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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른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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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크무슈 Sep 30. 2024

맺는말

마음이 복잡해질 때마다 그리는 그림이 있다

마음이 복잡해질 때마다 그리는 그림이 있다.


성격처럼 소심하게 종이 귀퉁이에 그린다. 어릴 땐 지루한 과목의 교과서나 시험지의 여백에 그렸었다가, 이제는 복잡한 회의자료나 의지와는 상관없는 종이들, 공과금이나 보험 서류, 처방전과 같은 것들로 옮겨갔다. 액자같이 네모 칸을 그린 후 가운데 가로선을 그어 나눈다. 선 위쪽으로는 뭉게구름을 그린다. 구름 아래는 돛이 달린 요트를 한 대 그리고, 좌우측 하단에는 야자수 두세 그루를 그린다. 그렇게 야자수 나무 사이로 수평선이 보이는 그야말로 평화로운 장면이 뚝딱 그려진다. 기분에 따라 갈매기를 몇 마리 그려 넣기도 한다.  


30초면 완성되는 이 그림은 내가 창작한 것이 아니다. 밥 아저씨였는지, 밥 아저씨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자 그 포맷을 모방한 다른 아저씨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브라운관 TV에서 본 그림이었다.


나는 아직 그림 속 장소를 찾지 못했다.


복잡해질 때 이 그림을 그리는 까닭은 이번 생에는 그림 속 장소를 꼭 찾아보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에, 지금 마주한 복잡함은 아주 별거 아니라는 상대적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현재에 매몰된 나를 다른 레이어로 끌어올리는 일종의 탈출버튼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언젠가 비슷한 장소를 찾게 될 것이다. 그때의 나는 몇 살일지, 어떤 모습일지, 누구와 함께일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 순간에는 얼음 띄운 맥주에 생선구이나 볶음국수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 아, 물론 사랑하는 사람도 같이.


종이의 여백이 가득 찼다. 다시 한숨 들이마시고 현재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

 



Special Thanks to.


가장 먼저 이 책의 공동 작가 예슬과 용신에게 감사 인사를 보낸다. 둘이 아니었면 내 글들은 일기장에서만 조용히 존재하는 인생의 넋두리였을 테다. 이번 책을 쓰면서 내 기억 속 희미하던 순간들까지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 더듬어 볼 수 있었다. 잘 지내길 바라며 묻어둔 채 애써 꺼내지 않았던 기억들까지도 말이다.

덕분에 어쩌면 조금은 나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보듬게 되었다.


그리고 내 글에 이니셜로, 또는 익명으로 등장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드린다. 여러분들은 작고 작은, 그러나 아늑한 내 인생을 함께하는 소중한 등장인물들이다. 여러분들이 내가 살아감에 있어 좋은 영향을 준 만큼, 나도 여러분들의 인생에 그런 사람이길 다시 한번 간절히 바라본다.


.


책의 표지는 스페인에서 동행자로 만난 멋진 동생 세범 군을 찍은 사진이다. 짧은 인연이 이렇게 커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함께한 스페인 남부와, 조금은 엉뚱했던 지중해 바다 수영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힘든 시기(공부 중이다.)를 보내고 있을 그에게 표지가 조금이라도 환기와 응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이 글을 읽어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이 물질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모두 당신 덕분이다.

당신의 하루에 이 글이 가벼운 한숨이었길 바라본다.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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