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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방 Sep 05. 2022

황제는 선, 환관은 악한 존재인가?

 이번에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삼국지의 이야기를 거시적인 흐름에서 한번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익숙한 삼국지 이야기에서 나무에만 집중하다 보니 전체 숲의 모양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현실에서는 전투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전술도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전략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략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들게 되는 첫 번째 궁금증은 나쁜 환관들의 득세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십상시라는 단어는 최고 권력자의 눈을 어둡게 하는 나쁜 이미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럼 왜 삼국지에서는, 그리고 중국에서는 환관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나쁜 행동을 하는 일들이 역대 왕조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났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왜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기도 한 환관들이 황제의 총애를 받고 이러한 환관들의 비리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강직한 신하들은 불행한 최후를 맞는 역사가 반복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황제들의 권력이 생각보다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후한의 황제들은 전한의 황제들보다 힘이 더 약했습니다. 먼저 너무 어린 나이에 황제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후한 마지막 황제인 헌제는 9살, 소제는 13세, 영제는 12세에 황제에 올랐습니다. 특히 생후 100일 만인 서기 106년에 황제에 오른 후한의 상제는 중국 역사상 최연소 황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린 황제가 즉위한 경우에는 어린 황제의 어머니인 태후가 실권을 잡고 주로 외가 쪽의 인물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리기만 했던 황제가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권력을 되찾고 싶은 욕망이 생기게 되면 위험한 상황이 시작됩니다. 황제는 뜻에 맞는 관리들과 함께 이 위험한 작전을 시도하고 싶겠지만 조정 관리들은 자신과 후손의 안전, 그리고 다른 관리들과의 정치적 관계까지 고려하다 보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처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조정의 관리들은 대체로 명문가의 후손들이고 교육 수준도 높고 선발 구조도 환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체계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권력을 가지지 못한 황제가 과감한 시도를 할 경우 어린 시절부터 가깝게 지낸 환관들과 함께 작전을 세우게 마련입니다.      

 왕린옌은 진화경제학적인 관점으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손이 없는 환관은 사후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에 신경을 쓰지 않고, 이 때문에 필사적으로 권력을 탐하고, 권력을 얻은 후에는 백성을 수탈하는 행동으로 연결되기 쉬어진다는 것입니다. 반면 황제는 특별한 추가 비용 없이 환관을 자신의 옆에 묶어둘 수 있게 됩니다. 천자가 바뀌면 아래 신하도 바뀌던 시대에 황제와 운명을 같이하는 환관으로서는 현재의 황제 말고는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환관은 어쩌면 권력을 잡지 못한 황제의 마지막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15살에 황제에 즉위한 삼국지의 환제는 28살이 되도록 허수아비에 불과하였고 황태후의 오빠인 양기가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양기의 위세에 눌린 28세의 환제는 화장실에서 환관 당형을 불러 비밀 모의를 하였습니다. 환관들 중에 누가 양기와 원한이 있느냐? 당형은 자기 말고도 선초 등 4명의 이름을 댓습니다. 환제는 선초를 불러 양기를 제거할 방법을 물었습니다. 드디어 행동에 나선 환제는 친히 어전에 올라 작전을 지휘하였습니다. 상서령을 시켜 궁궐을 지키도록 하고 근위군을 시켜 양기의 저택을 포위하였습니다. 결국 양기 부부는 자살을 하였고 양 씨 가문은 전부 참수되었습니다. 양기의 재산은 모두 몰수되었는데 국가 세금의 절반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고 합니다. 양기와 관련 있는 관리 300여 명은 파면을 당하였고 친위쿠데타에 성공한 환제는 명실상부하게 황제의 권력을 되찾고 공을 세운 환관 5명을 제후로 봉하였습니다. 

 양기는 순제 때 누이동생 양날이 황후가 되면서 아버지 양상의 뒤를 이어 대장군이 되었습니다. 순제가 붕어하고 2살의 어린 충제가 황제로 즉위하였습니다. 충제가 4개월 만에 죽자 태위였던 이고는 연장자를 즉위시킬 것을 건의하였으나 양기는 자신의 의도대로 8살의 질제를 즉위시켰습니다. 양기가 권력을 장악하고 어린 질제가 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자 양기는 질제를 독살하고 15세의 환제를 즉위시켰습니다. 이어서 반대파인 이고를 해임시킨 다음 곧 살해하였습니다. 환제 초기 시절 양기는 물론 부인 손수의 일족도 권세를 휘둘렀고 환제가 권력을 되찾고 나자 결국 함께 자살하였습니다.      

 환제의 친위 쿠데타에 성공하여 권력을 잡은 환관들은 이제 부패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비난하는 인물들이 등장하자 환관들은 환제를 충동하여 자신들을 공격하는 청류당을 제거하는 ‘당고의 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환관들은 청류당의 이응 등 2백 여 명을 붙잡아 재판을 하였는데 청류당은 용감하게 환관의 죄악을 고발하는 법정진술을 하였습니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환관들은 강직한 외척 두무가 환관들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는 것을 계기로 청류당 인물들을 지방으로 돌려보내는 선에서 상황을 마무리하고자 청류당에 비교적 가벼운 금고 처분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환제가 죽고 12살의 어린 나이의 영제가 즉위하고 두태후가 즉위하면서 외척인 두무가 대장군이 되어 실권을 장악하면서 그동안 낙향했던 청류당의 인물들을 다시 등용하고 환관들을 제거하려고 하자 환관들은 목숨을 걸고 이에 반격을 가하면서 피바람이 일었습니다. 두무 대장군은 자살하고 100여 명이 죽임을 당하고 수백 명의 당인들이 처벌을 당하면서 유교 국가을 표방하는 한나라에서 청류당이 해체되는 사건인 당고의 화가 169년에 일어납니다. 당고의 화가 일어난 지 15년 후인 184년에는 한나라의 근본을 뒤흔드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고 189년에는 13세의 소제가 황제가 되고 4개월 후에는 9살의 마지막 황제 헌제가 즉위하면서 한나라 제국은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역사서의 기록을 보면 유학자들은 환관만 제거하면 조정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것처럼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어린 황제가 즉위하면서 외척들이 권력을 잡고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철이 든 황제가 환관들과 힘을 합쳐서 권력을 되찾고 친위 쿠데타의 공신들인 환관들의 부정부패로 나라가 기울어져가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황제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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