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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방 Jul 13. 2023

<제13화> 조조와 싸우는 여포

192년 동탁을 살해한 여포가 198년 조조에 의하여 처형당하였습니다. 한 때는 조조를 포위하여 전투 중에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호기를 놓치자마자 조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여포는 삼국지의 배신자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아버지가 셋인 종놈’라는 욕을 먹은 것은 자기 홍보에 매우 미숙한 인물이었던 것이 원인으로 보입니다. 동탁이 죽은 후 여포는 왕윤에 의하여 온후로 책봉되면서 짧은 전성기를 누렸지만 그 기간은 단지 60일에 불과하였습니다. 이각에게 패하자 도망치면서 왕윤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왕윤은 헌제 곁을 지키다 결국 순국하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동탁이 죽은 후 가장 큰 세력은 사세삼공을 자랑하는 원 씨 가문의 원소와 원술이었습니다. 여포는 자신이 동탁을 죽여 원술의 복수를 하였다며 공을 내세우며 원술 밑으로 가려고 했으나 원술은 여포를 증오하였습니다. 여포는 할 수 없이 원소에게로 갔습니다. 원소는 공손찬이 자랑하는 기마부대인  백마부대와 같은 전투력 있는 부대가 필요하였고 여포를 받아들여 상산에 있는 장연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여포는 성렴, 위월과 함께 장연을 격파했으나 여포 군의 약탈로 문제가 발생하자 갈등이 생겼고 원소가 여포를 암살하려고 하자 이제는 동향의 장양에게로 몸을 의탁하였습니다. 원술, 원소를 찾아가면서 자신이 원 씨 가문의 복수를 해주었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원 씨 형제들 입장에서는 동탁과 여포는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하내의 장양은 여포를 받아들였습니다. 이각과 곽사는 장양과 여포의 결합에 위협을 느꼈습니다. 자신들과 여포와는 서로 원수지간이었으므로 여포를 처치하기 위하여 장양과 그의 수하의 부곡 장수들을 회유하였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여포는 단독으로 장양을 찾아가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습니다.

“이 여포와 경은 같은 고향 사람입니다. 경께서 세력이 약해 어쩔 수 없다면 저를 죽이십시오. 이각과 곽사로부터 관직을 얻고 총애를 받으실 것입니다. 나를 파시는 것이 나으실 것입니다.”

여포가 장양에게 대항하기보다 자신에게 목숨을 맡기겠다는 태도를 보이자 장양도 사나이답게 여포를 보호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장양은 겉으로는 이각과 곽사의 요구를 들어줄 것처럼 하면서도 실제로는 여포를 보호하였습니다. 원소도 사자를 보내 여포를 죽일 것을 요구하였지만 장양은 의리를 지켰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이각과 곽사는 여포를 제거할 수 없음을 깨닫고 여포를 회유하고자 헌제의 명의로 영천태수로 임명하는 조서를 내려보내 여포를 달랬습니다.      


여포는 장양 밑에 있으면서 장막을 찾아갔고 이별할 때 손을 맞잡고 맹세했다고 여포전에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원소는 반동탁연합군의 맹주가 되어 오만한 모습을 보였고 의협심이 강한 장막은 원소를 질책하자 원소는 조조에게 장막을 제거할 것을 지시했지만 조조가 거부하여 장막과 조조의 친분은 깊어지고 원소와 장막은 서로 원수가 된 사이였습니다. 원소가 여포를 암살하려 했으므로 공동의 적인 원소의 막강한 세력을 두려워한 여포와 장막은 서로 끈끈한 사이가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장막은 조조를 고마워했지만 막강한 원소의 힘을 생각할 때 조조가 언제까지나 자기편이 되어줄지 의심스러웠습니다. 


