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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난감공장 Apr 12. 2022

내 하루를 디브리핑

일기를 왜 쓰나요?

30년 동안 일기를 써온 저에게 누군가 던진 질문, '일기는 왜 쓰나요?'에 대답하는 글입니다.

1. 내 하루를 디브리핑
2. 나라는 사람의 키워드 - 자기소개서
3. 나라는 사람의 키워드 - 그 선을 넘지 말아 주세요
4. 짐이 되어버린 위로
5. 그 사람이 좋아하는 선물은 무엇일까?
6. 이 나이에 무슨 일기야
7. 꼰대가 되실 건가요?
8. 나는 내 미래를 알고 있었다
<부록 1> 일기 활용법
<부록 2> 일기를 꾸준히 쓰는 다섯 가지 방법


  우리나라 전투기 조종사들의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첫 출전한 해외 에어쇼(영국 와딩턴)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블랙이글스 팀은 그러한 모습을 스스로 입증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결과가 그들의 어마어마한 훈련량 덕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한 시간 남짓의 비행을 위해 그보다 몇 배는 많은 시간을 들여 끊임없이 연구하고, 비행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준비하는 것. 그들의 끝을 모르는 노력과 철저한 계획은 그들을 최고로 만들었습니다.



  조종사들의 생활을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그들을 최고로 이끄는 또 다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조종사들은 출근해 전체 브리핑을 갖습니다. 그날의 기상이나 공통적인 주의사항,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정보들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본인의 비행에 앞서, 같이 임무를 수행하는 편조원들과 모여 브리핑을 실시합니다. 전체 브리핑 내용에서 나아가 비행에서 할 세부적인 임무와 공중에서의 기동, 그리고 제반 절차들을 찬찬히 맞춰 봅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아침에 조회하고, 고객을 만나기 전에 회의 자료를 다시 확인하는 행동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차이는 다음에 있습니다. 바로 디브리핑입니다. 조종사들은 비행을 마치면 반드시 자신들의 비행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방금 전 비행에 대해 비행 준비단계부터 공중에서의 기동, 그리고 착륙 이후 전반에 걸쳐 모든 단계들을 되돌아보며 사소한 것 하나 넘기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기록하고 다음 비행에 반영합니다. 이 행위는 초보 조종사뿐만 아니라 비행시간이 수 천시 간이 넘어가는 베테랑 조종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조종사들은 이토록 디브리핑에 신경을 쓰는 것일까요? 정답은 간단합니다. 다음번 비행에서 지난 비행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리 철저하게 비행을 준비한다고 해도 놓치는 부분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수백 킬로의 속도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고려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실수의 수정이 반복되어 그것이 수천 시간 가까이 쌓이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렇게 최고의 조종사가 만들어지고, 무결점 비행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대단해 보이는 조종사들의 모습이 우리의 생활 속에도 녹아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믿기 어려우시다면 올해 세우신 새해 계획을 한 번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한 해동안 이루고 싶고, 되고 싶은 모습이 담긴 그 계획 말입니다. 누구나 새해 계획을 만들 때는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고 잘 한 일과 못했던 일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잘 한일은 발전시키고, 부족한 부분은 수정하기 위해 새로운 목표를 세웁니다. 조종사가 다음 비행을 준비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조종사와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요?



  '에이, 새해 계획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걸.' 하는 생각이 드실 수 있습니다. 원래 계획이란 잘 지켜지지 않고, 바쁘게 살다 보면 잊히기 마련이니까요. 그럼, 이건 어떨까요? 일 년을 한 달 단위로, 한 달을 하루 단위로. 그게 일기의 시작입니다. 아주 작은 시간이라도 투자해 내 하루를 되돌아본다면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단조로운 하루였을 지라도, 똑같은 하루는 없습니다. 잘 살아낸 나를 칭찬하고 아쉬웠던 부분은 격려하는 것. 그것이 어제와는 다른 나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설령 내일이 당장 달라지지 않는다 해도 조바심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그동안 만들어진 습관과 생각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일은 쉽지 않으니까요. 대신 나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일기장에 제법 담겼을 때 그것을 돌아본다면, 그때는 예전과 많이 달라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고의 조종사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듯이 삶의 목표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꾸준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멋진 계획도 좋지만 부족했던 나를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예전보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기쁨을 누리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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