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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요괴 Oct 07. 2021

회사에 다니면서 성격이 파탄 났다

내 꿈은 자연인이다옹

Q. 평소 책임감이 높고, 매사에 최대한 완벽을 기하려고 하나요?  Y/N


혹시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면 당근을 흔들어주세요.


축하드립니다. 회사 안팎으로 인격이 달라지는 증세를 이미 겪고 계시거나, 곧 겪게 되시겠네요!




출근 후 내 머릿 속.jpg


회사를 다니면서 성격이 안 좋아졌다. 원래 안 좋았던 거 아니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확실한 건 지금은 그보다 더 안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파탄 났다는 말이 알맞겠다.


짜증과 함께 미간 주름도 잔뜩 늘었다. 가끔 매사에 느긋하고 여유가 느껴지는 성격의 사람 혹은 인물(드라마 캐릭터 등)을 보게 되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타고난 건가 싶기도 하고, 연예인이라면 카메라 앞이라 관리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직업정신에서 나오는 태도라고 하더라도 그 역시 굉장한 프로다.)


특히 회사만 가면 작은 일에도 쉽게 예민해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은 점점 꺼리게 됐다. 농담 10% 진담 90%로 내 꿈은 자연인이며, 사람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할 만큼 인간 자체에 질려버린 것 같다.


서른이 넘어가며 한동안 로망이 있었다. 우아하게 사는 것. 다른 것보다 언행을 우아하게 하고 싶었다. 솔직히 30대가 되어서도 단어 앞에 '개'를 붙이고 '헐', '대박' 등을 감탄사로 쓰고 있을 줄은 생각 못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도는 좋았으나 작심삼...십분미만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dog열받는다(순화함)는 말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우리 멍멍이를 왜 자꾸 부정적인 감정의 단어 앞에 붙여두는지 모르겠다. 정말 고쳐야지.


나이가 들면 다양한 경험이 쌓이는 만큼 마음의 여유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인생은 시험의 연속인 게 분명하다. 매일매일 인내심의 바닥을 시험하는 일들이 생겨난다. 패스 논 패스 과목이라고 치면 매번 논 패스다. 성질머리 역시 이보다 더 바닥을 찍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간 시추선이 되어 맨틀까지 뚫어버린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더러워지는 성격에 처음에는 조직 부적응자인가 심각하게 고민했고, 나중에는 직장인이라면 다들 그런가 보다 여겼다. 그러나 나와 비슷한 패턴으로 성격이 나빠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우리... 공통점이 있는 것 같은데?




공통점 하나, 책임감이 매우 강하다.

성인이라면 다들 책임감 하나씩 키우고 사는 게 당연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책임감이란 보통보다 조금 더 상위의 것을 의미한다. 내 회사는 아니지만 내 회사처럼, 내 업무는 아니지만 내 업무처럼!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다. 강한 책임감이 이미 내재화되어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일 해야만 속이 풀린다.


공통점 둘, 매사에 최대한 완벽을 기하려고 한다.

완벽하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완벽하지 못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준비하고 검수한다. 뭐든지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업무 간의 연관성을 염두하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을 감지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




외에도 자잘한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지만, 이 두 가지가 성격파탄의 치명적인 이유라고 결론 내렸다.

자, 그럼 여기서 다시 질문.


Q. 이런 성격 자체가 문제인가? Y/N


정답은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마지막 질문 하나 더 들어갑니다.


Q.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대부분 본인과 비슷한 성향인가? Y/N


이건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 글의 제목을 보고 들어왔다면 '아니오'라고 대답할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성격이 파탄 나는 근본적인 이유다. 회사에 단 한 명이라도 나와 비슷한, 내 마음을 알아주는 동료가 있다면 파탄의 속도가 더뎌질 수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료가 성향이 다르다면 그건 곧 소인국에 홀로 떨어진 인간과 같은 처지다. 뭘 어떻게 하든지 결국에는 내가 '비정상'이 되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예시 상황

이직요괴: 저번에 A 프로젝트할 때 이번 프로젝트랑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데 이렇게 대처했더니 결국 문제가 됐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저렇게 처리하는 게 나아 보여요.

동료 1: 음... 근데 이거 너무 사소한 부분이지 않나요? 굳이 누가 지적할까 싶기도 하고. 저희 지금 프로젝트 마감까지 시간도 별로 없는데 다른 큰 문제들 먼저 해결하죠.

동료 2: 여차하면 다른 쪽으로 책임은 미룰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건 우선 그냥 넘어가시죠.


위와 같은 상황들이 반복되면 나는 어느새 매사를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사소한 일을 늘 지적하고야 마는 예민한 사람이 되어있기 일쑤다.


하지만 그렇게 넘어간 일들이 작은 눈덩이가 되어 구르고 굴러 몸집을 키운 뒤 마지막에는 나를 깔고 지나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의견에 반대했던 동료들은 대체로 모니터에 고개를 파묻고 입을 꾹 다문다. 답답함이 치밀어 오른다.


이것이 바로 쌈닭 성질머리를 갖춘 이직요괴가 된 지름길이다.


'설득의 심리학', '논리의 기술' 같은 명서적들을 읽어보고,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여러 콘텐츠도 탐독하며 동료들을 현명하게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서 공부하기도 했지만 전부 소용없었다.


몇 년 전, 영업팀에서 근무하던 때에는 하루에 두 세 곳의 고객사와 미팅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일면식 없던 고객사를 만나 설득하는 것보다 매일 얼굴 보는 동료들을 설득하는 게 백만 배는 더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애초에 업무에 임하는 성향과 태도가 다른 사람들과 방향을 맞추어 함께 일하기란 이다지도 쉽지 않은 것이었다.


사실 아직 해결방법은 모른다. 이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매 1분 1초마다 성격이 조금씩 더 더러워지고 있다.


직장인들에게 단골처럼 하는 질문이 있다.


일이 힘들다 vs 사람이 힘들다




...저는요, 고민도 없이 후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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