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놓친 아침, 나를 놓친 하루”

반복 속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들

by 다움

아침은 예고 없이 무너진다.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끼워 쓸 수 없다”는 말을 알면서도, 오늘도 서둘렀다. 그리고 결국 눈앞에서 버스를 놓쳤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했던 그 몇 초를 허무하게 흘려보내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며 이미 하루의 균형이 기울어졌음을 직감했다.


다음으로 온 버스는 파란색이었다.

시간은 빠듯했지만, 지각을 면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별다른 의심 없이 올라탔는데 좌석이 비어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사람은 늘 편안함 앞에서 판단을 미룬다.

앉고 나서야 방향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번호를 보지 않은 단순한 실수는 오늘 하루 전체를 설명하는 축소판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 한 정거장을 뛰면서, 나를 의심했다.

단순한 부주의일까, 아니면 반복되는 패턴일까.

최근에 우연히 본 성인 ADHD 테스트 문항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음악을 두 달 이상 같은 곡만 반복해서 듣는 것, 특정 사람이나 감정에 집착하는 성향. 두 가지 모두 나와 닮아 있었다.

그저 취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쩌면 어떤 결핍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지하철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늦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뛰었다.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최소한의 위안이었는지도~


생각해 보면 어제도 다르지 않았다.

이른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빨래를 널고, 쓰레기를 버리고, 설거지를 마쳤을 때는 이미 밤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하루를 성실하게 보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나는 또다시 화면 앞에 앉았다.

결국 자정을 넘겨 잠이 들었다.

오늘은 5시쯤 눈을 떴지만, 집 안을 서성이다 보니 출근 시간은 또 늦어졌다.

반복의 중심에는 늘 ‘영상’이 있다.

짧은 자극, 빠른 전환, 끝없이 이어지는 장면들. 그것들은 인간관계의 대체물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본능을, 화면 속 인물들이 대신 채워주는 듯하다.

그 속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종종 사춘기 소녀가 되기도 하고, 스무 살의 내가 되기도 한다.

가능성이 아직 닫히지 않았던 시절, 아직 늙지 않았다고 믿을 수 있었던 시간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현실은 그대로다.

갱년기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중년의 몸.

넓어진 모공과 깊어지는 주름, 점점 더 또렷해지는 시간의 흔적들.


요즘처럼 젊음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나 싶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려서일까.

더 쉽게 빠져들고, 더 늦게까지 깨어 있게 된다.

도파민에 이끌리듯, 멈추지 못하는 흐름 속에 서 있는 느낌이다.


오늘도 여전히 비슷한 모습으로 하루를 열었다.

버스를 잘못 타고, 한 정거장을 뛰고, 결국 지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은 흔들린다


아마 내일도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비슷한 실수를 하고, 후회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무엇이 나를 흔들고, 늦추는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언젠가는,

버스 번호를 한 번 더 확인하고 , 화면을 조금 더 일찍 끄는 등

사소하지만 다른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크게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

반복되는 선택은 나를 다른 방향으로 서서히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