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직요괴 Oct 01. 2021

내가 다섯 곳의 회사를 떠난 이유 -1

Q. 작가명이 하필 왜 이직’요괴’인가요?

각자의 경험은 다르기 마련이다.


이 글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비슷한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혹 누군가는 내게 회사 보는 눈이 그렇게 없냐고 혀를 찰 수도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세상에 이런 회사가 여럿(수많이) 존재한다는 건 전인류적 관점에서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류의 행복을 앗아가는 일이고, 그런 회사들 때문에 제 역량을 펼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면 사회적으로도 분명한 손해니까!


이 글에 실제 회사명이나 재직했던 순서 등은 기록되지 않을 예정이다. 현실의 세상은 좁고, 나는 이 방대한 인터넷 세계에서 익명성이 주는 달콤함을 백 번 활용하고 싶기 때문이다.




먼저 내 작가명인 '이직요괴'의 유래부터 이야기하고자 한다.

날씨요정, 승리요정처럼 이직요정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 '요괴'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마음속 존재하는 나 자신에 대한 한 톨의 의심에서 비롯됐다고 말할 수 있다.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그 주기가 1년 반일 때도 있고, 거의 2년이 됐을 때도 있다.

공교롭게도 그 친구들을 만나 회사 얘기를 할 때마다 내 첫 멘트는 "아, 나 그때랑 회사 달라."였다.

(그리고 이제 친구들은 나를 만나면 먼저 묻는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어디야?")


지난번 내 글을 읽은 한 작가님이 잦은 이직이 가능한 것도 능력이라고 댓글을 달아주셨다. 실제로 그렇게 말해주는 주변 사람도 많았고, 나도 내 역량을 믿고 있었기에 여러 번의 이직이 가능했다.


그런데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회사가 바뀌었다고 말하는 그 순간이 왜 그렇게 민망하던지.

친구들이 "오~ 이직 요정이야 완전." 하며 일부러 추켜세워줄 때마다 나는 손사래 치며, "요정은 무슨. 요괴야 이직요괴." 하고 맞받아쳤다.


그게 브런치 작가명이 될 줄은 몰랐지.


미국에서는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기존의 직장문화를 완전히 바꿔나가는 '퇴사의 시대(The Great Resignation)'가 열렸다고 한다. 내 주위에서도 고민 끝에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퇴사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한 곳의 직장에서 진득하고 꾸준하게 견뎌내며 (지극히 타인의 시선에서는)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경우도 많다.


그런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당당하게 요정이라고 말하기엔 내가 정말 엉덩이가 가벼운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이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이직을 할 때마다 늘 '이번 회사에서는 꼭 오래 버텨봐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내 안의 반골 기질은 그리 쉬이 넘어가 주지 않았다.


P.S. 브런치 작가명을 정할 때 여러 후보가 있었다. 반골러, 조직부적응자 등... 그중에서는 그나마 이직요괴가 귀염뽀짝한 편이라 최종적으로 선택됐다.




아무튼 이제 본격적으로 나의 강력한 의지와 결심을 무너뜨려준 대단한 회사들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먼저 대부분의 공통점은 '(대표를 포함) 상사와 안 맞았다'는 점이다. 대신 이 경우에는 동료애가 너무 좋아 아직까지도 그때의 직장 동료들과 연락하며 잘 지내고 있다.


회사 내에서 줄곧 쌍시옷 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는 상사

회의 시간에 직원에게 악마라고 칭하며 악마를 없애기 위해 기도하자던 상사

사무실에서 내내 전자담배를 피워대던 상사

업무 중에도 방귀를 내뿜으며 식사 중이면 어김없이 트림을 해대던 상사

직원을 대놓고 소모품 취급하던 상사, 등등...


위는 좀 심한 축에 속했던 경우의 사례들이지만, 이런 식으로 별로였던 점들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이러한 상사들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에이 설마... 너무 이상한 회사만 다닌 거 아니야?'라며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저 중에서는 당시 업계 1, 2위를 다투던 곳도 있고 신문과 인터넷에 착한 기업으로 수차례 기사가 올라오는 곳도 있다.


나는 정의롭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인생에 오점이 없냐고 물어보면 그건 당연히 아니지만, 적어도 매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한 번 사는 삶 가능한 착하게 살다 가고 싶고,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면 주어지는 약간의 번거로움은 감수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남들에게 착해 보이는 사람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다른 생명체에게 거지같이 구는 사람에게는 훨씬 더 거지같이 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 그 상대가 상사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인품 면에서도, 업무 능력 면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훌륭한 상사들도 당연히 있었으나, 아닌 경우가 압도적이었다.


직장인 연차가 쌓일수록 쌈닭이 되어갔다. 다행히 욕이나 주먹이 나간 적은 없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판단했을 때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지 않고서는 혀에 가시가 돋았다. 가시를 퉤! 뱉어내야만 입을 다물 수 있었다. 싫은 소리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총대 맨 쌈닭으로 일하다 보니 회사 생활이 더욱 피곤해졌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이었지만, 차라리 그게 편했다. 말도 안 되는 장단을 맞춰주다가는 속에 쌓인 화가 끓어 넘쳐 휴화산이 폭발할 때처럼 아주 크게 터질 것 같았다.


그렇게 뱉어내는 가시보다 돋치는 가시가 많아지는 순간, 퇴사를 결심했다.


이 정도면 회사가 아니라 상사 알러지인가?

다음 글에는 내가 회사를 떠났던 또 다른 이유에 대해서 적어보려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