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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방 Aug 05. 2023

<제24화> 제갈량 위(魏)친척 제갈탄

제갈 가문의 뿌리는 전한의 원제 시절 제갈풍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제갈풍은 원제 시절 황제의 측근도 처벌하려고 하였던 강직한 신하로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서주에서 터를 잡고 살다가 조조의 서주 대학살로 피신하여 제갈근은 오나라로 제갈량, 제갈균은 촉에 터전을 잡았습니다. 계속 위나라의 영역에서 살아갔던 인물이 제갈탄과 제갈서입니다 세설신어에서 제갈가문의 제갈량은 용으로 제갈근은 범으로 칭하면서 개로 비유되었던 인물이 제갈탄입니다. 제갈탄은 서주 낭야국 양도현 사람으로 제갈량과는 가문의 동생뻘인 사람인데 훗날 사마의의 둘째 아들인 사마소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멸문지화를 당했습니다. 제갈탄의 막내아들 제갈정은 오나라로 도망가서 오나라 장수로 있다가 오나라가 망하고 천하가 통일되자 진의 황제 사마염은 과거를 묻고 어린 시절의 친구인 제갈정을 불렀으나 제갈정은 끝까지 사양하고 초야에 묻혀 여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제갈탄에 앞서 사마의에게 반기를 들었던 사도 왕윤의 조카 왕릉은 멸족을 당했는데 제갈탄의 둘째 딸은 왕릉의 아들 왕광에게 시집을 갔고 제갈탄의 첫째 딸은 사마의의 4남이자 동진을 세운 사마예의 할아버지인 사마주에게 시집을 갔던 서로 얽히고설키는 혼인관계가 존재합니다.      


또 다른 제갈 가문의 인물로는 촉이 멸망할 때 위나라의 장군이었던 제갈서입니다. 사마소는 종회와 등애로 병력을 나누어 촉에 대한 정벌에 나섰는데 제갈서는 종회의 부하로 배치되었습니다. 종회는 촉의 정벌이 성공하자 반란을 도모하면서 독자 세력화를 꿈꾸었는데 부하 장수인 제갈서에 누명을 씌어 체포한 다음 수도로 압송시켰습니다. 그런 수모를 당하였지만 촉 정벌 후 종회와 등애가 모두 처형되는 와중에도 무사히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훗날 제갈서의 손녀인 제갈완은 진의 황제 사마염의 후궁이 되었습니다.     


제갈탄은 조비의 아들 조예가 황제이던 시절 하후현 등양 등 조상 일파에 속하는 무리와 어울리다가 조예의 눈밖에 나서 함께 파직되었었는데 조방이 황제가 되자 권력을 잡은 조상에 의하여 다시 복직되었였습니다. 하지만 사마의는 조상 일파를 숙청하면서도 제갈탄에게 양주자사를 맡기었습니다. 사도 왕윤의 조카인 왕릉이 사마의에게 반기를 들자 사마의는 왕릉이 자기 형 사마랑과 친구관계였으므로 자신이 직접 정벌에 나섰고 제갈탄에게는 오나라의 공격을 막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사마의는 제갈탄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 사돈이 되었고 제갈탄의 막내아들 제갈정은 사마의의 손자인 진 무제 사마염과 어린 시절 친하게 자랐습니다. 제갈탄은 오나라의 제갈각과 싸웠던 동흥 공격 작전에 참가하여 싸웠으나 패전하였고 벼슬이 깎였습니다.

      

255년 한때 조상파에 속한 인물들인 과거 고구려를 정벌하여 동천왕을 쫓아내고 국내성을 함락시켰던 관구검과 문흠이 사마의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키면서 합류를 요청하였으나 사자의 목을 베어 반란에 참여할 뜻이 없음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제갈탄이 개인적으로 문흠과 사이가 나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장군 사마사가 정벌에 나서면서 제갈탄으로 하여금 참전하도록 하여 관구검의 근거지인 수춘을 공격하였고 그 공으로 진동대장군, 양주도독이 되었습니다. 256년 오나라의 손준이 쳐들어왔을 때 방어전에서 승리하여 고평후에 봉해지고 식읍을 받고 정동대장군이 되었습니다. 제갈탄은 과거 사마의에 의하여 숙청된 하후현, 등양 등과 친밀하였고 왕릉과 관구검이 숙청되는 모습을 이미 보았으므로 스스로 두려운 마음에 반란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재물을 기울여 은혜를 베풀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도록 노력하였고 인근 양주 지역의 무리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데 공을 들였습니다.      

  

다시 오나라 군이 서알로 쳐들어오자 조정에서는 제갈탄의 현재 병력으로 충분히 대항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으나 제갈탄은 추가로 10만의 병력을 요청하면서 또 임회군에 성을 쌓아서 적의 침입에 대비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위나라 조정에서는 이미 제갈탄이 반란을 준비한다는 조짐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사마소는 조정을 장악하고 자신의 심복인 가충을 참좌로 삼아 외방에 주둔하고 있는 장군들을 방문하여 노고를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장군들의 동태를 파악하도록 시켰습니다. 가충은 수춘에 도착하여 제갈탄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인사를 마친 다음에 시사에 대하여 담론 하였습니다. 가충이 제갈탄의 본심을 떠보기 위하여 슬쩍 천기를 누설하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낙양 중의 여러 현명한 사람들이 다 대장군 사마소가 위나라에서 선양을 받아 새로운 왕조를 창설하기를 바라는 것은 장군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장군께서는 이에 대하여 어떻게 여기십니까?”

