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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요괴 Oct 04. 2021

내가 다섯 곳의 회사를 떠난 이유 -2

다음 글 제목은 '내가 여섯 곳의 회사를 떠난 이유'입니다(농담)

'회사'라는 조직은 효율성을 중시한다.


효율성이란 단순하게 보면 투입 대비 산출이 큰 것이다. 회사에서 투입이란? 근본적으로는 '돈'이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힘들어지는 순간은 조직 내에서 그놈의 효율성이라는 가치가 일반적인 상식과 인격적인 존중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때부터이다. 무언가 어려운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오늘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대부분이 공감하고 겪어봤을 만한 내용이다.


첫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여태껏 어느 회사에서든 일 잘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이 말이 100% 진심 어린 칭찬이 아니었음을 깨닫기까지 그 대가로 열정을 모조리 바쳤다.


사회극초년생 시절에는 '일'과 '나'를 구분하는 방법을 몰랐고, 갖고 있는 모든 경험과 지식(from 네이버&구글)을 활용해 맡은 일을 끝내주게 성공시키는 게 곧 인생의 성공과 직결된다고 믿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못할만한 업무량도 야근에 특근에 밤샘까지 해가며 어떻게든 기한 안에 만족스러울 만큼의 결과물을 내야 마음이 편했다.


참고로 당시 월급은 정말 정말 박봉이었다. 오죽하면 내 연봉을 알게 된 부모님이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 어떻게 30년 전 우리 시절 초봉이랑 별 다를 바가 없냐'며 놀라실 정도였다. 어머니 아버지, 세상이 이렇게 각박해요.




회사 입장에서 보는 나는 어땠을까?


어떻긴 뭘 어때, 너무 이쁘지. 쥐꼬리만 한 월급과 별 볼 일 없는 복지('사무실에 커피머신이 있음'과 같은)로 구워삶는 노력 따위 하지 않아도 자발적 노예가 되어주는 직원이 있다니, 회사는 말해 뭐해 완전 땡큐다.


"오늘은 또 몇 시까지 야근하려고, 얼른 집에 들어가야지. 일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아이고 그래 그럼 수고해. 난 먼저 들어가 볼게."
"주말까지 나와서 일했어?? 왜 그랬어~ 말을 하지. 고생했네."


따뜻한 척, 다정한 척, 걱정해주는 척 말 걸던 팀장님, 이사님, 대표님 등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맴돈다.


애초에 한 사람한테 그만큼 일을 많이 맡기지 않았다면 야근이고 특근이고 밤샘이고 필요 없었을 텐데. 본인들이 업무 분장해놓고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마치 처음 듣는 말인 마냥 모르쇠 하던 그 모습들은 앞으로도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야비한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아직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사회 초년생을 그런 식으로 쪽쪽 빨아먹는 회사들을 너무 많이 만났다. 이제 막 타오르기 시작하던 열정의 불은 숨구멍 없이 꽉꽉 들어차는 장작들 덕분에 되려 금세 사그라들고 말았다. 열정뿐만 아니라 체력도, 얼굴의 생기도, 긍정적 에너지도 다 뺏겼다.


인터넷 어디선가 보았던 아래의 사진이 생각나 찾아와 봤다. 철저한 현실 고증 아래 나온 짤이 아닐 리 없다.

사진의 정확한 출처를 몰라 적지 못함


참고로 입사 6년 차인 지금은 사진첩에 셀카가 없다.




그렇게 회사의 이쁜이 겸 깜찍이로 점 찍히게 되면 은밀한 협상 하에 연봉이 오르기는 무슨, 상황이 점점 심각해진다. 지친 동료들의 퇴사 러시와 함께 회사의 높은 분들은 갑작스럽게 나를 찾아와 칭찬 폭격을 날리기 시작한다.


"우리 이직요괴 씨는 참 일도 잘하고 책임감도 강하고. 회사에서는 이직요괴 씨만 믿고 있는 거 알지? 조금만 더 고생하면 남들보다 승진도 빨리하고 연봉도 올릴 수 있어!"


순진했던 나는 그 말을 홀랑 믿어버렸다. 그때부터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3명이던 팀에서 2명이 나갔는데 뽑는 사람은 0명인 기적. 3인분의 업무량이 1인분이 되는 기적. 그 어려운 걸 제가 해냅니다.


맨날 파스타 3인분 만들어서 "혼자 다 먹으면 1인분이지!" 했는데 그게 이렇게도 적용될 줄이야. 아무튼 나 혼자 팀장도 하고 팀원도 하고 북도 치고 장구도 쳤다. 그럴게 아니라 사람 안 뽑아주는 대표님을 쳤어야 했는데.


그렇게 악으로 깡으로 버티다가 몸도 마음도 고장나버린 채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기적이 일어난다. 1인분이 2인분이 되는 기적. 내가 나가는 자리에 사람을 두 명 새로 뽑기로 한 것이다.


회사는 알고 있었다. 도저히 혼자 할 수 없을 일이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맡겼다. 내가 어떻게든 해내니까. 투입 대비 산출이 크니까. 돈을 들여 사람을 굳이 더 뽑지 않아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가능'이라는 안중에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인격적인 존중은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어렵고도 복잡한 사회의 산수 법칙을 이해하게 된 후 나는 조금 바뀌었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려고 하고, 필요한 부분은 회사에 당당하게 요구하게 되었다.(방금 '요구'를 쓰다가 '욕'이라고 오타를 냈다. 굳이 수정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나의 최선이 회사에게는 당연함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생색내는 법도 배웠다.




지난 다섯 곳의 회사를 떠난 이유에 대해 글을 적으려다 보니 참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에피소드들이 생각났다. 하지만 구구절절 쓰기보다는 그냥 이렇게 정리하고 싶었다.


"퇴사가 최고다! 무조건 퇴사해라!"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그런데 퇴사는 최고다)


회사가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그것을 견딜 수 있을만한 버팀목이 필요하다.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취미도 그 무엇도 버팀목은 커녕 오히려 그 불행에 잠식되기 일쑤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언제든 이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나를 구해낼 수 있다’는 믿음. 어려워 보이지만 내가 택한 방법은 정말 간단했다.


퇴사를 결심하는 것.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버틸 필요가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당장 실행에 옮기지 않더라도, 아주 막연하지만 언젠가는 이 회사를 떠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는 순간부터 숨 쉬는 게 조금은 편해졌다. 순간순간 주어지는 고통을 조금은 의연하게 훌훌 넘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다.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


지금 걷고 있는 길 위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을 마주친다면, 굳이 싸워 이기지 않고 옆으로 피해 조금 돌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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