  마침 194년 조조가 부친 조숭의 피살을 명분으로 서주를 공격하자 그 빈 틈을 노려 장막과 그 동생 장초, 조조의 장수 진궁, 조사중랑 허범, 왕해 등이 조조를 배신하였고 그들은 여포의 막강한 전투력을 앞세워 조조가 없는 연주를 기습하였습니다. 이 시나리오를 작성한 사람은 진궁이었습니다. 진궁이 조조를 배신하고 여포를 영입한 이유를 이중텐은 ‘품삼국’에서 조조가 당대의 문호 변양을 죽여서라고 말했지만 이는 시기적으로 훗날이며 이중텐이 선후를 착오한 것이라고 김경한 삼국지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변양이 죽은 시점은 범엽의 후한서에 건안 연간이라고 나와있고 건안은 196년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또 ‘위씨춘추’에는 관도대전에서 원소가 조조를 비판하는 격문에 조조가 변양을 죽인 것을 비난하는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보면 200년 이전이므로 그 사이 연간에 죽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진궁이 조조를 배신한 것은 서주대학살로 조조가 백성을 구제할 영웅으로 보았으나 백성들을 학살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조의 세력확장에 도움을 준 자신의 죄를 사죄하는 의미로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고, 장막도 원소와 조조의 눈치를 보는 위치라는 불안감에서 이에 가담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조는 서주로 출병하면서 순욱을 연주에 남겨놓았습니다. 당시 순욱은 32세의 젊은 참모였습니다.  장막은 여포가 연주에 도착하자 순욱에게 여포가 지원군으로 왔다며 맞이할 것을 통고했지만 순욱은 즉시 장막이 반란을 일으킨 것을 직감하고 동군태수 하후돈을 불러들였는데 하후돈이 견성으로 오던 중 여포 군과 접전이 붙었으나 패하지 않았고 여포 군은 여의치 않자 복양성으로 방향을 튼 것입니다. 하후돈은 노상에 군영을 설치하고 주둔했는데 마침 복양성에서 10여 명의 장수가 도망쳐 나왔기에 하후돈이 면담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들은 진궁에게 포섭된 자들로 하후돈에게 투항하는 척하며 그를 연금하였습니다. 하지만 하후돈 휘하에는 하내군 출신의 한호, 패국 출신의 사환 같은 노련한 장수들이 건재하였습니다. 군막에서 대치 중이던 반란군들에게 한호가 단호하게 공격할 것을 명령하자 당황한 반란군은 놀라 목숨을 구걸하였고 한호는 이들을 모두 처치하고 하후돈을 구하였습니다. 훗날 조조는 한호를 칭찬하며 이를 군법으로 정하였고 향후 조조군에는 인질범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후돈은 견성에 도착하자마자 진궁과 내통한 자들 수십 명을 색출하여 처형하여 군기를 잡았고 그때 갑자기 원술이 임명한 예주 자사 곽공이 수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오자 모두 곽공이 여포와 공모했다고 판단하고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순욱은 곽공이 아직 향배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일 것이라며 하후돈의 만류에도 성밖에 나가 곽공과 회담하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자 곽공은 성의 공략을 단념하고 견성을 떠났습니다.      

조조는 서주에서 철군하였고 여포가 주둔한 복양을 공격하였습니다. 여포는 복양성에 주둔하며 총지휘를 맡고 별동대를 서쪽 50리에 별도로 주둔시켜 양동작전을 준비하였습니다. 조조는 여포의 별동부대를 야습하였고 새벽까지 적진을 완파하였습니다. 하지만 여포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총병력을 동원하였습니다. 조조군은 포위되었고 갈수록 불리해졌습니다. 위험에 처한 조조가 여포 군을 물리칠 특공대를 모집하자 이제까지 무명이었던 전위가 자원하였습니다. 전위는 손에 갈래창인 극을 10여 개를 가지고 10보 안에 들어오는 적들을 모두 쓰러트리는 무용을 보여주어 혈로를 열어 조조군을 구원하였습니다. 순욱과 정욱, 하후돈의 가치를 재확인하였지만 한호와 전위가 있음을 발견한 것이 여포와의 전투에서 얻은 수확이었습니다. 


  이후 진궁의 계략으로 복양성의 호족인 전 씨의 반간계에 유혹되어 조조가 목숨이 경각에 달리기도 하였으나 이를 무사히 넘기고 조조는  살아 돌아왔습니다. 194년 가을이 되어 메뚜기떼가 창궐하여 식량이 부족하여 애를 먹자 원소가 조조에게 자기 밑으로 들어올 것을 제안했습니다. 정욱의 반대로 가족을 인질로 보내지 않기로 했지만 조조가 엄청 고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겨울에 도겸이 죽고 유비가 서주를 차지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근거지인 연주는 3개 성만 남은 상태로 195년이 되어 일진일퇴를 벌이던 중 조조가 승지현에 주둔하던 때 여포가 1만의 병력을 이끌고 진군해 왔습니다. 대부분의 군사들은 보리를 베러 나갔고 병사는 1000명에 불과했는데 조조는 기지를 발휘하여 부인들에게 갑옷을 입혀 위장하자 여포는 매복을 두려워하여 시간을 끌게 되었습니다. 결국 매복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공격했으나 보리를 수확한 조조군이 여포의 후면을 기습하였고 결국 여포는 대패하였고 유비가 있는 서주로 도주하였습니다. 조조의 보복이 시작되었습니다. 장막이 모반할 때 하내태수 왕광이 가담했는데 왕광이 원소의 수하에 있을 때 매부 호모반을 죽인 일이 있었는데 여포와 장막이 패망하자 호모반의 일족들이 왕광을 죽였고 한때 조조의 수하였던 진궁과 허사, 왕해는 여포를 따라 서주로 도망갔고, 위종과 필심은 원소에게도 도망갔습니다. 조조는 법 적용이  준엄하여 승리한 장수도 군법을 어긴 점이 있으면 군법대로 처형했습니다. 원한이 있는 사람은 과거 친분이 있어도 반드시 보복하였습니다. 사형장에 찾아가서 서로 대면하고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하면서도 살려주지는 않았습니다.     


