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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크무슈 Mar 24. 2022

선택받은 쟤의 일

(2) 선택받은 쟤의 일


이쯤 되면 이것도 능력이다 싶은 순간이 있을 거다. 싸잡아 혼나는 순간에 사라진다거나, 일이 터지는 날은 어떻게 알고 귀신같이 연차를 쓰는 초감각적 능력 같은, 보통 이런 하늘이 하사한 능력은 늘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마케터다. 살을 조금 붙이자면 ‘혁신 없는 아이템’의 마케터다. 조금 더 비틀어 말하면, 내가 하는 일이란 최후까지 방치된 프로젝트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릴 때까지 밀린 ‘과제_보류_보류.ppt’ 같은 느낌의 일이다. 


그렇다. 나는 갈 곳 잃은 일들을 모으는 재주가 있었다.


꾸역꾸역 4년을 가득 채우고, 5년 차에 접어든 첫 직장의 환장곡선은 꾸준히 우상향이었다. 갈 곳 잃은 일들이 모이는 재주를 깨달은 이후에는 일이든 사람이든 초연히 대처하려 노력했지만, 도무지 무례한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술에 취한 채 주말에 전화해 불만을 토로하는 영업사원, 계약을 놓친 건 순전히 너의 탓이니 책임지라는 신선한 논리. 뻔히 미룬 자기 일인데 너 때문에 며칠을 야근했다는 개발자.


이런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을 정도다. 뽀얀 초년생이 여러분 덕에 아주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고마워요. 궂은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이렇게 훈련해 주시다니. 


평일, 주말, 내선이든 휴대폰이든 할 거 없이 불만을 그렇게나 들어줬는데도, 연말이면 ‘담당 마케터와 통화 연결이 어렵다’는 근무태도 시정명령이 하달되곤 했다. 돈 벌어오는 부서의 목소리가 큰 것은 어디서나 당연한 논리니까.


시간과 건수의 콜라보레이션



뻔히 보이는 이해관계를 지켜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서로 일을 적게 하겠다는 무형의 전투가 원탁의 회의실에서 벌어진다. 뚱한 표정의 저 아저씨, 그걸 설득하는 쟤나 하청업체에서 온 저 아저씨, 자기는 왜 불렀냐는 옆 부서의 쟤. PM(Product Manager)인 나를 사회자로 진행되는 100분 토론은 결국 한쪽이 한 수 접어줄 때야 비로소 끝이 난다. 자기 부서의 일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회의가 끝났다면 그의 사무실 복귀는 개선문 행진이 따로 없다. 그 일은 돌고 돌아 결국 누군가는 떠맡게 된다. 오늘은 이 아저씨다. 못하겠다고 드러눕는 나와 동갑의 딸자식이 있는 이 아저씨를 어르고 달래서 회의를 파하면 약간은 성취감이 있다. 


저녁 6시 어간에는 종종 노동의 가치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진다. 6살 어린 사원이 묻는다. "왜 우린 노동을 할까요.." 물음표가 아니니 질문은 아닐 테고, 말 끝을 흐렸으니 위로해줘야겠지. 


울지 마, 나도 같이 해야 돼..



누가 감히 모든 노동은 숭고하다 했는가. 

여러 사람 엮이지 않고, 조용히 자기 일만 하고 퇴근하는, 6시엔 항상 퇴근해 자리에 없는,

쟤가 하고 있는 일과 내가 하는 일은 과연 똑같이 숭고한 것일까.


슬프게도, 저런 하늘이 하사한 일은 대부분 나의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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