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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방 Aug 29. 2021

스티브 잡스는 누구였나?

스티브 잡스의 1,2,3,4 과정

스티브 잡스는 실리콘 밸리에서 활동한 미국 IT 혁명가들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어떤 장점이 그를 성공으로 인도했을까요? 그는 어떤 행운의 인도를 받았기에 성공의 사닥다리를 오를 수 있었을까요? 탁월했던 그의 장점은 때로 그에게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창업자였으며 위기에 빠진 애플을 다시 구원한 인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많은 인간적인 결함 속에서도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의의 주도권을 놓으려 하지 않았던 인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잡스의 개성이자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니엘 이치비아는 <스티브 잡스의 네 번의 삶>에서 잡스의 삶을 4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단계는 1975년 애플을 창업하기 전까지의 삶, 두 번째는 애플을 창업해서 자신이 영입한 존 스컬리에 의하여 쫓겨나기 까지, 세 번째는 와신상담하면서 애플로 복귀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네 번째 화려한 애플로의 귀환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960년대 후반 잡스는 9학년이 되면서 홈스테드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학생수는 대략 2000명 정도였습니다. 잡스는 12학년 선배 학생들 몇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잡스가 성장하던 미국 서부는 컴퓨터광의 세계와 히피의 세계가 겹치는 시기였습니다. 잡스는 고학년 친구들과 수학과 과학, 전자공학 그리고 LSD와 반문화 운동 전반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였습니다. 잡스는 저녁 시간에 종종 동네 근처의 엔지니어인 래리 링의 차고를 방문하였습니다. 링을 통하여 잡스는 전자기기들의 작동원리를 쉽게 이해하게 되었는데, 랭은 화요일 저녁마다 학생 15명 정도는 모이는 HP 탐구자 클럽에 잡스를 합류시켰습니다. 그곳에서 잡스는 HP가 개발하는 작은 컴퓨터들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의  각자의 역할분담에서 잡스는 주파수 계수기를 만들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제작과정에는  HP에서 만드는 부품 몇 개가 필요했습니다. 잡스는 주저하지 않고 전화기를 들고 HP의 CEO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상대가 전화를 받았고 그는 부품을 구해 줬을 뿐 아니라 주파기 계수기를 만드는 공장의 일자리도 제공하였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동안 잡스는 그곳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동료 직원들 중에는 CEO에게 전화를 걸어 일자리를 얻어낸 잡스를 아니꼽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잡스는 작업장 위층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에게 귀염을 받았고 그들에게서 아침 10시면 도넛과 커피를 마시며 함께 어울리며 일을 배워나갔습니다.


1974년 2월 잡스는 리드대학을 자퇴하고 한동안 시간을 보낸 후 구인광고를 찾아서 당시 인기 있던 게임회사 아타리사를 찾아갔습니다. 비디오 게임 회사의 창업자 부시넬은 어느 날 직원의 보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웬 히피 녀석이 샌들을 신고 아타리사 로비에 들어와 일자리를 달라고 생떼를 쓰면서 채용해 줄 때까지 나가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원은 '경찰을 부를까요, 아니면 들어오게 할까요?'하고 사장에게 물었습니다. 부시넬은 한번 데려와 보라고 말했고 면담 후에 돈 랭이라는 엔지니어와 함께 일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잡스는 머리가 매우 좋고 열정적이며 기술에 대한 흥미가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랭은 불평했다. 냄새가 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랭뿐만이 아니라 많은 직원들이 잡스를 내보내길 원했지만 부시넬은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시간의 야간 근무로 타협점을 찾았습니다. 얼마 후 아타리사의 게임기가 독일의 뮌헨에서 문제가 발생하였고 잡스는 그즈음 아타리 사람들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인도에 있는 구루를 만나러 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회사에서는 타협점을 찾아 뮌헨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고 회사는 이에 대한 수고비를 지불하기로 하였습니다. 얼마 후 독일의 경영자들은 아타리사에 전화를 걸어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잡스가 부랑자 차림에 냄새도 나고 무례하기까지 하다고 불평하였습니다. 아타리사는 질문 하였습니다. '그 친구가 문제는 해결했나요?' 그러자 독일에서는 그렇다고 대답하였고 사태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잡스도 역시 불만을 표시하였는데,. 그들이 끼니마다 고기와 감자를 먹이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잡스는 독일어에는 '채식주의자'라는 단어도 없다고 불평하였습니다.


