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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크무슈 Mar 24. 2022

퇴사무새와 오피스괴담

(3) 퇴사무새와 오피스괴담


누구나 가슴속에 사직서 하나쯤은 품고 산다지만, 이걸 던지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나는 오히려 '퇴사'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다니는 ‘퇴사무새’ 같은 역할이었는데, 이게 굉장히 부끄러운 행동이었음을 깨닫는 두 번의 강렬한 순간이 있었다.



첫 번째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온 일종의 이불킥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손대면 톡 하고 그만둘 거라 노래를 부르며 일하던 날이었다. 전 회사는 클라우드 플랫폼을 대여해 업무에 활용했었는데, 문제는 그 계정이 워낙 고가여서 부서별로 한 명의 사번을 등록해 다 같이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보통 그 계정은 암묵적으로 ‘가장 오래 다닐 것 같은 사람’의 사번으로 생성을 하게 된다.


그렇다. 맞다. 내 사번으로 등록을 했더라.


물론 내가 실무에 익숙하니까, 혹은 어리니까 그랬을지도 모르지. 다만 내가 평소에 퇴사를 그렇게 입에 달고 다녔음에도 일사천리로 결재된, 나의 의사는 조금도 반영되지 않은(아니 물어보지도 않았던), 내 사번과 이름이 단출하면서도 선명하게 명시된 기안지를 내려다보던 그 순간 정말이지 시간이 잠깐 멈춘 듯했다.


그간 '퇴사할 거야'라며 떠들고 다녔던 내가 얼마나 어리게 보였을지. 아주 웃기지도 않았겠지, 혼자 떠드는 같잖은 협박 정도로 생각했을거야.

그대로 개미만큼 작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아주 조용히, 스르르 미끄러지듯 자리에 앉았다. 왜인지 고개를 돌리면 다 나를 비웃고 있을 것만 같아 귀가 뜨거워서 혼났다.


그 뒤로 퇴사할 거야 라는 말을 절대 입에 담지 않게 됐다.




두 번째는 고락을 함께한 동기들의 이직이다.


회사에서는 동기만큼 의지할 곳이 없다. 꽤 마음이 맞아 함께 직장인 밴드도 만들고, 여행도 수 차례 갔던 친구들이었는데, 언제 준비를 했는지 아주 조용히 다른 회사에 합격을 했더랬다. 그들이 이직하는 곳이 좋은 곳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나처럼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 결국 제일 오래 다닌다는 오피스괴담의 장본인이 나였다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가장 요란한 빈수레는 나였고, 결국 최후까지 남아 동기들을 배웅해주는 사람이 되었다. 비슷한 나이에 마냥 재미있는 친구들인 줄만 알았거늘. 주도적으로 앞날을 결정하는 모습을 보니 사뭇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결국 뜻이 있는 사람들은 조용히 자신을 돌보고 있었다.


그 후로도 1년 정도를 더 다니면서 나와 같은 언행(?)을 일삼는 친구들을 몇몇 보게 되었다. 그들이 어떤 마음인지 이해한다니 어쩌니 보다도, 음, 너도 오래 다니겠구나.

대부분 들어맞는다. 물어보면 지금도 다니고 있단다.


경험으로 검증된 가설은 하나의 법칙이 되듯 오피스괴담, 오피스야사는 꽤나 정사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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