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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난감공장 Apr 22. 2022

나라는 사람의 키워드 - 자기소개서

일기를 왜 쓰나요?

30년 동안 일기를 써온 저에게 누군가 던진 질문, '일기는 왜 쓰나요?'에 대답하는 글입니다.
1. 내 하루를 디브리핑
2. 나라는 사람의 키워드 - 자기소개서
3. 나라는 사람의 키워드 - 그 선을 넘지 말아 주세요
4. 짐이 되어버린 위로
5. 그 사람이 좋아하는 선물은 무엇일까?
6. 이 나이에 무슨 일기야
7. 꼰대가 되실 건가요?
8. 나는 내 미래를 알고 있었다
<부록 1> 일기 활용법
<부록 2> 일기를 꾸준히 쓰는 다섯 가지 방법


  유명인들에게는 그들과 쉽게 연결되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국민 MC, 팬클럽 아미(ARMY), 무소유. 실명을 말하지 않아도 키워드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을 나타내는 키워드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유명인은 아니지만 자신의 키워드를 떠올려 봐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SNS 계정을 만들 때입니다. 프로필로 쓸 사진을 고르기 위해 스마트폰의 사진첩을 넘겨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올립니다. 그리고 나를 소개할 몇 가지 단어를 적습니다. 그렇게 계정을 만들고 나면 프로필을 통해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5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입니다. #운동, #사진을 좋아하고 요새 #아델#When we were young을 듣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가벼운 자기소개인 SNS 프로필과는 다르게 목적을 가지고 자신을 설명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취업이나 이직에 필요한 자기소개서를 적을 때입니다. 사회에 첫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나 이직을 하려는 사람, 정년을 마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소개서를 적습니다.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설명하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전달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때로는 한 줄 적어나가는 게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카페나 조용한 도서관에 앉아 그것을 적다 보면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소개서가 완성되면 뿌듯한 마음 반, 떨리는 마음 반으로 지원하려는 곳에 제출합니다.







  자기소개서는 사실 회사와 본인의 키워드를 연결시키는 일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내가 지원하려는 회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나열하고, 거기에 맞게 나의 경험과 장점을 녹여내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중요한 순서로 적어보면 하나의 글이 완성됩니다. 그런데 이런 자기소개서를 적는 건 왜 이렇게 어렵게만 느껴질까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회사가 원하는 키워드를 잡아내지 못했거나, 내 키워드를 회사의 그것과 연결시키지 못한 경우입니다.



  회사가 원하는 키워드를 캐치하지 못한 사례를 한 회사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언어교환 어플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L사는 최근 프로그램 개발에 필요한 직원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채용공고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했지만, 지원서들을 읽어본 회사 대표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해당 프로그램을 활용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성실함, 팀워크, 리더십과 같은 좋은 단어들로 자신들을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키워드를 갖춘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L사는 지원자의 프로그래밍 능력도 중요했지만, 스타트업이라는 특성상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끝나더라도 다음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일할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지금은 A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해 일을 하지만, 다음번 프로젝트는 지원자가 한 번도 다뤄본 적 없는 B 기반의 어플을 제작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L사에 필요한 직원은 새로운 직무로 확장이 되었을 때 그 일을 쉽게 배우고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L사의 사례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회사에서 원하는 키워드를 본인의 장점과 연결시키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군에서 일할 조종장학생과 부사관 면접관으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 이런 경우를 자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공군에서 요구하는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홈페이지와 많은 매체들에서 이미 '도전', '헌신', '전문성'과 같은 키워들이 소개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지원자들은 면접 때 거창하고 화려한 경험을 꺼내곤 했습니다. 공군 조종사로 지원한 학생이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느꼈던 점을 말하고, 항공기 정비 부사관으로 지원하면서 엘리트 운동선수 경력을 강조할 때는 면접관 입장이지만 마음이 타들어갔습니다.



  그들의 경험은 분명히 멋지고 대단했습니다. 그렇지만 '세계 여행 속에서 느낀 인류애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으신 거죠?',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실수 없는 정비를 하실 수 있으시겠네요' 하는 식으로 면접을 이끄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세계 여행 대신에 주말에도 남들을 위해 묵묵히 일했던 경험을, 운동 경험 대신에 완벽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몰입해봤던 이야기를 했더라면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사실 회사에서 원하는 사람에 대한 키워드는 이미 채용공고에 잘 적혀 있습니다. 사람을 채용하는 것도 많은 시간과 돈이 들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이런 부분을 모호하게 적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서 회사가 원하는 사람을 키워드로 나열하기는 비교적 쉬운 편입니다. 위에서 말한 두 사례를 다시 가져와 보면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고 새로운 일에 쉽게 적응하는 사람', '정비 기술을 가지고 있고 사소한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동안 살아온 경험을 꺼내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말 값진 경험을 했던 일일지라도 그것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사람의 기억은 점점 흐려지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소개서를 쓸 때 앉은자리에서 기억나는 일들 중 그럴싸한 일들을 열심히 적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내 소개 글이 채용 시장에서 돌아다니다 무심하게 읽히고 말 것을 생각해보면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나에게 특별히 소중한 경험이 아닌, 내가 가진 수많은 경험들 중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려줄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자신의 경험을 언제고 꺼내볼 수 있는 노트가 하나 있다면 어떠실까요? 저는 오늘도 이 글을 적기 전 일기장에서 재미있는 일 두 가지를 읽어 보았습니다. 하나는 사관학교 면접을 보던 때이고, 다른 하나는 면접관이 되었을 때입니다. 지원자일 때 긴장감과 면접관이 되어 지원자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대비되면서 또 한 번 일기를 왜 쓰는지에 대한 한 가지 답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일기를 쓰는 게 꼭 인생에 몇 번 적을 일 없을 자기소개서 때문만은 아니지만, 언제든지 내 경험을 꺼내볼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의 많은 관계는 저마다의 키워드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간의 만남으로 정의되는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우리와 일할 바르고 성실한 사람 찾습니다'하며 손짓할 때 '네, 제가 그 바르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일인데요...' 하면서 그 기회를 잡아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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