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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크무슈 Mar 24. 2022

이직에 대하여

(4) 이직에 대하여


이직의 난이도는 굉장히 상대적이다. 안타깝게도 내 학력과 전공, 커리어가 체계적이지 않았던 덕분에 나는 포장에 조금 더 신경 쓰기로 했다.


해봐서 하는 소리지만, 경력직 이직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나를 객관화해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내가 어떤 일을 해왔고, 할 수 있으며, 사실 이 모든 것은 "제가 이래 보여도 나름 꽤 쓸만하니, 한번 들여다 써보시라"를 정성스럽게 포장하는 과정이다. 아, 물론 저와 달리 유능한 사람들은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막연히 이직을 떠들던 시기에는 이 과정 없이 구인구직 플랫폼에 보이는 공고마다 지원했었는데, 정말 단 한 군데에서도 서류 합격을 하지 못했다. 그때 떨어졌던 회사가 스무 곳이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준비를 안 했으니 낙담할 필요도 없는 게 당연하지만 그때는 마치 온 세상에 외면당한 비련의 주인공 마냥 나를 몰라준다며 징징거렸다.


그러다 한 순간 리듬을 탈 때가 있다. 나는 경력기술서를 정성스럽게 작성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다행히 그간 해왔던 일들이 무의미하진 않았는지, 놀랍게도 대여섯 군데의 외국계 회사에서 면접 제안이 왔다. 사업분야나 직무, 연봉으로 필터링하여도 모두 꽤 괜찮은 회사여서 오히려 놀랐다. 짧은(?) 인생 중 괄목할 만한 성과랄게 없었고, 실패나 탈락 문자 따위에 워낙 익숙해져 있었던 터라, 이번처럼 상대방에서 먼저 내게 관심이 있어 연락이 왔음에도 "저를요? 왜요?" 따위의 자기 불신과 의심이 먼저 마중 나갔다. 그렇지만 굳이 드러내서는 안 된다. 


인사담당자나 헤드헌터에게는 근엄한 경력자로 보여야 하니 말이다.



경력직 면접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측에서도 해당 포지션에 적합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 후보자로 선정하는 것이고, 나는 ‘해왔던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증명하는 자리이다 보니 면접 자체에 부담은 크지 않다. 약간의 의지와 의욕, 그리고 나를 솔직히 보여주면 된다. 판단은 어차피 그들의 몫이니까.


문제는 시간 내기였다. 연차를 연중 다섯 개도 채 쓰지 않는 친구가 일주일 사이에 두세 개씩 쓴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아니 이건 막내 인턴이 앞 구르기를 하며 "면접 보러 다니시는군요." 할테다. 전 회사는 굳이 연차 사유를 묻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 횟수가 많아지니 넌지시 물어보기는 했다. 그때마다 하루는 건강검진으로, 또 하루는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아 재검이라는 둥, 본가에 급히 일이 생겼다는 둥, 돌려 막느라 진땀을 뺐던 기억이 난다.


지나고 보니 굳이 구구절절 변명을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그냥 "요즘 종종 아파요."라고 할 걸.





세 군데 회사에 최종 합격을 했다. 이제 아름답게 갑과 을이 바뀌는 시간이다.


연봉 이야기를 꺼내며 살짝 갸우뚱한다던지, 괜히 전화로 ‘아 다른 곳에서도 관심을 보여서, 거기도 조건을 조금 확인해보고 연락드릴게요.’ 하고 급히 끊어본다던지. 단지 이 순간을 위해 이직해본 것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우리 모두가 요플레 뚜껑을 핥지 않고 버리거나, 


‘잔돈은 필요 없어요’ 같은 짜릿한 순간을 위해 살아오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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