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묵지를 갖게 된 인공지능

바둑을 둘 수 있는 기계는 직관을 가진 기계이다

by 황인석

이전 글(무한한 경우의 수에 대하여)에서 바둑판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무한에 가깝게 방대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반적인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바둑의 수를 계산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럼 컴퓨터가 무한한 경우의 수로 펼쳐지는 바둑판 앞에서 자신이 둘 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무한한 경우의 수에 대응하는 역량이라는 관점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혹시, 형식지와 암묵지라는 단어를 들어 보셨는지요?

형식지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지식을 말하고, 암묵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지식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암묵지를 익히는 것입니다.

자전거가 기울어지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핸들을 돌려라 같은 내용을 담은, 자전거 타는 방법을 글로 설명한 매뉴얼을 만들 수는 있겠죠. 하지만, 실제로 자전거를 탈 수 있기 위해서는 몸으로 감각을 익혀야 하고, 그 감각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감각을 지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지식의 경계는 생각처럼 쉽게 단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 앎을 통해 뭔가를 예측하거나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법을 안다는 것은, 실제로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뜻이겠죠.

그런 식으로 지식을 정의한다면, 지식은 역량과 비슷한 의미가 되고, 교과서로 배울 수 있는 지식 외에 감각, 기술, 심지어 태도나 열정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지식보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암묵지가 중요한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수학의 개념과 공식 같은 형식지 뿐 아니라 문제를 푸는 기술(암묵지)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 중에는 규칙이 비교적 단순해서 매뉴얼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으로 충분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계가 아닌 인간의 관여가 필요한 일들의 대부분은 무한히 다양한 상황 앞에서 가장 적절한 대응 방식을 찾아가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세한 조정을 할 수 있는, 몸과 감각으로 익혀지는 암묵지가 바로 그러한 역량입니다.


예전에 컴퓨터가 작동하는 방식은, 문제를 푸는 방법을 프로그램으로 작성해 컴퓨터로 실행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미적분 알고리즘을 구현한 프로그램을 실행시켜 미적분 문제를 푸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사진 안에 고양이가 들어 있는지 아닌지를 컴퓨터한테 판단하게 하는 일은 어려웠습니다. 세모꼴의 귀가 있다, 세로로 가느다란 홍채가 있다, 같은 고양이의 여러 특징들을 아무리 정교하게 규칙으로 만들어 컴퓨터에 입력해도 그다지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딥러닝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인공지능에서 사용하는 방법은, 컴퓨터에게 고양이를 구분해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가 고양이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학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주는 대신에,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아니 더 정확하게는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배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무한하게 다양한 고양이 이미지를 식별해 내는 규칙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그런 규칙을 명시적인 알고리즘으로 뽑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이미지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컴퓨터가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수학적으로 고안된 학습 알고리즘을 통해 수많은 고양이 이미지와 고양이가 아닌 이미지를 빅데이터로 제공해 학습시키면 인공지능은 고양이 이미지를 구분해 내는 역량을 스스로 갖게 됩니다.

이 역량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학습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구현한 프로그래머를 포함해서 누구도 그 정체를 확실히 밝혀낼 수 없는, 컴퓨터가 가진 암묵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둑을 두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은 바둑돌이 놓인 판을 일종의 이미지로 인식해서, 자신과 상대에게 얼마나 유리한지를 판단합니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다음에 놓여질 가능성이 높은 수들이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판단한 다음, 그 수들이 놓일 때마다 판의 유불리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직관적으로' 평가합니다.

이런 판단의 본질은 수학적인 계산이지만, 그 계산은 미적분을 푸는 방법과 달리 인간이 봐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학습 과정을 통해 미세하게 조정된 수많은 숫자들의 묶음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파고의 승리는 무한한 경우의 수 앞에서 가장 유리한 대응 방식을 선택하는 암묵지가 필요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앞서기 시작한 최초의 사례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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