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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방 Jul 11. 2023

<제11화> 협천자 조조

조조는 순욱이 건의한 헌제를 영접해야 한다는 목표에는 동의했지만 그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장안에서 낙양까지 풍찬노숙하며 고생한 무리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조조와 측근들은 그 방법을 찾아보았다.    

 

조조는 최측근인 조홍을 낙양으로 파견하여 헌제를 영접하려 했지만 국구 동승은 이를 방해하였습니다. 헌제가 조조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도록 요충지를 막아서 조홍의 접근을 막은 것입니다. 조조의 모사 동소는 헌제의 주변 인물 가운데 양봉의 사정을 파악하고 그 빈틈을 노리고 조조 명의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나와 양봉 장군은 서로 존경해마지않고 있소이다. 장군이 어려움 속에서 천자를 구하여 낙양으로 호송한 공훈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있소이다. 황상의 평안이 무엇보다 중요하니 우리가 함께 노력하여야 할 것인데 지금 나에게는 군령이 있고, 양봉 장군에게는 병마가 있으나 우리 함께 도우며 생사를 같이하고 화복을 나누도록 하십시다.”     


조조가 자신을 인정해 준 것에 기분이 우쭐해진 양봉은 여러 장수들과 연명으로 헌제에게 표문을 올려 조조를 진동장군으로 임명하고 아비 조숭의 작위인 비정후를 계승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양봉에 보낸 편지가 효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헌제의 국구인 동승과의 관계도 개선되었습니다. 한섬이 그동안 황제 호송에 공을 세웠다고 나서면서 국구인 동승과 사이가 틀어진 것입니다. 한섬과 갈등이 생기자 동승은 조조에게 사람을 보내 낙양으로 올 것을 청하였고, 명분을 잡은 조조는 대군을 이끌고 와서 동승이 원하는 대로 한섬과 양봉의 잘못을 헌제에게 상주하며 그 처벌을 주장하였습니다. 헌제는 그간의 공적을 감안하여 잘잘못을 따지지 않도록 하면서 조조를 사례교위로 임명하고 상서 업무를 맡기었습니다. 조조는 동승 등 13명을 열후에 봉할 것을 주청 하며 그들이 어가를 호위한 것을 포상할 것을 건의하였습니다. 조조가 헌제를 모시려는 1단계 작전이 무리 없게 성공하였고, 2단계로 헌제를 자신의 근거지인 허현으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하였습니다. 

     

조조는 동소를 불러 자문을 구하였습니다. 동소는 말하기를 

“천자의 수레를 허창으로 행차시키는 방법이 묘책이나 아직 황제께서 낙양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옮긴다면 분명 민심이 좋지 않을 것이나 무릇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해야만 평범치 않은 공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원컨대 장군께서는 그 이익이 많은 것을 헤아려 주십시오.”      

조조는 동소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양봉이 반대할 것을 염려하였다. 동소는 사전에 조조의 명의로 양봉에게 편지를 보낸 것을 고하였습니다. 

“주공께서 진동장군 비정후가 되신 것은 양봉이 표문을 상주한 덕분입니다. 그러니 먼저 사자를 보내 감사를 표하시고 낙양에 식량이 없으니 잠시 황제를 노양으로 옮기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십시오. 노양은 허연에 가깝고 교통이 편리합니다. 양봉은 용맹하나 지모가 없으니 순조롭게 일이 진행될 것입니다.”      

조조는 동소의 건의에 따라 행하였습니다. 양봉에게 사자를 보내고 헌제를 허현으로 옮기고 허현을 허도로 개칭하였습니다. 늦게나마 이상한 기미를 눈치챈 양봉이 출병하였으나 헌제가 허도에 허현에 도착하자 조조는 양봉을 공격하였습니다. 양봉은 할 수 없이 원술에게 도주하였고 양봉이 다스리던 지역은 조조가 차지하였습니다.           


진수 삼국지 위지에서 동탁, 원소, 원술, 유표 등 황제가 되려고 했던 군웅 4명을 모아 한 편으로 묶었습니다. 동탁은 황제가 되려다 여포에게 죽었고, 원소는 하진이 세운 소제를 폐하고 동탁이 옹립한 헌제를 인정할 수 없었으므로 자신과 가까운 유우를 황제로 옹립하려 하였으나 유우가 흉노에게로 도주하겠다고 까지 하며 거부하자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주부 경포를 시켜 자신을 황제로 추대하도록 시켰으나 여론이 나쁘자 경포를 죽여 사태를 수습한 적이 있었습니다. 원술은 옥세를 가진 것을 기회로 197년 오행설에 따른다며 황제를 자칭하며 국호를 중(仲)이라 하고 근거지인 수춘을 구강군에서 회남윤으로 고쳤으나 조조에게 패하고 원소에게 가려다 유비에게 패하면서 수춘 80리 떨어진 강정에서 죽었습니다. 동탁에 의하여 형주목에 임명된 유표는 10만의 갑병을 거느리자 황제처럼 행동했습니다. 교외에서 천자처럼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렸고 복식이나 거처, 기물 등은 모두 황제의 것을 모방했습니다. 유 씨 혈통을 가진 황제의 정통성이 희미해지면서 각 군벌이 가진 힘이 곧 정의가 되는 난세가 확실해진 것입니다.      


