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한양도성, 추억을 걷다

서울성곽 탐방기

by 다움


서울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도시이자, 누군가에겐 잊고 지낸 인연이 다시 맞닿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10여 년 전, 한양도성을 완주하며 '완주 도장'을 찍고 뿌듯하게 '완주 배지'를 가슴에 달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로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지인에게 어제 문득 연락을 건넸습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흘렀건만, 지인은 마치 어제 본 사이처럼 흔쾌히 동행을 수락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두 번째 성곽 탐험'이 시작되었습니다.


1. 예기치 못한 소동과 미안한 재회

약속 시각은 오전 9시, 장소는 서울역이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으나 아뿔싸, 교통카드가 든 지갑을 두고 온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 카드를 챙겨 필사적으로 뛰었습니다.

다행히 약속 시각 9시 정각에 딱 맞춰 도착했으나, 저 멀리 미리 와 기다리고 있는 지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이미 20분 전부터 도착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저에게 지인은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괜찮다며 악수를 건넸습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그의 배려 덕분에 팽팽했던 긴장이 풀리며, 기분 좋은 발걸음을 뗄 수 있었습니다.


2. 인왕산의 고백: 체력의 한계와 맞바꾼 절경

숭례문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인왕산 구간은 한양도성 탐험의 꽃이라 불리지만, 평소 운동을 게을리했던 저에게는 거대한 시험대와 같았습니다.

주말을 맞아 성곽길을 찾은 수많은 인파 속에 섞여, 저 역시 '쉬다 걷다'를 무한 반복해야 했습니다.

가파른 돌계단 앞에서 멈춰 설 때마다 무거운 다리가 원망스러웠지만, 지인은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제 보조를 맞춰 주었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정상. 땀방울이 눈가에 맺힐 즈음 마주한 전경은 그야말로 '가슴이 확 트이는' 경험이었습니다. 발밑으로는 서촌의 오밀조밀한 한옥 지붕들이 보이고, 멀리 남산타워와 도심의 마천루가 신구(新舊)의 조화를 이룹니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온 보람이 밀려오며, "정말 오기를 잘했다"는 말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3. 성벽 위에서 나눈 '10년의 세월'

북악산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쯤, 자연스레 서로의 근황이 화제로 올랐습니다.

10년이란 시간은 우리 몸의 근육만 빠지게 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어느덧 어엿한 성인으로 키워놓았더군요.

지인은 그사이 아이들이 취업했고, 이제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직 한창 아이들을 더 키워야 하는 제 입장에서는 놀랍고도 부러웠습니다.

성벽에 쌓인 세월의 이끼만큼이나 깊은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부러움 섞인 한숨을 내뱉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묵묵히 그 세월을 버텨온 지인의 어깨가 성곽의 돌덩이처럼 단단해 보였습니다.


4. 역사 속으로의 산책, 그리고 추억의 왕돈까스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지인은 역사 해설가로 변신했습니다.

시대마다 다른 성벽 돌의 모양을 짚어주며 들려주는 이야기는 고통스러운 오르막을 '시간의 통로'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600년 전의 역사와 10년 전 우리들의 추억, 그리고 오늘 나눈 아이들의 이야기가 뒤섞여 발걸음은 한결 경건해졌습니다.

숙정문을 지나 혜화문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10년 전 그날처럼 근처의 왕돈까스 집으로 향했습니다.

접시를 가득 채운 커다란 돈까스는 변함없는 크기로 우리를 반겼습니다.

평소 즐겨 먹지 않는 음식이지만 이곳에 오면 반드시 치러야 할 의식처럼 한 접시를 깨끗이 비웠습니다.

바삭한 튀김옷 속에 담긴 것은 10년 만에 다시 맛보는 '완주의 기쁨'이었습니다.


다시 연결된 시간의 고리

혜화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리는 묵직한 피로감으로 가득했지만 마음만은 가벼웠습니다. 10년 전의 도장과 배지는 서랍 속 어딘가에 있겠지만, 오늘 흘린 땀방울과 지인이 들려준 아이들의 성장 소식은 제 마음속에 새로운 '인생의 훈장'을 달아주었습니다.

나의 아이들도 언젠가 제 몫을 다하는 날이 오겠지요.

그때쯤 다시 이 성곽길을 걸으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서울을 가장 깊게 이해하고 싶다면, 한양도성 길을 걸어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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