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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방 Dec 20. 2021

눈 떠보니 선진국

눈을 떠보니 선진국이 된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이제 다른 나라들에서 인정을 해주니 자랑스럽지만 우리 스스로 선진국이라고 큰 소리로 외치자니 조금은 어색한 느낌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IT 전문가인 저자 박태웅은 <눈 떠보니 선진국> 책에서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기 위한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BTS와 봉준호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상징입니다. 2020년 OECD는 코로나 19의 와중에서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1%로 1위를 달성할 것을 예측하면서 같은 기간 미국은 -3.7%, 일본 -5.3%, 독일 -5.5%과 비교 예측하였습니다. 당시 오바마를 비롯한 선진국의 많은 지도자들이 한국을 본받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진정 우리가 선진국이라면 우리의 시각과 자세는 과거 후발 추격 국이었던 시절과는 달라져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마치 사춘기까지는 성장을 확인하기 위하여 아침저녁으로 키높이를 재지만 서른이 넘어서면 허리둘레를 재고, 혈당과 혈압을 재다가, 노년이 되어 요양병원에 가서는 최대 산소 섭취 능력을 매일매일 재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시각과 자세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야야 하는 것일까요? 


일본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요시모토 흥업에는 많은 개그맨과 개그우먼 등 희극인들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요시모토 흥업은 아직도 소속 연예인과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구두계약이 원칙입니다. 그러니 보수를 제대로 지급할 리가 없습니다. 결국 수입이 궁한 소속 연예인들이 다단계 판매를 하는 범죄 집단 행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걸려서 전국적인 스캔들을 만들기도 합니다. 일본 연예계는 뮤즈, 쟈니스, 요시모토, 호리프로 등 몇 개의 대형 기획사가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아이돌들이 수십 년째 똑같은 모습 똑같은 취향으로 움직이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나이 든 기획사 사장 노인네 몇 명의 취향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때 세계적인 빌보드 차트를 넘보던 일본이 지금은 내수시장 전용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아시아 시대는 K팝처럼 온다>의 저자 정호재 씨는 JYP의 걸그룹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미나, 사나, 모모가 2013년에 이미 한국으로 건너왔다는 게 대단한 사건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녀들의 부모님들과 당사자들이 일본보다는 한국의 시스템을 크게 신뢰하였다는 것입니다. 중국이나 일본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서 개인은 압도적인 갑 앞에 놓인 을의 신세가 됩니다. 기업과 정부의 힘에 개인은 저항하기 어렵고 자연스레 연예계는 권력자들의 놀이터로 전락합니다. 2009년의 장자연 사건을 기억하면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런 정글의 법칙이 작용하는 잔혹한 놀이터에 10대 후반의 소년소녀를 자녀로 둔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 변화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세계 최고의 로봇 강국입니다. 일본의 화낙은 산업용 로봇 시장의 세계 점유율이 20%에 달하고 있습니다. 테슬라에서 사용하는 로봇팔의 대부분이 화낙 제품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한 로봇 강국 일본에서 2년 전에 자동 날인 로봇을 개발하였습니다. 자동날인 로봇은 소형 로봇팔 두 대와 문서 인식용 스캔 카메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팔이 서류를 넘기면 카메라가 도장을 찍는 난이 있는지 머신러닝을 이용하여 자동으로 구별하여 다른 팔이 인감도장을 집어 인주를 묻히고 찍어야 할 곳에 정확하게 도장을 찍는 기계입니다. 2020년 일본에서 1천 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조사를 실시한 결과 재택근무 시 불편한 것 2위가 '서류에 사인 및 날인을 받지 못하는 점(28%)'이었습니다. 직장인의 1/3 이상이 단순히 도장을 찍기 위하여 출근한 적이 있다는 조사도 나왔습니다. 인공지능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소프트 뱅크의 손정의 회장도 최근 인터뷰에서 인감을 찍어야 하는 일이 있어 가끔씩 사무실에 나갈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일본 국회에는 도장 문화를 존중하는 '일본 인장 제도문화를 지키는 의원연맹'이 있고 이 연맹의 회장인 다케모토 나오카즈 의원이 일본의 과학기술 IT 담당 장관이 되었는데 본인 스스로 자신이 컴맹이라고 자복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는 취임하면서 '행정절차의 디지털화와 함께 전통적인 도장 문화의 양립'을 목표로 한다고 하였다가 비난을 받고 도장 문화 연맹 회장직을 사임한 바 있습니다 일본 사회의 경직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로 독점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국도 변에 하나밖에 없는 휴게소라든가 특정회사의 공급을 독점하는 재벌 자녀들이 차린 비공개 회사 같은 사례입니다. 마치  중세 교황청에서 팔았던 면죄부도 경로 독점을 설명해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미디어들이 등장하고 발전 속도가 눈부시지만 지금 언론사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의 관습에 따라 신입 기자가 들어오면 경찰서부터 배치합니다. 과거 살인과 방화, 강도가 가장 큰 뉴스였던 시절의 관행입니다 경제기획원, 한국은행, 장관의 말 한마디를 혼자 듣고 특종이라고 하던 시절의 관행이 아직 남아있다 보니 기레기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기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또 미국은 판결 이후 24시간 내에 온라인 사이트에 판결문을 게재하고 영국, 네덜란드는  1주일 내에 공개하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판결문 공개율이 0.3%에 불과합니다. 판결문을 공개하면 판결 간의 모순을 없애고 양형의 형평성을 높일 수 있어서 사법부의 신뢰도도 높일 수 있고 예비 법조인들이 공부하기에도 아주 좋지만 변호사들의 93.7%가 판결문 공개를 지지하는데 반하여 판사의 20.6%만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판사들의 대부분이 '개인정보 보호'를 근거로 반대하는데  이미 공개하고 있는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하여 생각해 보야야 할 것입니다. 


