 이부, 44위 고여 들로서 행동대원으로 활약하였습니다. 뒷수습에는 장사길, 황희석, 이제, 조준, 남은, 배극렴, 김사형 등이 관계하여 개국공신 14명이 참여하였습니다. 이는 정몽주의 제거가 신왕조 건설에 직결되어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참여자라도 조영무는 태종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던 인물로 한나라 곽광과 당나라 위징에 비견되어 그의 사후 태종 이방원은 5일간 조회를 정지하면서 애도를 표현하는 극진한 예우를 받았던 인물이었지만 21위 조영규에 대해서는 졸기에 사실이 적힌 기록만 담담히 담겨있습니다. 이는 태종 13년부터 정몽주에 대한 충신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아무런 평가 없이 기록만을 남긴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44위 고여에 대해서는 그가 공신이 된 것은 정몽주 제거에 참여한 것이 공로로 인정받아서라면서 유독 모든 책임을 고여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는 지시를 내린 태종 이방원의 책임을 모두 고여에게 몰아붙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도로 생각될 여지가 많은 기록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셋째, 졸기와 관련하여 가장 높이 평가되고 있는 인물은 2위 조준입니다. 그에 관해서는 첫째 그의 가계를 소개하면서 귀한 집안 출신임을 강조하였고(浚家貴顯), 둘째 효성이 지극함을 칭송하면서(忠孝自許) 셋째, 고려 때 임관한 경력을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넷째, 태조와의 깊은 관계를 소개하고 다섯째 이방석이 세자가 될 때 태종 이방원을 추천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使書芳蕃名 浚伏地不肯書). 여섯째 명나라에의 출병이 중지된 것이 그의 뜻이라고 말하면서 일곱째 고려말에 이방원이 군주의 기상이 있음을 보고 <대학연의>를 추천하였다고 적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를 평가하며 강명정대(剛明正大), 과감불의(果敢不疑), 호선질악(好善嫉惡) 등의 표현으로 인품을 극찬하고 있습니다. 

넷째 반대로 폄하하고 있는 인물의 대표는 정도전입니다. 조준의 졸기가 2,000자 임에 반해 정도전은 800자 정도에 불과하지만, 정도전은 군사(軍事), 법전(法典), 음악, 역사, 과거제도, 지방제도, 축성, 이단 배척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그의 업적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도전을 폄하하려고 하여도 그를 빼고서는 건국 초의 역사 서술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고, 그를 성품이 총민하였고, 어려서 학문을 좋아하여 군서(群書)를 박람하고 의론이 정연하였다는 찬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판에 들어서면서 모해종친(謀害宗親)하였고 국량이 편협하고 의심이 많고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은 반드시 해치고 감정이 있으면 보복하고야 마는 사람이며, 배은망덕하고 자기를 가르친 스승인 이색, 정몽주, 이숭인 등을 배반한 의리부동의 인물이며 그의 피에 노비(奴婢)의 피가 흐른다는 극언까지 하고 있습니다. 


한때 개국공신에 올랐던 52명 중 10명은 졸기가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위상이 추락하였고 14명은 담담하게 기록만 남아있는 편이며 14명은 칭송하는 평가를 14명은 비판적인 평가를 받은 졸기를 남기고 있는 것을 보면 같은 공신이라고 할지라도 그에 대한 평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끝으로 연안 차 씨와 개국공신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가문은 개경의 왕 씨이지만 다음이 연안 차 씨 가문이라고 합니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할 때 출병하면서 차원부에게 찾아가서 자문을 구했고, 그때 어떤 명분으로 반대해야 할지를 가르쳐준 인물이 차원부라고 합니다. 1398년 이성계가 차원부의 꿈을 꾸고 석 달 동안 다섯 번의 사신을 차원부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이성계와 상담을 마치고 차원부는 떠났지만, 그 직후 이방원과 하륜에 의하여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차원부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차원부는 정몽주와 정종 이방과의 부인과 친인척이라는 이유가 표면적으로 있었으나 그보다는 차원부가 작성한 연안 차씨 족보 때문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는 주장입니다. 이 족보에는 개국공신 4위인 정도전이 차씨 집안의 사위인 우연의 첩이 낳은 딸이 나은 아들이고 21위 조영규는 차원부의 조카의 이복누이의 아들이고 46위 함부림은 차원부의 이복 남동생의 사위이고, 공신은 아니지만 이방원의 참모인 하륜은 차씨 집안 사위인 강승유의 첩의 딸의 아들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어서 개국공신들에게는 숨기고 싶은 사실이 자세하게 적혀있다는 것입니다. 하륜은 자객을 보내 차씨 집안 일족을 죽이고 해주 신광사에 보관된 판본까지 없애버렸다고 합니다. 


차원부(1320~1398)의 죽음에 가장 분노한 사람은 이성계였고 이방원 세력은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려는 수습책을 동원하였고 세종, 문종을 거쳐 단종 때 <설원기(雪寃記)>라는 기록이 편찬되게 되었는데, 박팽년이 짓고, 성삼문, 최항, 신숙주, 이석형이 주석을 달았으며 48명이 지은 72시의 추모시가 첨부되었다고 합니다. 1998년 한글판으로 번역본이 출판되었다고 합니다. 이방원이 설원기를 지으라고 한 목적은 서얼인 하륜이 적자인 차원부를 죽인 것이 잘못인 것처럼 서자인 이방석이 왕이 되려 한 것은 잘못이고 이방원은 정당하다는 논리를 주장하려고 했다는 것이 그 이유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적자, 서자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세상이 되어서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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