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직요괴 Sep 29. 2021

나는 회사 알러지가 있다

이 글을 보는 사람도 회사 알러지가 있다

일과 삶.


앞으로 내가 쓰고 싶은 글들을 관통하는 주제다.


누군가는 일이 곧 삶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워라밸이라는 말로 어떻게든 일과 삶을 구분 지으려 한다.

둘 중에 굳이 한 가지를 고르자면 난 후자에 가깝다.

근데 사실 그보다 더 나를 명쾌하게 표현할 수 있는 한 문장이 있다.


나는 회사 알러지가 있는 사람이다.



조금 우습기도 하다. 겨우 회사 어쩌고라는 문장으로 30+@년을 살아온 인간을 표현하다니.

그래도 나름 지난 5년 간의(햇수로는 6년) 사회생활을 통해 수집한 빅데이터로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이다.


"그래! 나는 회사 알러지가 있는 사람이었어!"




사회생활 6년 차에 몸 담은 회사도 6군데,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어후..' 할 수 있는 숫자다.


뭐 개중에 몇 군데는 정말 짧게, 몇 군데는 좀 길게도 다녔지만. 어쨌든, 결과론적으로 보기에 그렇다.

퇴사를 결심할 때마다 사회생활은 버티는 사람이 결국 이기는 거라며 뜯어말린 사람도 있고,
요즘 같은 시대에 평생직장은 없다며 정말 네가 하고 싶은 걸 찾아나가라고 응원해준 사람도 있었다.


둘 중 정답은 모르겠다. 정답이 있겠나 싶다.


퇴사 좀 여러 번 한다고 끈기 없는, 나약한,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을 때는 솔직히 좀 열 받아서

'내가 진짜 이 갈고 열심히 살아서 뭔가를 보여주고 말겠다'라고 생각한 적도 당연히 있지만,

죄송해요 아직은 보여드릴 게 딱히 없습니닷.






여러 번의 이직을 거치며 스스로도 많은 고민을 했다.


"회사 보는 눈이 없는 걸까? 아니면 결국 내가 문제인 건가?"


그 와중에도 K-직장인답게 세포 하나하나에 (속된 말로) 노예근성이 장착되어있는 덕분에 일복은 넘쳐났다. 그렇게 몸도 갈고, 정신도 갈고, 인간 맷돌이 되어 어이를 남에게(회사에게) 맡긴 삶을 살아왔다.
※ 근데 '어이'가 맷돌 손잡이가 아니래요. 조태오 씨 참고하시라고 링크 하나.


어느 회사를 가던지 일 잘한다는 말을 들으며 조직 내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삶이 공허하다고 느꼈다. 무언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친 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아주아주 막연하고도 추상적인 감정을 마음 한편에 품고 지내왔다.


요즘 들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겠지만, 나 역시 여러 곳의 회사를 다니며 '조직의 일부 부품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 비싼 부품과 덜 비싼 부품, 제조사가 다른 부품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결국 새로 구한 부품이 빠진 부품의 기능을 온전히 대체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실체모를 감정과 불만 어린 생각에 인생을 걸기에는 이미 결제해둔 카드 값이... 아니 현실이 녹록지 않기에 어느새 게으른 완벽주의가 습관이 되어버린 나는 그렇게 새로운 시도를 차일피일 미뤄오기만 했다.




하지만 마음의 소리를 한 번 들어버린 이상 돌이킬 수는 없더라. 터져 나오기 시작한 부정적 감정은 생각 없이 불린 건미역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내가 가진 정신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넘쳐올랐다.


'회사'라는 단어를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픈 나날들이 이어진다. 출근만 했다 하면 평소와 다른 인격이 튀어나온다. 친구들에게는 우스갯소리로 내가 이중인격자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미간 주름 빡! 회사 안에서는 누가 나에게 관심도 말도 붙이지 않아 주기를 바란다. 일 빨리 끝내고 칼퇴근하고 싶으니까.


이런 증상은 회사 알러지라는 말 외에는 표현할 방도가 없다. TMI지만 나는 만성 두드러기가 있는데 그건 약이라도 먹으면 좀 나아지지 이건 뭐...(퇴사가 답인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회사 내 인간관계를 개똥으로까진 취급하진 않으나, 솟아오르는 내면의 감정을 숨기고 최소한의 사회적 가면을 쓰기 위해 들이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해서 퇴근만 하면 녹초가 된다. 가족, 친구, 애인에게 회사가 어쩌고 저쩌고 얘기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쯤 되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지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주변만 봐도 나와 같은 생각과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이런 내용으로 글을 쓰다 보면 나도 쌓인 감정을 글로 해소시키고 내 글을 보는 사람들도 공감을 얻어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구나'하고 느끼지 않을까.




의욕이 넘쳐 막상 글을 쓰려다 보니 근본적인 궁금증이 생겼다.


일과 삶.


이 두 가지는 구분되는 게 맞는 걸까? 나는 회사 알러지가 있는 거지, 일에 알러지가 있는 것 같진 않은데.(그리고 난 노는 것도 일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사실 결국에는 일도 곧 삶의 일부가 아닌가? 진정한 워라밸은 뭘까?


물음표 살인마와 같은 질문 세례가 이어지다 보니 이 내용들로 글을 엮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평행이론처럼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내 친구 종종이와 함께 같은 주제로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게으른 완벽주의를 타파하고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성실한 이직요괴가 될 때까지!



물론, 내 최종적인 꿈은 탈회사다.



P.S. 사진은 제주도에 여행 가서 자유를 느끼던 순간을 골랐다. 탈회사의 진심 어린 소망을 담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