1982년 잡스가 창업한 애플은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잡스는 회사를 이끌고 싶었지만 아직 자신이 그 자리를 맡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간부들도 잡스가 애플의 사장을 맡기에는 아직 너무 거칠고 미숙하다고 말했습니다. 처음 애플은 IBM의 PC의 주역이었던 돈 에스트리지에게 ceo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헤드헌터는 펩시콜라의 사장인 존 스컬리를 추천하였습니다. 잡스는 애플 본사로 스컬리를 초청하여 애플을 소개하였습니다. 1983년 1월 잡스가 뉴욕에서 다시 스컬리를 만나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열정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다음에는 스컬리의 저택을 방문하였고, 또 애플 본사로 초청하고 또 3월에는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스컬리가 연봉 100만 달러에 입사 보너스 100만 달러, 퇴직금 100만 달러를 제안하자 잡스는 동의하였습니다. 아직 마음이 흔들리던 스컬리는 마지막으로 한 차례 더 거절하면서 두 사람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애플의 고문처럼 때때로 조언을 해 주는 역할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때 잡스는 무겁고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도발적인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붙잡고 싶습니까?" 스컬리는 잡스를 평하여 "그는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걸 이뤄 내는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치밀하게 가늠해 본 뒤에 그를 설득하려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지요"라고 평가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1985년 5월 28일 갈등관계였던 스컬리는 이사회의 힘을 빌려서 잡스를 추방하였습니다. 추방된 잡스는 새로이 넥스트를 창업하였습니다. 넥스트 직원회의에서의 잡스의 모습을 조 노세라는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그가 분위기를 장악하는 한 가지 방법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의자 위에서 무릎을 꿇었다가 잠시 후에 보면 축 늘어진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는 어느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뒤에 있는 칠판에 무언가를 빠르게 갈겨쓴다. 노세라는 잡스가 '일부러 눈치 없이 구는 태도를 보인다고 보았습니다. 잡스는 상대방을 침묵시키고 상대에게 모욕감을 주고 상대보다 자신이 더 똑똑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준비된 행동을 한다고 잡스를 해석하였습니다. 


1982년 루카스 필름은 회사가 매물로 나온 상태였지만 매각 상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2월에 잡스는 1000만 달러에 루카스 필름을 인수하고 픽사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훗날 잡스는 1986년 픽사에 얼마나 돈이 들어갈지 알았다면 픽사를 매입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며 후회하였습니다. 1991년 '토이 스토리' 제작 전까지 픽사 직원은 열 명에 불과하였습니다. 잡스는 잊혀가는 존재였습니다. 1995년 8월 사람들은 잡스도 한물갔다고 평가했습니다. 씨넷에 실린 기사에서는 잡스를 이렇게 평가하였습니다.

"잡스는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기자들은 넥스트에 대해 묻기보다는 애플에서 보냈던 시간에 대해 질문했다 잡스는 점점 인터뷰에 응하지도 않았다. 잡스는 애플에 대해서 더는 말하기 싫어했다."

하지만 몇 달 후 1995년 11월 19일에 개봉된 '토이 스토리는' 블록버스터가 되었고 첫 주말에만 3,9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습니다. 잡스는 치밀한 과정을 거쳐 픽사를 중권 시장에 상장하였고 주가는 22달러에서 49달러로 폭등했습니다 픽사는 하루아침에 1억 5200만 달러를 끌어모으는 대박을 이루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다시 잡지의 전면에 등장하였고 1995년 12월 19일 픽사의 토이 스토리의 수입은 1억 달러를 넘어선 반면 스컬리가 이끌던 애플은 곧 업계에서 사라질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1997년 애플로 복귀한 잡스는 광고 문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무척 까다롭게 굴었습니다. 젊은 카피라이트가 만든 초안을 보고 잡스는 불같이 화를 내었습니다. "이걸 대체 어디다 쓰라는 거야! 정말 한심하군!" 잡스를 처음 본 카피라이트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고 한 마디로 입 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그 카피라이터는 다시는 애플을 찾아가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잡스는 60초 광고를 한 편의 시와도 같은 문구로 결정하였습니다.


"미친 자들을 위해 축배를, 부적응자들, 반항아들, 사고뭉치들, 네모난 구멍에 박힌 둥근 말뚝 같은 이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은 규칙을 싫어합니다. 또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당신은 그들의 말을 인용할 수도 있고,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또는 그들을 찬양하거나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할 수 없는 한 가지는 그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세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류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천재로 봅니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미친 자들 , 바로 그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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