K 팝이 전 세계를 흔들고 있지만 초라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가요계를 조이고 있던 사전심의 제도를 폐지하는 데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공이 아주 큽니다. 정태춘 선생은 78년 <시인의 마을>로 데뷔했는데 데뷔 음반이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로 엉뚱하게 바뀐 경험을 하였습니다. 이에 정태춘 선생은 큰 충격을 받고 90년도에 직설적인 사회비판을 담은 <아! 대한민국>을 고의로 불법 발매하였고 이어서 부인과 함께 93년에 흥사단 강단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사전심의를 받지 않고 새 음반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발매를 개시하였습니다. 사전심의 조항의 위헌신청의 분위기를 조성할 목적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용기 있는 시작은 마침내 결과로 나타나 BTS가 한국어로 부른 노래가 세계 1위를 찍고 전 세계 걸그룹 1위는 블랙핑크라고 공인되는 꿈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영화계에서도 96년도에 영화의 사전심의가 폐지되고 사전 검열이 폐지되고 공연윤리위원회도 사라지면서 1996년부터 2006년 사이에 한국영화는 느닷없는 황금기를 맞이하였습니다. 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97년 <넘버 3> <접속> <초록물고기>에서 2006년 <괴물>까지 대작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고 이들 극영화 15편 중에서 무려 8편이 감독 데뷔작이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변화의 원인은 무엇 때문인가요? 