유비가 차지한 서주는 5개의 군, 국에 62개의 성, 인구가 300만에 육박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인구 600만의 예주와 기주, 400만의 연주보다는 세력이 작았지만 동탁이 난으로 낙양과 예주가 초토화되고 황건적의 난으로 청주가 황폐화되자 100만이 넘는 피난민이 몰려와 인구가 풍성해졌습니다. 인재와 병력이 부족함을 유비가 절실하게 느끼고 있을 때 조조에게 쫓긴 여포가 귀순을 청하였습니다. 여론은 여포를 거부하였으나 유비는 조조를 견제할 목적으로 여포를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여포에게 조조를 맡기고 원술과의 싸움에 집중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196년 9월 조조가 헌제를 허도로 영접하자 유비는 조정에 표문을 올리고 정성스럽게 공물을 바쳤습니다. 조조는 과거의 구원을 잊고 유비를 진동장군에 임명하고 의성정후에 봉했습니다. 북방의 원소와 남방의 원술이 세력을 떨치는 상황에서 조조 입장에서는 유비와 같이 천자에게 충성심을 보이는 제후들을 환대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조조는 은밀하게 유비에게 원술을 치라는 황제의 조명을 내려보냈습니다. 유비도 조조의 내심을 간파했지만 형식적으로 천자의 명을 거부할 수 없었고 원술을 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원술은 그 소식을 듣자 먼저 선제공격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원술의 대군에게 패한 유비는 회음현 석정에 진을 치고 장기전을 준비하였습니다.      


대치기간이 한 달을 넘어가자 원술은 여포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소패에 주둔하면서도 원술에게 식량 지원을 요청하는 여포를 식량지원을 미끼로 유비의 후방을 공격할 것을 주문한 것입니다. 마침 유비가 회음현 석정에 주둔하고 있는 시점에 하비성을 지키는 장비가 조표와의 불화가 폭발한 것입니다. 도겸이 살았을 때 조표는 유비와 동급이었지만 이제는 장비의 지시를 받았고 조표는 여포에게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여포가 하비성 인근 40리 경에 도착하자 단양병의 우두머리 허탐의 사자 장광이 성내 상황을 전했습니다. 조표가 죽고 단양병들이 여포만 기다린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여포는 밤중에 성내를 기습하여 장비는 몇 명의 기병만을 거느리고 유비에게로 도망치고 유비 군의 가족들은 모두 여포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유비는 난감한 처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원술이 여포의 장수인 학맹을 포섭하여 여포를 암살하려다 실패하였고 서주성의 미축은 자신의 빈객과 노복 1000명을 유비에게 바치며 누이를 유비에게 시집보내면서 서주에 있는 여포의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유비는 결단을 내려 여포에게 자신을 의탁하였고 원술에게 배신을 당한 여포는 유비에게 소패성을 권하였습니다. 원술이 보기병 3만을 이끌고 유비를 공격하자 여포는 부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술의 장수 기령과 유비를 불러 200 보나 되는 거리에서 화극을 맞추는 신궁의 실력을 보여주며 일단 싸움을 막았습니다. 유비에게 은혜를 갚은 것입니다.      


197년 5월 원술이 드디어 황제에 올랐습니다. 원술은 여포에게 딸을 며느리로 삼고 싶다고 제의했습니다. 패국상 진규는 원술과 어린 시절의 친구였으나 원술에게 편지를 보내 원술이 황제가 된 것을 비난했습니다. 아울러 여포를 설득하여 원술과의 혼인을 막고 원술의 사자 한윤을 허도로 보내 처형되도록 하였습니다. 원술은 대장 장훈과 교유에게 양봉과 한섬과 함께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여포를 공격하도록 하였습니다. 여포의 군세는 3000명의 병사와 400 필의 말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진규는 여포의 이름으로 양봉과 한섬을 회유하는 편지를 보냈고 여포 양봉 한섬은 원술의 장수 10여 명을 참수하며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197년 겨울 양봉과 한섬은 하비에 근거지를 두고 일대를 약탈하여 생존하였습니다. 양봉은 여포와 유비 간의 알력을 눈치채고 유비에게 공동으로 여포를 공격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유비가 동의하는 척하고 양봉과 한섬을 불러들였습니다. 유비가 잔치를 벌여 초청하자 한섬은 군영을 지키고 양봉만 참석했는데 유비는 양봉을 포박한 다음 참수하였습니다. 유비는 소패에서 군세를 확장했으나 만 명 정도에 불과하였고 여포의 세력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아직 여포에 대항하기엔 역부족이었고 공연히 여포의 경계심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양봉은 이각의 부하로 출발하여 헌제의 피난시절 신하로서의 의무를 다한 공훈이 있었으나 유비의 속마음을 간파하지는 못한 것이 그의 마지막을 앞당긴 것으로 보입니다.      