제갈탄이 정색을 하고 가충을 꾸짖었습니다.

“그대는 위의 신하인 가규의 아들이 아니오? 대를 이어 위나라에 은혜를 받았으면서 어찌하여 국가를 배반하고 위나라 황실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련느 것이오? 나는 이에 대하여 들은 바도 없고 차마 들을 수도 없소. 만약 낙양에서 변란이 발생한다면 나는 당연히 목숨을 바쳐 싸울 것이오.” 

가충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충은 돌아와 사마소에게 보고하였습니다.

“제갈탄은 양주에 오래 재직하였고, 또 위명이 있어 백성들이 그에게 의지하며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한시라도 빨리 그를 경사로 불러들여야 합니다. 지금 당장 징소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오지 않을 것이나 반기를 들어봐야 그를 제압하는 일은 어렵지 않고 그로 인한 피해도 크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징소하지 않는다면 그의 기반이 날이 갈수록 공고해져 그를 제압하는 일은 지체되고 피해가 더욱 커질 것입니다. 


257년 사마소는 제갈탄에게 경도로 들어오라고 불렀습니다. 지위를 사공으로 높여주겠다는 것이 명분이었습니다. 조서를 받은 제갈탄이 말했습니다.

”내가 삼공에 오르는 것은 순서상 당연히 왕창 다음이어야 하거늘 지금 곧바로 사공이 되는 것은 맞지 않다. 게다가 정식으로 사자를 보내지 않고 보발꾼을 통해 새서를 들려 보내면서 병력을 악침에게 널기라고 하니 이는 필시 악침이 배후에서 일를 꾸몄을 것이다.“ 

제갈탄은 장수들을 청해 주연을 베풀고 병사들에게도 술을 내려 취하게 마시도록 하였습니다. 분위기가 형성되자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나는 일전에 1,000명분의 갑옷과 병장기를 새로 만들며 오나라를 공격하기를 원하였소. 하지만 지금 징소를 받아 낙양으로 가면 이 병장기들을 다시는 쓸 수가 없게 되었구려. 내가 시험 삼아 잠시 출격하여 즐거운 유희를 보여주고 난 후 돌아오고자 하오. 제군들은 이를 막지 마시오. “ 

제갈탄은 완전무장한 병사 700명을 데리고 출병하여 양주자사 악침을 죽였습니다. 악침은 조조의 장수 악진의 아들이었습니다.      


제갈탄은 양주에서 병사를 일으키어 사마소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제갈탄은 둔전 하는 군사 10만 명과 양주에서 새로인 4~5만의 군사를 모으고 1년을 버틸양식을 준비하면서 막내아들 제갈정을 오나라에 보내 구원병을 청하였습니다. 오나라에서는 기뻐하면서 병사 3만을 이끌고 최근 오나라에 투항한 문흠을 지원병으로 보내고 제갈탄을 오나라의 제후로 봉하였습니다. 사마소는 26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회수에 도착하여 제갈탄이 있는 수춘을 포위하였습니다. 제갈탄은 저항하였으나 성안에서는 점차 식량이 줄고 밖에서는 구원병이 도착하지 않으므로 결국 부하장수들인 장반과 초이가 도망쳐 사마소에게 귀순하였습니다.      


포위망을 뚫으려는 시도가 실패하자 오나라 병력을 이끌고 온 문흠은 식량을 절약하기 위하여 위나라 사람들을 내보내자고 하였습니다. 문흠이 보기에 위나라 병사들은 결사 항전 의지가 없으므로 내보내자고 한 것입니다. 제갈탄이 보기에는 과거 사이가 나빴던 문흠이 위나라 출신 병사들을 내보내고 주도권을 잡으면 자신을 해칠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겨서 갈등이 커지게 되었고 결국 제갈탄이 문흠을 죽이자 문흠의 아들 문앙과 문호는 사마소에게 귀순하였습니다. 사마소는 문앙과 문호의 과거의 반란죄를 모두 사면하였고 성안의 위나라 병사들의 마음은 흔들렸습니다. 마침내 궁지에 몰린 제갈탄은 성을 탈출하려 시도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제갈탄은 죽고 그의 삼족은 모두 멸족을 당하였습니다. 사마소가 제갈탄 수하의 수백 명들에게 한 명씩 귀순 의사를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갈탄의 부하들은 참수를 당하면서도 “제갈공을 위해 죽으니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명나라의 사대부 진계유는 “제갈량은 기산에서 사마의를 막고, 제갈탄은 수춘에서 사마소를 쳤으니 제갈탄의 충(忠)과 의(義)가 제갈량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내가 세 제갈씨를 말한다면 제갈량이 상등이고 제갈탄이 그 다음이며 제갈근이 또 그 다음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실학자인 성호 이익의 제자 안정복은 제갈탄을 변호하는 진계유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을 남기며 제갈탄을 높이 평가했다고 합니다. 이상 조위의 충신이자 사마 가문의 반역자였던 제갈탄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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