스티브 잡스가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의 사옥을 설계할 때 의도적으로 누구나 안 갈 도리가 없는 화장실을 픽사 사옥 전체에 단 한 곳만 두려고 하였습니다. '우연한 만남과 임의적인 협력을 촉진하라'는 취지였습니다. ㄱ그 결과 <토이 스토리> <월-E> <인사이드 아웃> <소울>과 같은 불후의 명작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식은 한데 모일수록 증폭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우발적인 만남을 통해 교류하는 기회를 많이 가질수록 더 큰 가치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을 '네트위크 효과'라고 부릅니다. 개도국 중진국에서 흔히 '훌륭히 작동하는 대도시'가 성장에 결정적인 요인을 이런 이유에서 찾고 있습니다. 실리콘 밸리의 땅값이 왜 그토록 비싼지도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트위터 같이 전 세계에서 원격근무를 하는데 필요한 모든 기술력을 갖춘 첨단 IT회사들이 굳이 미국에서도 가장 땅값이 비싼 곳에 오글오글 모여 있는 것도 바로 이 우발적인 만남의 네트워크 효과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신뢰자본을 제대로 쓰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커피숍에 노트북을 둔 채로 화장실을 다녀오고, 지하철 선반에 가방을 두고 잠을 자는 모습을 보고 놀라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역에 검표원이 없고 개찰구가 열려 있는 것이 신뢰자본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합니다.  검표를 하지 않는 대신 무임승차를 하다 걸리면 10배에서 30배의 벌금을 물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2가지 원인을 꼽는다면 하나는 우리나라에 이제 신뢰자본이 두텁게 쌓이기 시작했고 또 하나는 IT 기술의 덕분이라고 합니다.. 이런 신뢰자본의 장점을 서울역에서만 사용하지 말고 한국사회의 제도와 운영에도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민간에 연구비를 지원하는데 연구 성공률이 매년 90% 이상이라고 합니다. 이는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하는 사업은 첫째 산업 발전에 중요한데 우리가 아직 초보일 때, 둘째, 성공확률이 낮아서 민간이 투자하기 어려울 때, 셋째 연구비가 워낙 많이 들어가서 민간기업이 엄두가 나지 않을 사업이어야 하는데 성공률이 너무 높다는 것입니다. 믿을 만한 사람과 팀을 택한 다음에 그들에게 재량권을 주어서 연구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또 서울역에서 무임승차를 적발하면 징계를 하여야 하는데 우리나라 경제사범 재판 통계를 보면 범행액수가 300억 원이 넘었던 11명 전원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직위가 낮을수록 더 많이 실형을 살았다는 기록이 나와있습니다. 


이선호 씨가 300KG 철판에 깔려 죽은 사례에서 보듯이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OECD 최상위입니다. 오스트리아는 노동자 사망 시 고용주에게 최대 징역 25년을 내립니다. 영국은 원청 하청 구분 없이 안전조치 미흡으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기업의 범죄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법'을 갖고 있습니다. 매출액에 비례하여 벌금을 내고 위반 정도가 심하면 상한 없는  징벌적 벌금을 물립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산재사고의 절대다수가 집행유예 아니면 벌금형이고 벌금형의 경우 평균액이 법인 448만 원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에서는 기업들이 안전장치를 갖추고 신호수를 두는 행위를 하는 대신에 가벼운 벌금으로 때우도록 유도하는 결과를 낳는 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이 쇠락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습니다. 애플의 경우 앱스토어가 문을 연지 한 달 만에 3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애플은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는 대신 건당 30%의 수수료만을 챙깁니다. 그 결과 미국의 한 대학생은 개발한 퍼즐 게임으로 매일 2천 달러를 벌기도 하고, 게임업체 세가는 9.99달러짜리 게임을 20일 동안 230만 개나 팔아, 간단하게 300만 달러를 챙겼고 페이스북이 올려놓은 페이스북용 소프트웨어는 다운로드 횟수 1백만 건을 돌파하였습니다. 반면에 한국의 통신회사들은 굴종에 가까운 일방적 계약을 당연히 여기고 정부를 포함하여 갑의 위치에 있는 기업들은 모든 소프트웨어를 단순한 하청으로 만들어버리는 마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사회가 10년 뒤 변호사와 성형외과 의사만 있는 나라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생태계를 복원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전체 2500만여 기업 가운데 78%가 1인 기업으로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청조형 1인 기업' 창업 붐이 불었던 것처럼 한국의 생태계도 공생하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도록 고민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아내인 조선희 씨의 <상식의 재구성- 한국인이라는 이 신나고 괴로운 신분>을 함께 소개하면서 한국 현대사회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저자가 제시한 한국 사회에 대한 충언들이 빛을 발하여 앞으로 시행착오를 줄이고 명실상부하게 대한민국이 경제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서 선진사회가 될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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