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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크무슈 Mar 24. 2022

들어가는 말

(1) 들어가는 말


내가 구독하는 크리에이터가 있다.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인데, 사실 예뻐서 구독한다. 


정말 열심히 살아간다. 나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편으로는 열심히 살아왔으니 세상의 조명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


최근 콘텐츠에서 ‘지칠 때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대략 요약해보면, 다시금 열심히 살아갈 의지와 의욕을 위해 새벽을 여는 장소와 그곳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을 찾아보라는 이야기가 있다. 예를 들면 새벽시장이나 인력시장, 증권가 같은 곳. 무슨 뜻일까 쉽게 예상되겠지만 굳이 해석해보자면, ‘그들을 보며 나의 나태함과 해이함을 깨닫고 다시금 의지를 조여라.’ 정도가 되겠다.


 쫓기지 말고, 쫓아가지 말고, 지친 영혼을 달래자는 요즘 책 제목같은 위로와는 다른, 요즘 트렌드와 한참 대비되는 메시지긴 하다.  어찌 보면 아주 전통적이고 일차원적인 동기부여 방법에 가깝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지켜보기. 그들에게 나를 투영해보기. 즉, ‘반성하기’.


내가 지쳤을 때 하는 것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며 의지를 불태우기. 나태해진 나를 반성하기.


나는 반성을 잘한다. 물론 다른 의미의 반성이다. 나는 반성만 하다 자신감이나 의지 따위를 잃어버린 사람에 가깝지. 몸은 잔뜩 움츠러들어 있고, 입으로는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를 달고 산다. 나도 나름 열심히, 때로는 처절하게 살아온 사람이지만 세간의 조명을 받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누가 들어도 아는 기업이나 시험, 국가고시에 합격했다거나, 개천에서 용 났다는 수식어 따위가 붙을 업적은 아니니까. 그저 내 자리에서 조용히 싸운다. 나는 ‘내가 당연히 해야 할 것들’과 싸우고 있었다. 


이거 봐, 또 반성한다. 이미 내 인생은 반성으로 가득 차 있다. 나태하더라도, 해이하더라도 더 이상 조일 곳이 없다. 반성을 하다 하다 이제는 파스스 가루되어 날릴 것만 같아.


위 방법은 뭐든 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 경도 이상의 나르시시즘이 있는 사람에게만 추천해야겠다. 나는 안되는 걸로.


보통 이럴 때 나는 여행길에 오른다. 내 존재는 아무도 치켜세워 주지 않지만(엄마 빼고, 사랑합니다), 여행 중에 찾아오는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에는 내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아, 내가 살아있구나’라는 감정이 열심히 살아온 보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음을 이제야 느껴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굵직한 인생의 이벤트 뒤에는 꼭 여행이 붙게 되었다.




이번에는 이직을 했다. 첫 이직은 의미가 크다. 열정이라는 단어만 가득했던 초년생의 자기소개서가 전문용어로 들어차고, 내 가치가 연봉으로 매겨진다. 아쉬울 수도 있고, 과대평가된 것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한다.


감사하게도 나의 이직은 잠깐의 시간을 허락했다. 덕분에 깨달음과 분노와 반성으로 점철된 첫 사회생활을 잠깐 마무리하며 돌아보게 되었다. 근데 이제 여행을 곁들인.


여행지에서는 반성할 틈이 없다. 자다가 이불을 찰 일도 없다. 이 낯선 환경은 반성을 포함한 기타 감각과 감정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어준다. 약간의 중독성도 있다. 그래서 머리가 복잡할 때는 여행이 생각난다.

여행지에서는 나를 조금은 보듬게 된다. 나만의 조용한 싸움이 그다지 무의미하진 않았구나. 거창하게 표현해서 어색한 탓일까, 구어체로 풀면 이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야, 개같이 일해서 돈 버니까 이런 데도 와본다.’


돌아와서는 카드 명세서를 보고는 또 반성하게 된다. 그럼에도 즐거웠던 또는 아쉬웠던 여행지의 기억이 떠오르니 반성감은 금방 가신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칠 때 하는 것도 비슷하다. 반성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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