조조는 헌제를 허도로 영접한 다음 명분과 체계를 잡게 되면서 조정의 관직에 맞는 인재가 무엇보다 필요해졌습니다. 조조는 상서령 순욱에게 인재 선발을 맡겼습니다. 순욱의 조카 순유를 보고 “순유는 정말로 심상치 않은 인물이다. 그와 대사를 상의할 수 있게 되었으나 천하에 무슨 우환이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순유는 조정에서 황문시랑을 지냈으나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숙부 순욱과 함께 조조에게 의탁하였습니다. 조조는 순유에게 행군교수의 직을 내렸습니다. 순욱이 연주에 현자가 한 사람 있다고 천거했습니다. 자는 중덕이던 정욱이었습니다. 조조는 시골로 사람을 보내 정욱의 행방을 조사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정욱이 산속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조조는 정욱을 공경히 청하였습니다. 정욱이 오면서 곽가를 추천하였습니다. 곽가를 추천하며 “이렇게 뛰어난 인재가 있는데 어찌하여 그물을 던져 잡지 않으십니까?” 순욱은 조조의 명의로 곽가를 초청하였습니다. 곽가가 광무제의 직계자손인 유화를 추천하자 조조는 유화를 초빙하였고 유화는 다시 산양 사람인 만총을 추천하였고 무성 사람인 여건을 추천하였습니다. 만총과 여건은 진류 사람 모개를 추천하였습니다.      


조조는 인재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장수 중에서 장료는 여포의 부장이었고, 장합은 원소의 부장, 서황은 양봉의 부장이었습니다. 순욱과 곽가도 원소의 부하였었으며 가후는 장수의 수하였습니다. 조조는 원소의 심복인 심배도 곁에 두려고 하였으나 심배는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조조는 능력 있는 사람이면 과거의 행적을 묻지 않았습니다. 화흠, 왕랑, 우번 등은 손책과 손권의 부하이거나 손 씨 가문의 통제 하에 있었으나 조조는 헌제의 명의를 빌려서 그들을 징집하였습니다. 조조는 요동에 피난하고 있던 병원, 관녕, 양주에 피난하고 있는 장범 등을 모두 자신의 세력권으로 불러모았습니다. 그들은 세속을 거부하고 청렴을 자부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조조는 이들을 불러 모으면서 자신의 실력을 강화시키고 그들의 영향력 하에 있는 더 많은 인재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저명인사였지만 실속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공융이 대표적인 케이스였습니다. 공융은 4살 때 부친이 배를 사주면서 골라 먹으라고 하자 가장 작은 것을 고르고 형에게 큰 것을 양보했다는 미담으로 유명해진 인물인데 책벌레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담준론에 능하였으나 임용한 인물은 그저 영악하지만 경박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실무적 능력은 별개였고 황건적이 쳐들어오자 막지 못하고 유비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원소의 아들들이 쳐들어오자 군사 태반을 잃어버렸으나 태연하게 책을 읽다가 야밤에 성이 함락되자 혼자 성을 빠져나왔고 처자식은 포로가 되었습니다. 공융이 추천한 인물 중 대표적인 인물은 예형인데 조조에게 불손하기만 하였습니다. 조조는 예형을 죽이려고 유표에게 사신으로 보냈고 유표는 자신을 모욕하는 예형을 포악한 성질로 유명한 황조에게 보냈습니다. 결국 예형은 황조를 조롱하다 황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특이한 일화는 동래 사람 태사자입니다. 그는 유요의 부하로 있다가 손책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명궁으로 알려진 장수입니다. 태사자의 명성을 들은 조조는 작은 상자를 선물로 태사자에게 보냈습니다. 상자를 열어보니 당귀가 있었습니다. 당귀 마땅히 북방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선물을 보낸 것입니다. 조조는 비록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하였지만 조조의 인재를 사랑하고 불러 모으려는 마음을 알려주는 에피소드였습니다. 원소가 사세삼공의 명문가를 자랑하고 유표가 여덟 명의 뛰어난 인재에 속한 과거의 명성에 의존할 때 조조는 인재식별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수많은 인재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조조가 원소를 이기고 유표에게 승리한 비결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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