198년 여포의 부하들이 말을 사서 돌아오다가 장비에게 약탈을 당하였고 노한 여포는 유비를 기습하였습니다. 대패한 유비는 단신으로 허도를 찾아 조조에게 귀순하였습니다. 곽가나 정욱은 양봉과 달리 유비의 진면목을 파악하며 조조에게 빨리 유비를 도모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조조는 한 사람을 죽여 천하의 인심을 잃고 싶지 않다고 대답하였습니다. 


 198년 10월 조조는 직접 여포를 정벌하러 나섰습니다. 여러 장수들이 반대했지만 순유만이 홀로 찬성했습니다. 유표와 장수는 기세가 죽었고 여포는 서주를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공격하면 격파할 수 있습니다. 조조의 출병소식을 들은 여포는 원술에게 구원을 청하였고 원술은 여포의 딸을 원했습니다. 여포는 딸을 직접 호송하려 하였으나 조조의 포위망을 뚫지 못하였습니다. 원소와 조조는 공동의 적인 여포와 동맹을 맺은 하내태수 장양을 무너뜨리는 계책을 사용하였습니다. 조조가 장양의 부하 양추를 시켜 장양을 살해하자 원소는 장양의 별장 휴고를 시켜 양추를 죽이고 장양의 병사들을 이끌고 원소에게 투항하도록 도모하였습니다. 하내태수 장양은 덕장으로 알려졌었고 인자한 성품이라 아랫사람의 잘못을 보고도 인정에 치우쳐 불문에 부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난세에 장양과 같은 리더십은 풍전등화처럼 세력이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왔고 신상필벌의 조조의 리더십은 세력을 늘려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여포와의 공방전이 지속되자 순유와 곽가는 하비성 주위를 흐르는 사수와 기수의 물을 끌어들여 수공작전을 할 것을 기안하였고 하비성은 침수되어 여포 군은 식량부족과 두려움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여포는 금주령을 내렸으나 여포의 기병대장 후성이 도난당한 말 15 필을 되찾고 축하연을 벌이려다 여포의 화만 불러일으켰습니다. 군심은 여포를 모두 떠났고 후성은 친구 송헌, 위속과 공모하여 진궁을 포박한 다음 조조에게 항복했습니다. 기세가 꺾인 여포도 조조에게 항복했습니다. 여포는 조조에게 자신이 조조의 기병대를 이끌고 천하를 평정하면 무적이 될 것이라는 제의를 하면서 조조  곁의 유비에게 구원을 청하였습니다. 백문루에서 조조 옆에서 침묵하던 유비가 입을 열었습니다. 

“명공께서는 정건양과 동태사의 일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이 말이 여포의 운명을 결정하였습니다.      


여포가 유비를 처음 만났을 때, “나와 그대는 모두 변변치 못한 지방 출신이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포는 유비에게 동류의식을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여포가 유비를 장막 안에 있는 부인의 침상에 앉히고 아내에게 술잔을 따르게 한 것은 유목 문화에서는 친밀감의 표시이지만 노식의 문하에서 중원의 문화를 익힌 유비의 입장에서는 매우 천박한 태도로 보였습니다. 즉 유비는 여포를 매우 하찮은 인물로 생각했지만 여포는 유비에게 매우 친밀감을 느낀 것입니다. 여포는 백문루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비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지만 그때는 조조군에게 포승줄로 묶인 상황이었습니다. 원술은 한때 여포에게 서주의 유비의 후방을 기습할 것을 청하면서 장군이 동탁을 주살해 원수를 갚아주었으므로 원술이 세상에 떳떳하게 대할 수 있었다고 칭송하면서 원술이 태어난 이래 세상에 유비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여포의 위엄과 원술의 무용이 힘을 합친다면 유비를 격파할 수 있다고 유혹한 것은 한때 천하가 일시적이나마 원소, 조조, 여포가 두각을 나타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나 거품처럼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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