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 위에 담긴 우주
여러분은 바둑판 안에 우주가 담겨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바둑판은 가로세로 19줄, 바둑알이 놓일 수 있는 곳은 겨우 361군데이고 바둑알의 종류는 흑백 두 가지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둑판에서 벌어질 수 있는 경기 결과의 개수는 무한에 가깝습니다.
계산을 해 보면 10의 768제곱이 넘는 경우의 수가 있다는데,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원자의 수의 추정치가 겨우 10의 82제곱이라고 하니까요. 좁은 바둑판 위에서 두게 되는 한 게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우주 전체의 원자 수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죠.
직관을 넘어서는 기하급수의 위력을 볼 수 있는 또한가지 사례인 것 같습니다.
해 아래에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이 있지요.
하지만, 그다지 많게 느껴지지 않는 변화 요소라고 하더라도 이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무한에 가까운 패턴이 가능해집니다.
수많은 음악과 영화와 소설이 쏟아져 나와도 새로운 콘텐츠의 창작이 가능한 것도 이런 원리 때문일 것입니다.
바둑에는 정석이 있고 음표들은 화음을 이루어야 하며 소설의 플롯은 개연성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의미 있는 조합의 수가 줄어들기는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도서를 쓴 현자의 한탄과는 달리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새로움의 여지는 다행히도 풍부한 것 같습니다.
어떤 철학자들은 단어의 의미를 엄밀하게 정의하고 타당한 논리의 규칙들을 적용함으로써, 수학과 같이 오해의 여지가 없는 명료한 진술들로 사상을 전개하고 토의하는 것을 꿈꾸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하나의 단어가 여러 개의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고, 뉘앙스까지 고려하면 사전에 나와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의미의 다양성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여러 개의 의미와 뉘앙스를 갖는 단어들을 조합해 쓰다 보면 몇 개의 문장만으로 구성된 대화라도 수많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우주의 원자 수만큼은 아니겠지만, 대화를 하면서 오해를 피하기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대화를 하는 일은 그렇기 때문에 논리적인 사고와 더불어 미묘한 의미들을 구분하는 암묵지가 함께 필요한 일입니다.
상대가 하는 말을 경청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렇게 경청하더라도 내가 듣고 이해한 것이 말한 사람이 전하고자 한 것과 일치하지 않는 미완의 부분들이 생긴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좋은 대화에 한 가지 유형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서로가 경청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대화란 멋진 것이지만, 상대의 말에 자극을 받으면서 각자 자기의 생각을 펼쳐내는 대화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오페라에서 서로 다른 마음을 노래하는 독창들이 어울리며 멋진 이중창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