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일곱 살, 2024. 10. 20. 일요일 >
< 서른일곱 살, 2024. 10. 20. 일요일 >
#가족 #운동회 #어린이집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의 운동회가 있는 주말이었다.
손님들을 치르느라 정신없던 한 주가 지나가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창밖으로는 흐리게만 보이던 하늘이 막상 건물을 빠져나오니 거센 비를 뿌려대고 있었다. 온몸은 금세 비로 젖어버렸다.
운동회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광명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이집에서 행사가 취소되었다는 공지를 올렸다. 그럼 그렇지, 이 날씨에 어떻게 줄다리기며 달리기를 한다는 말인가.
날씨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김이 새어버렸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어린이집 운동회였기 때문이다. 장인, 장모님도 지방에서 올라오시기로 한 터였다. 나는 기차에서 올라가는 내내 운동회를 하지 못해 서운해할 아이와 그 시간에 무엇을 함께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놀이공원이건, 어린이 뮤지컬이건 무언가 기억에 남는 것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운동회가 취소된 그날 아주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느지막이 일어나 종이접기를 했다. 그리고 같이 거실의 화분에 물을 줬다. 동네 수영장에 가서 한참 동안 물장구를 쳤다. 허기가 진 우리는 각자 먹고 싶은 것을 하나씩 사 들고 집으로 왔다. 가족 모두 TV 앞에 모여 아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봤다. 그리고 몸이 노곤해져 거실에서 잠들었다. 일어나서는 놀이터에 먼저 나와 있는 친구들과 놀았다. 그리고 동네를 산책했다.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일터로 내려가는 기차를 탔다. 그 안에서 평범했던 하루를 다시 떠올렸다. 종이를 접는 아이의 손이 제법 야무졌다. 여름 시작 무렵에 아이와 함께 꽃집에 가서 사 온 화분들은 분갈이를 해야 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수영장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하던 녀석이 제법 능숙하게 헤엄을 쳤다. 어린이집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같은 반 친구들도 먹는다며 점심으로 라면을 먹었다.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줄만 알았는데 제 또래가 나와서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키득거리며 봤다. 놀이터에서는 구름사다리를 두 칸씩 건너고 있었다!
사실 운동회가 취소되어 아쉬웠던 건 아빠인 나 혼자였던 것 같다. 아이가 동생반 친구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클지, 계주에서 혹시 일등을 하는 건 아닌지 하는 기대를 가졌다.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아빠와 같이 놀 수 있는 주말을 보낸 것에 만족스러웠을 텐데 말이다. 가끔 일에 지쳐 주말에 쉬고만 싶었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본다. 이 시간이 그냥 지나가도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는지. 아이가 커가는 순간을 조금 더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운동회 같이 큰 행사가 아니어도 아이는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며 몸도 마음도 커가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 있을 (실내 행사라서 절대 취소되지 않을) 연말 재롱잔치는 조금 더 평범하게 보내볼 생각이다. 무대 위에서 실수를 하면 어떻게 하나, 내 아이이게 줄 꽃다발이 다른 친구들 것보다 작은 건 아닌가 따위의 걱정들은 내려놓아야겠다. 그리고 사진을 열심히 찍기보다는 무대에서 무어라고 열심히 종알거릴 아이의 그 입을 보고, 선생님을 따라 춤을 출 그 모습에 집중하고 싶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가족끼리 손 잡고 아이가 재롱잔치에서 불렀던 노래를 같이 불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