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외로움, 사회적고립연결포럼
요즘 나는 엄마를 생각하면 자주 눈물이 난다. 신체적으로 강해 보이는 내가 눈물을 흘린다는 소식(?)에 놀라는 지인들이 많은데, 나도 어쩔 수 없는 딸인가 보다. 엄마는 1년 전부터 기관지 확장증이라는 병으로 기침을 자주 한다. 나아지는 약이 없어 평생 기침을 해야 하는 아주 괴로운 병이다. 이 병이 가장 최악인 점은 누군가를 만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옮는 병은 아니지만, 코로나 이후로 기침에 사람들이 더욱 예민해졌고 그 시선이 신경 쓰여 점점 사람을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엄마도 점점 바깥 외출을 줄이더니, 이제는 겨울의 추위를 핑계 삼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나갔던 교회마저도 발길을 끊었다. 바깥세상과 담을 쌓고 있는 엄마가 오로지 기다리는 시간은 나와의 대화 시간이다. 함께 있는 아빠와도 대화가 안 되고 근처 사는 오빠는 더더욱 감정을 나누는 사이는 아니란다. (사이가 나쁘지 않음에도 이런 대화가 안 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곁에 있으면 좀 달랐을까? 못된 딸은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알면서도 집에 방문하는 간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엄마가 외롭다고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아마도 엄마를 덮칠 수 있는 또 다른 병마는 외로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올해 서울시에서 사회적 고립연결포럼을 진행했다. 어느 교수님의 발표 내용 중 일부이다. 한국 사회에서 외로움은 ‘개인의 실패, 정서적 나약함’으로 여겨져 고백할 수 없는 감정이 되었다. 또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프로답지 못한 것’, ‘미숙한 것’으로 치부되었고, 이런 문화 속에서 외로움을 표현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물리적 거리보다 ‘정서적 거리’, 정보 접근성보다 ‘공감의 부재’가 만든다. 외로움을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겠지만, 단순히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마도 엄마가 나를 기다리는 이유는 내가 엄마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8시면 잠자리에 드는 엄마는 나만 가면 새벽 1시까지 이야기를 한다) 가끔은 아빠에게 왜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하냐고 한 소리 하고 싶지만, 생각해 보면 아빠도 가족에게 자신의 감정을 절대 털어놓지 않는다. 친구들에게는 할까? 절대 안 하겠지. 오히려 엄마는 밖에 나가진 않더라도 친구와 전화통화를 3-4시간씩 하기 때문에 알고 보면 아무 말하지 않는 아빠가 더 외로운 사람일 수 있겠다. 마침 저번주 롱블랙의 주제도 외로움이었는데, 우리의 일상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봐줄 목격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날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과 그에 대한 느낀 점을 얘기할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엄마의 일상, 아빠의 일상의 목격자는 누구였을까? 다시 한번, 언제까지나, 엄마와 아빠의 따듯한 목격자가 되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